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心地)가 닿아 등으로_서울에서 봉화까지

유동영의 선경(禪景)

2020-05-30     유동영

부처님오신날 행사가 한 달 뒤로 미루어지며 
등이 걸린 날도 그만큼 길어졌다. 
많은 사람이 모여 부처님의 탄생을 함께 
찬탄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으나, 
혼란한 틈 속에서도 제 역할을 잊지 않고 
불을 밝히는 등을 찾아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봉화까지.  

근래 올해처럼 봄철 대기가 좋았던 해가 없다. 
비가 그치고 날이 개자 흑석동 달마사를 찾았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산과 마주한 이곳처럼 서울의 지세가 한눈에 보이는 곳은 서울 시내에 없기 때문이다. 
가을이면 전각 옆 잔디밭에 앉아 여의도의 불꽃놀이를 볼 수도 있다. 
도량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도량과 연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사. 
걸어 오르기에도 힘이 부치는 도량에 
수 천 개의 등이 걸려 제 각각 불을 밝히고 있는 절. 
절 뒤의 바위가 기이해 싹이 막 돋아나는 봄철에는 마치 짐승들이 
꿈틀대며 움직일 것 같은 곳, 봉화 청량산 청량사이다.

광화문 앞 황룡사 9층 탑 장엄등
봉은사 일주문 앞 아기부처님 유등

해가 지고 30분즈음
사진으로 담기 좋은 시간이다.
4월 30일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한 광화문 앞 
황룡사 모형탑 등 앞에 
꼭 그 시간대에 섰다.
봉은사 아기 부처님은 그때를 
한참 넘겼으나 오히려 좋다. 
그때가 다는 아닌가 보다.

도량석이 끝난 뒤 펼쳐지는 새벽녘 하늘과 청량산을 바라보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 계절에 나신 부처님이 그리고 이 가파른 바위산에 도량을 가꾸고 등을 밝히는 분들이.

 

봉은사 미륵불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무엇에도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깨어 있으며 삶의 지혜와 사랑을 
실천하는 그 자리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 법정 스님의 2004년 부처님오신날 법문 가운데

부처님 아래 그는 몇 숨이 지나도록 손을 모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그의 심지가 부처님, 나, 그리고 빛나는 등불에 닿는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