[영화로 만나는 불교] 비구니, 젠더 차별에 저항하다 / 김천

2020-09-28     김천

불교계 젠더 문제를 통해 종교의 나아가야 할 길을 질문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폴란드 출신 감독 마우고자타 도브로볼스카의 <비구니-불교, 스리랑카, 혁명(Bhikkhuni-Buddhism, Sri Lanka, revolution, 2018)>이다. 

감독은 스리랑카와 상좌부 교단에서 끊겼던 비구니 교단을 복원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비구니-불교, 스리랑카, 혁명(Bhikkhuni-Buddhism, Sri Lanka, revolution, 2018)>

 

| 깨달음 앞에 차별은 없다

스리랑카는 인구의 7할 이상이 불교 신자다. 대부분 상좌부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내륙인 캔디에는 부처님 어금니 사리를 모신 불치사(佛齒寺)가 있고, 해마다 불교도가 모여 페라이아 축제를 벌인다. 축제는 대략 2,00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국가인 스리랑카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 여성의 교육률과 사회참여도가 높은 나라다. 적어도 교육과 공직에서 여성의 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데도 비구니들은 거의 없다. 기원전 3세기경 불교가 전해진 이래 11세기경에 비구니 교단이 소멸했다. 이 영화는 완고한 스리랑카 불교 현실 속에서 비구니 교단의 맥을 새로 세워가는 용감한 비구니들의 이야기다.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것은 역설적으로 비구니였다. 아소카왕의 딸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 상가미타 스님은 오빠 마힌다 장로와 함께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인물이다. 상가미타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금강좌의 보리수에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를 꺾어 스리랑카에 전했고, 그 보리수는 아누라다푸라의 스리마하 보리수 사원에서 지금도 대를 이어 번성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의 비구니다. 쿠수마 스님은 스리랑카 출신으로 1996년 비구니계를 받았다. 스리랑카에 비구니계를 줄 계사가 없자 동료들과 함께 인도로 가서 받았다. 전하기로는 쿠수마 스님에게 초전법륜지 사르나트에서 계를 전한 이가 한국 스님들이라고 한다. 거룩한 일이다. 담마난다 스님은 태국 출신으로 2003년에 스리랑카에서 계를 받았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고타미 스님은 2016년 스리랑카에서 비구니가 됐다. 이 세 분의 스님은 태국과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최초의 비구니가 된 이들이다. 

스리랑카와 남방의 비구니 승단은 차츰 뿌리를 내리고 있다. 출가자가 늘어나는 추세고, 법상에 올라 부처님 법을 전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데칸두와라 수행센터를 비롯한 강원과 명상수행처도 갖추고 있다. 

비구니 승단이 자리를 잡는 데는 거센 저항이 있었다. 명상지도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잔 브람 스님이 몇 해 전 호주에서 네 명의 여성들에게 비구니계를 준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본사인 태국 교단과 세계 불교계에 큰 파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일을 거듭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요구에 아잔 브람 스님이 단호히 거절하자 태국 본사로부터 파문된 바 있다. 이 사건은 불교 교단 내에 존재하는 차별의 문제와 권위의식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끊어진 맥을 잇고 출가자로 수행의 길을 나서겠다는 여성들에게 기성 교단은 왜 이리 가혹할까. 겉으로는 전통의 고수를 표방하지만 전해진 모든 전통이 순수하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요즘 회자되는 젠더 문제, 즉 성별을 매개로 한 권력의 억압과 차별은 이 시대 불교계에도 떠도는 망령이다. 비구니가 비구의 평판과 허락에 출가 여부가 결정되는 일은 옳지 않다. 

‘비구니 승단이 소멸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며 다시 살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특정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불법과 승단이 억압받고 사라진 역사적인 사례들이 있다. 그래도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들은 승가를 복원하고 가르침과 수행공동체를 지켜냈다. 지금 우리 앞에 남은 승단들도 단절과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어져 온 것이다. 

영화 속에서 고타미 스님은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 그리고 계를 받고 수행자의 길로 나갈 수 있게 됐을 때,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여인이 출가해서는 안 된다는 만 가지 이유와 궤변보다 훨씬 무거운 한마디 고백이다. 

부처님이 출가하여 함께 수행했던 비구니들의 이야기는 『테리가타-장로니게경(長老尼偈經)』에 잘 전해지고 있다. 그 속엔 개인의 불행, 신분의 차별, 운명의 질곡을 스스로 떨치고 수행의 길을 걸어간 비구니들의 깨달음이 있다. 『테리가타』 속에서 키사고타미 스님은 이렇게 노래했다. 

“죽음과 고통의 경로를 지나, 두려움을 벗어나, 수행의 길을 걸을 수 있었네. 성스러운 팔정도의 길을 따라 열반의 땅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네. 속박을 풀고 진리의 거울을 들여다보았으니. 괴로움의 화살을 꺾어 욕망의 무거운 짐 내려놓았네. 나 키사고타미 장로니는 노래하니, 마음의 굴레로부터 벗어났다네.” 

 

| 상가미타 비구니의 보리수 가지

도브로볼스카 감독은 어린 시절 가톨릭 교회에서 왜 여성은 성직자가 되지 못하고 보조적인 역할만을 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비구니계를 받기 위해 방콕에서 스리랑카로 가는 출가자들을 만나 이 영화를 구상했다. 종교는 가장 경직된 곳이고 가장 맹렬하게 변화를 거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는 여성 스스로 관습을 떨쳐내고 혁명을 이뤄가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제작을 위한 클라우드 펀딩에 실패하고 대책 없이 스리랑카에서 절과 절을 찾아다니며 이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은 영화를 만든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은 나무와 같고 역사는 뿌리다. 현재는 줄기며 미래는 나무 끝에 있다. 나무는 뿌리 없이 자랄 수 없으니, 여성들은 자신의 역사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놀라운 숲을 이루기 위해 여성들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티베트 비구니들이 교육의 권리와 지위를 쟁취하고, 남방의 비구니 승단이 복원되고 있다. 상가미타 스님이 스리랑카에 가져갔던 보드가야의 보리수 가지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함께 온 국토를 뒤덮어 번성했다. 후일 보드가야가 외도의 수하에 넘어가고 보리수가 사라졌을 때, 스리랑카 스리마하 보리수 사원에서 다시 북쪽으로 난 가지를 가져다 복원했다. 가르침이 끊어지면 그렇게 이어가면 될 것이다. 

관습으로 굳어진 차별이 있다면 우리는 그 차별이 정당한 것인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전통은 그 자체가 기준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과 정신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남녀노소, 아름답고 추함, 귀하고 천함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그러했듯이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가진 이들에 의해 새로운 길이 이루어진다.

● 영화는 릴하우스 홈페이지(www.reelhouse.org/dobrowolska/bhikkhuni2)에서 유료로 볼 수 있습니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