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2020년 1차 문학나눔도서 | 2020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 쪽팔린 게 죽기보다 싫은 어느 응급실 레지던트의 삐딱한 생존 설명서
저작·역자 | 곽경훈 | 정가 | 14,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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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0-03-25 | 분야 |
문학>에세이>한국에세이 |
책정보 |
122*188mm | 328쪽|값 14,800원|ISBN 979-11-90136-11-2 (03810) |
‘끄트머리 3등’의 의과대학 성적. 어쩔 수 없이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출발하였지만, 자존심마저 버리고 대형병원의 부속품처럼 살 순 없다!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목적은 간데없고, 병원에서 누리는 조그마한 권력을 두고 ‘정치적인 싸움’에 골몰하는 대학병원 교수들!
하지만 그들에 맞서는 우리의 주인공 역시 ‘정의로운 영웅’은 아니다.
질 싸움은 피해 가며 기회가 오면 주먹질도 서슴지 않는, 골 때리는 의사의 좌충우돌 분투기.
환자들은 모를, 그리고 의사들은 쉬쉬할 날것 그대로의 병원 이야기.
곽경훈
1978년 겨울,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여행을 좋아해 소설가와 종군기자를 꿈꿨다. 그 밖에도 인류학자, 연극배우 등 다양한 진로를 꿈꾸었지만 현실적인 고민 끝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시골 보건지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병역을 마쳤다. 군 복무 후에도 인류학이나 의사학(medical history)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지 않았으나, 결국은 응급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었다.
현재 동해안 끝자락에 있는 한 도시의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근무가 없는 날에는 체육관에서 주짓수를 배우고 틈틈이 글을 쓴다. 그렇게 먼저 펴낸 책으로 《의사가 뭐라고》,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가 있다.
존경받는 인물은 못 되더라도, 전문직에 수반되는 최소한의 자존심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의사 가운을 입는다.
프롤로그 - 그렇게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되었다
1년차 - 그들만의 의사 놀이
• 미니무스 교수의 아침 회진
• 징계위원회의 추억
• 수상한 전원 문의
• 응급의학과 주제에?
• 우리 임상과 문제가 아닙니다
2년차 - 곽경훈이 문제네
• 패혈증 쇼크 정복기
• 달라질 것은 없었다
• 우두머리 없는 병사의 서러움
• 진공관 교수의 등장
• 교수님 길들이기
• 병원에 아는 사람 있습니까?
3년차 - 소름 끼치는 현실주의
• 누구의 책임인가
• 전염병의 시대
• 최악의 모욕
• 데자뷰
• 자네는 왜 그렇게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나?
• 마녀 교수
4년차 - 의국장이 되었지만
• 자네가 수고 좀 하게
• 해피엔딩
• 썩은 고기의 냄새
•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소시지 굽는 방법
• 초음파 악당
에필로그 - 괴물의 뱃속에서 살아남는 방법
이 책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솔직하다.
골 때리는 의사가 쓴 뼈 때리는 병원 이야기.
- 박재영(청년의사 편집주간,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 진행자)
곽경훈은 의대에 가고 싶지 않았다. 종군기자가 되고 싶었고, 그게 너무 위험하다면 인류학자가 되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 내내 성적이 좋았다. 종군기자나 인류학자를 반길 만큼 여유로운 집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꿈을 이루고 싶을 만큼의 재능이나 의지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의대에 갔다.
그저 ‘성적에 맞춰’ 의대에 갔으니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한 번의 유급을 거쳐 7년 만에 ‘끄트머리에서 3등’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지원하고 싶던 전공은 정신과였으나, 이번에도 ‘성적에 맞춰’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되었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는 이런 고백을 시작으로 저자가 ‘최악의 응급실’에서 보낸 4년의 레지던트 기간을 회고하는 내용의 책이다. 특히 ‘미니무스 교수’로 대변되는 무능하고 욕심 많은 리더와 그의 눈치만을 보며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의국 분위기가 얼마나 무책임한 결과를 낳았는지 고발하는 내용이다.
응급실을 책임지는 응급의학과장 미니무스 교수는 일견 ‘유능한 의사’처럼 보였지만 그의 진짜 실력은 확인하긴 어려웠다. 다른 무엇보다 ‘월~금 9시 출근 6시 퇴근’을 칼같이 지켰고, 그래서 그가 실제로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 누군가 환자를 적극적으로 진료하려 들면 “응급의학과는 이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니야.”라고 호통을 치며 막았다. 그러다 보니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들도 도착 당시 사망으로 판명된 환자에게 시체검안서를 발부하고 가망 없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정도의 일만 하며 ‘평온한 일상’에 집중했다.
병원에서 응급의학과는 ‘미니무스 교수가 이끄는 잉여집단’으로 통했다. 하지만 다른 과라고 딱히 더 나을 것도 없었다. 위중한 환자가 도착해 각 임상과 레지던트들을 불러도 서로 “우리 임상과에 해당하는 환자가 아닙니다.”라며 돌아서기 일쑤였다.
그러한 책임 전가 속에서 ‘좀처럼 믿기 힘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 반복되었다. 법적으로 ‘의료 사고’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막을 수 있는 사망’이었던 경우들이다. 어쩌면 대형병원 응급실의 생리에 대한 ‘내부고발’이라고 할 수도 있을 이 책은, 환자들은 접하기 어려운 그리고 의사들은 숨기고 싶은 병원 내부의 이야기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전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싸운다.
완벽하게 수직 계열화된 조직 내에서 철저하게 계급에 맞춘 생존 논리와 맞선다.
- 김남훈(프로레슬러 겸 격투기 해설가, 작가)
곽경훈은 싸운다. 아마추어 복서 경험이 있는 곽경훈은 실제로 주먹을 쓰기도 한다. “야, 응급의학과 따위가 진료하려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이 말은 내뱉은 내과 2년차 레지던트는 패혈증 가능성이 있으니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응급의학과 1년차 곽경훈의 말을 계속 무시하고 딴청을 피우다가 결국은 곽경훈의 주먹맛을 본다. 물론 곽경훈 역시 덕분에 징계위원회의 맛을 본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주먹을 날리지는 않는다. 1년차 때의 그 사건으로 ‘또라이’로 인정받은 덕에 이후로는 주먹을 쓸 일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역시 모두 그의 계획에 있었다. 이왕 눈 밖에 나겠다면, 확실하게 도장을 찍어라! ‘최악의 응급실’에서 4년을 버틴 그만의 삐딱한 생존법이다.
‘잉여집단’은 병원이 응급의학과에 부여한 역할이었다. 응급의학과는 응급의료센터 선정에서 탈락하지만 않을 딱 그만큼의 존재감이면 충분했다. 미니무스 교수와 레지던트들을 병원이 부여한 역할에 충실했고, 덕분에 ‘평온한 일상’을 얻었다. 다른 임상과로부터의 무시와 비아냥은 그 평온한 일상의 대가였다.
하지만 곽경훈은 병원과 응급의학과의 이 암묵적 합의를 따를 수 없었다. 일단 다른 임상과 레지던트들의 무시와 비아냥을 견딜 수 없었다. 쪽팔린 게 죽기보다 싫은 곽경훈이었다. 쪽팔린 게 싫은 건 다른 임상과 전공의들 앞에서만이 아니었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 앞에서 쪽팔린 것 역시 그에겐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부조리를 바로잡고 열정을 다해 일하겠다’는 정의로운 목표 같은 건 없었다. 의사라는 전문직에 몸담고 있는 자로서의 자존심. 그 자존심을 버릴 수가 없었을 뿐.
선임교수,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임상교수, 전임의, 4년차 레지던트, 3년차 레지던트, 2년차 레지던트, 1년차 레지던트. 이렇게 수직적으로 구성된 의사 집단 속에서 각 임상과 전임의와 레지던트는 ‘환자의 이익’에 신경 쓰기보다 ‘교수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교수들은 그런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이렇게 누리는 작은 권력을 즐겼고, 이를 두고 벌어지는 ‘정치 싸움’에 골몰했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지면 지위가 높은 순서대로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모른 척하려 했다. 그 사이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애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비단 대형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경직된 의사 결정 구조, 가식과 위선에 찬 상급자, 왜곡된 목표를 지닌 집단이라면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사회 전체의 합의보다 자기네 불문율과 내부 관행을 우선하는 집단이라면 어디서든 같은 부조리와 병폐를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을 떠올리게 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에게 전하는 연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부조리한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했던 개인의 보잘것없으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인 이 책을 저자는 “오늘도 괴물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고 투쟁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바친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국종, 남궁인과는 또 다른
‘글 잘 쓰는 의사’의 탄생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바로 저자의 ‘글빨’이다. 의사들이 펴낸 책은 많다. 하지만 글 잘 쓰는 의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훌륭한 말솜씨나 글재주와는 대척점에 있다.”면서도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등뼈 삼아 글을 정리”했다는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보면 외상외과 의사가 자신의 인생을 담아 쓸 수 있는 글의 한 경지를 확인하게 된다. 또 독자들을 눈물과 감동으로 몰아넣는 《지독한 하루》 《만약은 없다》의 작가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도 글 쓰는 의사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는 이들과 다른 결의 매력을 선보인다. 장르소설을 읽는 것 같은 흡인력과 재미가 저자 곽경훈의 장기다. 응급실 현장의 긴박한 상황에 대한 묘사. 인물을 대하는 시니컬함.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의학뿐 아니라 격투기와 역사, 인류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지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엮어 한 편의 이야기로 그려내는 구성력까지. 책장을 넘기다보면 중간에 끊을 수 없는 어느 메디컬 드라마의 세계에 빠져 버린 느낌이 든다. 다른 것을 다 떠나 그저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는 이에게도 이 책은 충분한 만족을 선사할 것이다.
환자가 CT를 촬영하고 돌아오자 하나씩 임상과가 사라졌다. 머리 CT에서 뇌출혈이 확인되지 않자 신경외과가 ‘우리 과 문제없음’이라 의무기록을 작성하고 사라졌다. 흉부 CT에도 늑골 골절과 혈흉이 관찰되지 않자 흉부외과가 사라졌다. 복부 CT도 정상이라 일반외과가 사라졌다. 희한하게도 팔다리에도 부러진 곳이 없어 정형외과도 ‘우리 과 문제없음’이라 기술하고 응급실을 떠났다. 결국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출혈의 원인은 안면부 개방성 골절로 밝혀졌는데 성형외과는 저혈량성 쇼크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_14~15쪽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 실제로 징계위원회에 호출되는 것은 멋지거나 낭만적인 일이 아니었다. _35쪽
그들은 내과에 해당하는 환자에 개입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미니무스 교수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우스운 광대놀음이나 하면 ‘잉여인간’이라 조롱하는 그들이었지만, 정작 이쪽에서 무엇이라도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일을 위해 노력하면 그것 역시 탐탁지 않게 여겼다. _39~40쪽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의사는 크게 3부류다. 숭고한 대의를 가슴에 품은 이상주의자 혹은 몽상가, 보람 있고 긴장 넘치는 삶을 사랑하는 모험가 그리고 흉부외과 외에는 지원할 수 있는 임상과가 없는 무능력자. 안타깝게도 그날의 흉부외과 당직 레지던트는 마지막 세 번째 부류에 해당했다. _66쪽
3월의 대학병원은 열정과 혼란이 섞여 있다. 나태하고 게으른 인간도 처음 의사 면허를 받고 인턴 수련을 시작하거나, 1년간의 인턴 수련 끝에 자신이 지원한 임상과의 1년차 레지던트가 되면 3월에는 새로운 각오로 열정을 불태우기 마련이다. 다만 3월의 그들은 처음 의사 면허를 받은 인턴, 이제 막 레지던트 수련을 시작한 1년차 레지던트,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로 첫 진료를 시작하는 전임의일 수밖에 없어 열정과 무관하게 혼란스럽기도 하다. _85~86쪽
다른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왜 쓸데없이 환자에게 개입해서 문제를 만드냐, 그냥 놔두었으면 내과에서 봤을 거다’가 그들의 반응이었다. _92쪽
왼손 잽과 1분 정도 시간이면 그를 바닥에 눕힐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곳은 복싱 링이 아니라 응급실 복도였다. _110쪽
“그런데 곽경훈 선생은 이 환자에게 얼마나 헌신할 각오가 있나? 환자를 입원시키면 레지던트 가운데 누군가는 환자를 담당해야 할 거야. 오프 때도 병원에 머물러야 하고 또 이 환자를 담당한다고 응급실 근무를 줄여 줄 수는 없는데 그럴 각오가 있나?” 나는 “당연히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진공관 교수는 웃으며 “그럼 내 이름으로 중환자실 입원장을 발부하게.”라고 지시했다. 2년차 레지던트 무렵의 나에게는 아주 감격적 순간이었다. _134쪽
응급실 복도를 지나는 순간 담배 냄새가 풍겼다. 응급의학과 의국 회의실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는 듯했다. 아무래도 미니무스 교수가 비슷한 연배의 교수들과 환담하는 듯했는데 미니무스 교수와 친한 교수들은 임상의사와 교육자로는 형편없었으나 ‘소문을 퍼트리는 도구’로는 아주 유용했다. (…) “교수님, 2년차 곽경훈입니다. 죄송합니다만 꼭 아셔야 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_147~148쪽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전염병에 대한 그런 근원적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희생양을 만드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전염병을 ‘신의 징벌’로 생각한 고대에는 ‘신을 노엽게 한 불손한 인간’을 찾아 제물로 바쳤다. 중세부터 18세기, 심지어 19세기 초반까지도 유대인과 집시가 ‘전염병을 퍼트리는 악랄한 집단’으로 몰리는 것은 유럽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는 그런 전통적 희생양을 만들기 어렵다. 대신 과학과 의학에 의존해서 이제는 ‘감염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책임을 묻곤 한다. _182~183쪽
나는 산부인과 당직 레지던트에게 다가가 태아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들었다. “그게 우리는 산부인과입니다. 산모를 담당하는 임상과일 뿐입니다. 태아요? 그건 소아과를 불러야죠.” 소아과를 부르라니! 그때까지 여러 임상과에서 ‘우리 임상과에 해당하는 환자가 아닙니다’라는 온갖 변명을 들었으나 그중 최악의 헛소리였다. _195쪽
휴대폰 통화 소리가 너무 커서 정형외과 3년차 레지던트 옆에 앉은 내게 통화 내용이 똑똑히 들렸다. (…) “야, 절대 우리가 사망 선언하지 마. 그리고 당장 철수해. 보호자들에게는 응급의학과에서 수술을 지연시켰다고 얘기해. 우리는 30분 내로 응급 수술을 하려고 했는데 응급의학과에서 지연시켰다고 얘기하고 책임을 다 거기로 넘겨. 어떻게 지연시켰는지는 네가 알아서 적당히 말해. 보호자는 의사가 아니니까 우리가 먼저 그럴듯하게 말하면 그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놈한테 뒤집어씌울 수 있어.” _224쪽
임상의사는 과학자보다 형사와 비슷하다. 형사는 범죄 현장에서 얻은 단서, 이전에 쌓인 범죄 기록, 탐문과 조사를 통해 얻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워 용의자를 추려내고 최종적으로 범죄자를 체포하여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고 정의를 구현한다. 임상의사는 환자의 증상과 진찰에서 얻은 단서를 통해 가설을 세우고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여 원인 질환을 규명하고 그에 적절한 치료를 통해 환자의 생명을 구한다. _269~270쪽
“곽경훈 선생! 나는 곽경훈 선생을 지도하는 교수야! 그런데 선생님이라니! 교수님으로 불러야지!”
웃겼다. 예상대로 초음파 악당은 ‘교수님’이란 호칭에 집착했다. 그런데 굳이 따지면 ‘교수’가 아니라 ‘임상교수’라 불러야 했다.
“제가 실례했군요. 임상교수님! ××× 임상교수님! 그렇게 정확한 호칭에 집착하는 분이니 조교수로 임용받은 후부터 교수님이라 불러야겠죠. 지금은 임상교수 신분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 임상교수님?” _311~312쪽
의사가 쓴 의사 이야기는 흔하다. 그러나 의사를 ‘전혀’ 미화하지 않는 책은 드물다. 이 책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솔직하다. 이 책을 읽으면 병원 가기가 두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세상의 모든 의사들이 다 이렇진 않으니 너무 걱정 마시길. 골 때리는 의사가 쓴 뼈 때리는 병원 이야기. 가끔 사람 때린 이야기도 나온다.
-박재영(청년의사 편집주간, 《개념의료》 저자)
이 책의 주인공은 싸운다. 책임교수,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임상교수, 전임의, 4년차 레지던트, 3년차 레지던트, 2년차 레지던트, 1년차 레지던트. 이렇게 완벽하게 수직 계열화된 조직 내에서 철저하게 계급에 맞춘 생존 논리와 맞선다. 싸우는 사람을 응원한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나는 저자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시합을 하다 크게 다쳐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을 때 나를 살리고 도우려고 했던 사람. 그 만남은 내 인생의 행운임에 틀림없다.
-김남훈(프로레슬러 겸 격투기 해설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