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사람하고만 살면 너무 재미없잖아!
보경 글. 권윤주 그림 | 264쪽 | 16,000원
신간 《고양이를 읽는 시간》이 나오고, 이튿날 송광사로 내려갔습니다. 저자 보경 스님과 냥이를 영상에 담으려고요. 보경 스님의 처소는 6평 남짓한 방 한 칸입니다. 겨우 몸을 뉠 수 있는 작은 침대와 책상, 컴퓨터 그리고 사방 천장을 두른 일자형 선반 위 책이 전부입니다.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 작은 뜰에는 키 작은 장미 대여섯 그루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노란, 빨강, 주홍색 장미입니다. 스님이 일부러 장에서 묘목을 사다 심은 것들인데, 꽃을 피우고 보니 다 각각의 색이었다고 합니다.
“스님, 지천에 꽃과 나무인데 꽃을 돈 주고 사다 심으셨어요?”
“내가 사는 곳이니까 잘 가꿔야지 않겠어요?”
《고양이를 읽는 시간》에 ‘내 일은 내가 하고, 내 몫은 내가 챙기는 습관이 행복한 삶의 기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스님은 실제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장미목 밑동마다 돌멩이를 동그랗게 둘러놓았기에 그건 또 왜냐고 물었습니다.
“영역 표시예요. 사람이나 동물도 자기 영역이 있으면 편안하게 지내잖아요. 식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냥이는 스님 침대 밑 구석진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허리를 바짝 굽혀 불렀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1시간여 동영상 인터뷰가 끝나도록 냥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면 옵니다.’
책 속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4년 전 냥이가 스님 앞에 처음 나타났을 때, 스님은 몹시 배고파 보이는 녀석에게 토스트와 우유를 주었습니다. 그 작은 인연으로 냥이는 스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스님은 때 맞춰 먹이를 챙겨줄 뿐 채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녀석은 스님 창문으로, 방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습니다.
“나는 냥이 발톱에 한 번도 할퀸 적이 없습니다. 억지로 뭘 어떻게 해보겠다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늘 냥이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가오면 그제야 털을 빗겨주고 간식을 주고 했지요. 그게 다예요.”
다행이 잠에서 깬 냥이는 스님의 산책 길에 따라나섰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그 둘을 좇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었습니다. 낯선 이들이 시끄럽게 이름을 부르고 몸을 만지고 이래저래 포즈를 취해 달라 하는 소란 속에, 곰곰 생각해 보니 그때까지 냥이의 울음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얘, 말 못 하나?’ 싶을 정도로요. ‘냥이의 울음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한 날이면 하루를 잘 보낸 날입니다.’ 이 문장 역시 《고양이를 읽는 시간》 어딘가에 나오는데, 있는 그대로의 냥이를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리는 스님의 덕도 있지만 인내할 줄 아는 냥이도 보살이구나 싶었습니다.
출가자는 일생을 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내려놓고 모든 사람을 품고 살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마음이 상처 입고 길 잃은 고양이에게도 닿았습니다. 《고양이를 읽는 시간》은 적막함으로 가득한 이 깊은 산중에서 두 생명이 통(通)하는 이야기입니다. 칼 세이건은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고 했습니다. 지구 위의 수많은 생명체를 무시하고 인간끼리만 잘 사는 것도 엄청난 죄가 아닐까요.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우리는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생명이란 점에서 귀하고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다른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나아가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내 자리를 나눠주고픈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보경 스님과 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