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말이지……
하는 일이 그쪽 일이라서 불교와 제법 가깝게 지내는 편입니다. 종종 절에 가고, 이따금 스님들을 만나고, 자주 불교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산 지 꽤 되다 보니까, 지인들을 만나 수다를 떨 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넌 좀 깨달았니?” 그때마다 제가 들려주는 답은 정해져 있죠. “깨달았으면 내가 지금 여기 이러고 있겠니?”
말 그대로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진지하게 접근하더라도 역시나 같은 대답을 들려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구요? 그야 깨달음이 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수행하면서 산 것도 아니고, 스님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깨달음이 뭔지 캐묻고 다닌 것도 아니니까요. 깨달음은 특별하고 거대한 ‘무언가’라는 생각에 애초에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않고 살았습니다. 나와는 먼 얘기, 솔직히 사는 데 별 필요 없는 것쯤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도 궁금하긴 했습니다. 대체 깨달음이 뭐길래, 왜 많은 사람이 깨달음을 찾아 헤매는 것인지가 말이죠. 하지만 딱히 어디 가서 물을 데도 없고, 열심히 책을 뒤져 봐도 가물가물 감이 잡히지 않으니 ‘에라 모르겠다. 신경 쓰지 말자’가 돼 버린 겁니다. 그렇게 깨달음은 점점 제 삶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훨~훨~)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습니다. 일본의 한 여성 불교 마니아가 일본 불교를 대표하는 여섯 스님을 만나 ‘깨달음’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엮은 책입니다. 저자인 고이데 요코 씨는 저에 비하면 아주 불교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 미술(불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불교의 핵심인 깨달음에까지 마음이 가닿은 신심 깊은 불자니까요.
그녀는 불교 책을 읽고 명상과 염불 수행을 하면서 평소 나름대로 열심히 깨달음을 궁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론은 “잘 모르겠다”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답답한 마음을 움켜쥐고 스님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깨달음 방면에서는 스님들이 최고 전문가일 테니까, 스님들에게 물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 말이죠.
조동종, 임제종, 천태종, 정토진종 등 일본 불교를 대표하는 종파의 큰스님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스님, 그래서 깨달음이 대체 뭐예요?”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여섯 스님은 차분히 각자 삶에서 얻은 경험과 수행을 통해 체득한 바를 토대로 깨달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요.
여섯 스님과 대화를 마친 뒤에 그녀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야호, 이제 나도 깨달음을 얻었다” 하면서 해탈의 경지를 맛봤을까요?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깨달음이란…… 그 뒤에 이어지는 단어는, 아마도 없다’라고 책의 마지막에 남긴 글을 보면 말이죠. 하지만 그건 실망감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확신에 찬 말이었죠.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전히 깨달음은 오리무중이지만, 더는 그 사실이 불쾌하지 않아. 오히려 맑고 청명한 기분이야.” 그리고 말합니다. 스님들이 들려준 것은 무지와 사이좋게 지내는 비결, 인생을 똑바로 그리고 천천히 걷는 길들이었다고요. 뭔가 거대하고 특별한 ‘깨달음’을 찾아 헤매기보다 매 순간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중요한 일임을, 그 시간 속에서 문득문득 깨달음이라고 말할 만한 순간들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지금 혹시, 깨달음을 앓고 계신가요? 혼자서 끙끙대고 계시다면, 이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또 저처럼 나이롱 불자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께도요. 이 책을 읽는다고 지극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순 없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깨달음이란 말이지……”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