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인간과 로봇, '경쟁'이냐 '상생'이냐
랜선으로 만나는 제12회 붓다빅퀘스천
2016년 이세돌과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 이후 전 세계는 인공지능 개발 열풍에 휩싸였다. 자율주행차, 반려 로봇, 상담 챗봇(chatbot) 등 인공지능은 이미 일상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혁신적으로 삶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러한 AI 기술의 거침없는 발전 속에서 각계에서는 철학·윤리·종교적인 고민이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민과 사유 없는 기술 발전은 우리의 미래를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발전은 인류사회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인가, 아니면 낙관의 세상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인가? 불교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인공지능을 바라볼 것인가? 우리 삶의 방식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이러한 화두를 안고 열두 번째 붓다 빅 퀘스천이 문을 열었다.
제12회 붓다 빅 퀘스천은 ‘인공지능 시대와 사유하는 불교’를 주제로 9월 12일 오후 2시부터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진행됐다. 최근 코로나19 집단 감염 확산에 따른 정부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붓다 빅 퀘스천 사상 처음으로 비대면 온라인 강연 방식으로 시도된 것이다.
이번 붓다 빅 퀘스천은 구본권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양형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해인사 승가대학장 보일 스님이 연사로 나서 5시간 40여 분 동안 지식과 지혜를 나눴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강연에 접속해 인공지능 시대가 불러온 화두를 함께 고민했다.
첫 번째 강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의 현재와 미래, 달라지는 것: 새롭게 대두될 문제들’이라는 주제로 구본권 기자가 발표했다.
구본권 기자는 최근 인공지능 자동화 시스템으로 사람들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현재 가장 유망한 직업들도 언젠가는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답과 매뉴얼이 정해지지 않은 영역 일수록 기계가 결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즉 인간 고유의 장점을 발휘하는 일자리만이 미래에 살아남는다고 전망했다.
과거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삶이란 무엇인가’, ‘왜 고통은 찾아오는 것인가’, ‘고통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듯, 인생이야말로 명확한 답을 내리기 힘든 인간 고유의 사유 영역이다. 따라서 항상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고, 주체적·비판적 정보판별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본권 기자는 주역에서 나오는 말인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를 인용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는 얘기다. 구 기자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결핍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논의를 끝맺었다.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양형진 교수는 ‘현대과학의 눈으로 본 불교’라는 주제로 불교의 무상, 무아, 연기, 공, 중도 개념을 과학 이론에 빗대어 설명했다.
양 교수는 “현대과학은 우주도 진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며 “이는 불교의 삼법인인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고정된 본성이 없는 무상한 존재며, 어떤 것도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다만 인연에 따라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마치 두 개의 수소 원자가 한 개의 산소 원자를 만나 물이 되는 과정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즉 개별적인 원자가 본래 물의 성질을 가진 게 아니라, 인연의 조건에 따라 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양 교수는 지구가 생명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 역시 무아와 연기의 원리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38억 년 동안 지구의 생명체가 자성을 고집하지 않고 연에 따라 존재했기 때문에 산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고정불변의 성질이 아니라, 언제든지 인연에 따라 변화하면서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처럼요. 따라서 미래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강연은 보일 스님이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무엇을 사유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인공지능의 진화방식, 불성, 미래 불교의 역할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보일 스님은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를 따지기보다 인간의 사유를 알고리즘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과학자, 공학도뿐만 아니라 윤리학자, 종교학자, 철학자들의 참여도 필요하다는 것.
스님은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는 데 불교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을 고정적인 실체로 보지 않고 연기적 관점에서 상호의존적으로 바라봐야 고통이 아닌 번영의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과 로봇을 대립·대결 구도로만 본다면 어떠한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떻게 중도적인 안목을 갖고 전통을 지켜나가면서도 미래 혁신에 대비해 나갈 것인가를 한국불교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그 누구도 답을 갖고 있지 않다”며 “화두를 들고 항상 참구(參究)하는 자세로 시대에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며 강연을 끝맺었다.
한편 이날 온라인으로 강연을 들은 참여자들은 “명강의 덕분에 가졌던 궁금증이 풀렸다”, “언택트 강의로 붓다 빅 퀘스천을 만나서 반가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