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월드컵은 환 상인가 실재인가 / 김천
영화 <컵(The Cup, 1999)>은 종사르 린포체로 알려진 부탄 출신 감독 키엔체 노르부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그는 승려였고, 지금은 영화감독과 작가, 그리고 대승경전을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하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유로운 신분으로 세상 곳곳을 다니면서 의미 있는 활동을 다양하게 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업무 때문에 한국에도 가끔 들린다고 한다.
키엔체 노르부는 영화 <컵>을 시작으로 <순례자와 마법사(2003)>, <바라, 축복(2013)>, <헤마 헤마(2016)> 등 작품을 연달아 제작하고 감독했다. 그의 영화들은 부산국제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어 대부분 초청작으로 국내에 선보인 바 있다. 스님들이 영화를 만드는 일은 종종 있지만, 작품성보다 승려 신분이 주는 특수함으로 화제를 얻는 일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키엔체 노르부는 온전히 작품으로 영화적인 성과를 인정받았다.
우리가 걷는 세상의 길은 온통 돌무더기로 뒤덮여있고,
그 돌들을 다 치울 수 없기에 우리는 튼튼한 신발을 싣고 길을 나서는 것이다.
| 부처님이냐 축구선수 호나우두냐
우연한 만남과 경험은 삶의 경로를 바꿔놓는다.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환생과 윤회를 주제로 영화 <리틀 부다(Little Budddha,1993)>를 제작할 때 키엔체 노르부는 불교 자문역으로 일했다. 영화 현장에서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한 후에 그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에게 영화를 배웠다. 그리고 만든 영화가 <컵>이다.
그는 <컵>을 통해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히말라야 산자락의 작은 수도원에서 어린 승려들이 공부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가 <컵>의 내용이다. 자신이 경험한 어린 시절이 영화 속에 있다. 영화 시작 부분에 이 영화는 실제 이야기에 기반을 두었다는 자막이 나온다. 세속을 떠나 진리의 길을 걷지만, 간간이 마음을 흔드는 세속의 사정들을 영화는 고스란히 담고 있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세간과 출세간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가게 되고 욕망의 문제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왜 배우고 수행해야 하는지 마음에 새기게 된다.
월드컵 시즌이 되자 수도원의 젊은 승려들도 함께 들떴다. 스승의 눈을 피해 축구를 하고 중계를 보러 몰래 마을을 다녀오기도 한다. 호나우두는 어린 스님 오옌의 최고 우상이다. 그의 꿈은 티베트 축구팀을 만들어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이다.
수도원장 노스님은 육신이 더 쇠약해지기 전에 설산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다. 그때까지 자신이 배우고 지킨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린 스님들에게 잘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결승전이 다가올수록 젊은 스님들의 욕망은 더 커진다. 공부할 때도 의식을 배울 때도 월드컵에 관한 관심은 식지 않는다.
| 악몽도 현실도 내가 만든다
키엔체 노르부는 이 영화에 대해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세상 모든 것은 환상이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환상을 보여준다. 필름 속에 독립적으로 찍힌 장면들은 하나의 영화 전체를 만든다. 우리도 매 순간 경험하는 사건들이 삶 전체를 만들어 간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모든 일도 인과와 인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는 도구다”라고 말한다.
매 순간 욕망에 사로잡혀 식지 않는 갈망으로 괴롭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세상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진다. 월드컵을 보지 못하는 젊은 스님들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마침내 점쟁이에게 누가 우승할 것인지 물어보지만 그것으로는 갈증을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스승을 설득해서 월드컵 중계를 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마을에 가서 텔레비전을 빌리고 위성 안테나를 빌려오는 일은 더 큰 난관이다. 우여곡절 끝에 안테나를 설치해도 텔레비전에 비치는 화면들은 원하는 장면이 아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얻으려 하는 것은 얻기 힘들고, 보고 싶은 것은 만나기 어렵다.
키엔체 노르부는 영리하게도 불교의 우화와 현실의 문제와 인간의 욕망을 교묘하게 섞어서 보여준다. 한참 치열한 경기 장면에 몰두할 때 돌연한 정전은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그 사이 촛불에 비추어 한 승려가 펼치는 손가락 그림자극은 삶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꿈속에서 악마에게 쫓기고 쫓겨 벼랑 끝에 서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되자 악마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할 때, 악마는 무심히 답한다. “이 꿈은 나의 것이 아니라 네가 꾸는 꿈이다. 네 꿈을 나더러 어쩌라는 말이냐.” 우리 앞에 펼쳐진 이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광경들은 결국 우리가 만든 것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좋은 이야기에는 삶의 진실이 불교 경전을 들여다보면 잘 짜인 영화 대본과 같은 구성을 갖췄다. 등장인물이 있고 특정한 장면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 있다. 그리고 질문과 부처님의 대답이 대화로 이어진다. 주인공, 장면, 사건, 대사가 모두 있는 셈이다. 짧은 경전은 단막극이고, 긴 경전은 대하드라마다. 그 속에는 좋은 이야기가 있고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빛나는 깨우침이 있다. 좋은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다. 키엔체 노르부의 <컵>은 즐겁고 유쾌하며 깊이가 있다.
그의 최근 작품들은 점차 복잡해지고 직관적인 장면보다 상징에 몰입하고 있다. 예술적인 평가는 높을 수 있어도 그의 영화는 점점 어려워졌다. 가장 최근 작품인 <헤마 헤마>에 이르면 대중과 무관하게 예술을 위한 영화라는 느낌이 짙다.
영화란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과정이다. 좋은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상징이 과해지고 신비 속으로 숨어 몇몇 사람만이 환호하는 이야기는 결코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간명하고 단순한 내용이 더 큰 울림을 갖는다.
월드컵이 끝나고 수도원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경전을 읽으며 노스님은 젊은 스님들에게 잔잔히 말한다.
“우리가 걷는 세상의 길은 온통 돌무더기로 뒤덮여있고, 그 돌들을 다 치울 수 없기에 우리는 튼튼한 신발을 싣고 길을 나서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 일이란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신을 싣는 것과 같다. 세상을 에워싼 폭력과 불행, 온갖 무지와 욕망과 가난을 다 거둘 수 없기에 그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마음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