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예술로 화두 들다
법전스님과의 차담
현대 미술의 최전선 영국 런던에서 새로운 차원의 불교 미술을 탐색하고 있는 스님이 있다. 동국대학교 불교미술과를 졸업하고 2015년 런던 킹스턴대학교(Kingston University London)에 진학하여 순수 미술을 공부한 후 현지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온 법전 스님이다. 런던 킹스턴 지역에 위치한 한인 사찰 ‘로터스 마인드(Lotus Mind)’에서 법전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다.
우리 모두가 이미 부처임을
동국대학교에서 불교 미술을 수학하고 불화를 그리던 법전 스님은 유학 길에 오르며 ‘순수 미술’을 선택했다. 전공의 이름은 ‘순수 미술(Fine Art)’ 이었지만, 스님에게 순수 미술은 불교 미술과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대에 발맞춘 새로운 불교 미술로 법을 전하고 싶었다는 스님. 불교적 도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작품에서 불교의 지혜가 우러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해 왔다. 그래서 스님의 작 품은 한국에서 불교 미술이라 칭하는 작품과는 사뭇 다르다.
“기존에 제가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들을 버리는 것이 가장 어 려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어떻게든 ‘불교’를 작품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 게 되더라고요. 그때 한 교수님이 ‘굳이 불교적인 것을 담으려 하지 않 아도 스님이 만드는 작품들은 누가 보아도 이미 불교적입니다’라는 코 멘트를 해주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작품에 불교 를 의도적으로 넣으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이라는 유·무형적 사건을 통 해 발생하는 의미에 조금 더 초점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킹스턴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스 님에게 화두가 되었다. ‘왜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은 예술이 아닌가’, ‘무 엇이 그것을 결정하는가’,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질문들을 승려로서 불자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로 이어진 일련의 질문들이 스님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스님의 킹스턴대학교 졸업 작품이 었던 <레디메이드 붓다(Ready-made Buddha)>는 그간의 고민들이 가장 잘 담겨 있는 듯했다.
“졸업 작품을 준비할 당시에 살던 집 뒷마당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그 루 있었어요. 어찌나 솔잎이 많이 떨어지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비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항상 마당 한구석에 솔잎을 무더기로 쌓아놓았 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평범한 일상 속 장면이야말로 예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듯,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솔잎 무더기를 그대로 가지고 가서 전시했어요.”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셸 뒤샹이 1913년 예술로서 전시하기 위해 임의로 선택한 양산된 제품에 붙인 말인 ‘레디메이드(Ready-made)’. 뒤샹이 발견한 변기가 전시장에서 예술작품이 되었듯, 스님이 발견한 솔잎 무더기는 뒷마당을 떠나 전시장에서 붓다로 다시 태어났다.
“제 생각에 ‘작품’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이미지를 맞닥뜨렸을 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들 그 느낌들이 바로 예술인 것 같습니다. 예술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해야만 한다는 의식을 깬 뒤샹처럼, 이미 널려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어 레디메이 드 붓다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굳이 의도를 실어 만드는 것보다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조명하고 싶었어요.”
우리 스스로가 알지 못할 뿐 우리 모두가 이미 부처임을 스님은 예술로 익히고 예술로 설파하고 있었다.
의도 없는 예술
스님은 「뽓타빠다 경(Poṭṭhapāda Sutta)」 일부를 붓으로 옮겨 적은 쪽지를 선물로 주셨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 쁘다.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일 내가 의도하고 계속적으 로 [업을] 형성해 나가면 이런 나의 인식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인식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나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 성하지 않으리라.’ 스님의 또 다른 화두는 ‘예술에 있어서의 의도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였다. 숨 쉬는 것도 신체에 내재한 살고자 하는 의도로 보는 마 당에 예술 행위는 더할 나위 없는 의도함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방학 중에 한국에 잠시 들어가서 도반 스님과 함께 도솔암 근처 바닷 가를 산책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갯벌에 게들이 굴린 작은 흙 공들이 수천 개가 놓여 있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다시 밀물 때가 되면 다 없어져 버릴 텐데도 열심히 만들어 놓은 수천 개의 작은 공들을 두 시간 동 안 지켜보며 거기에도 어떤 규칙이나 패턴이 있지는 않을지 찾아보았 어요. 없더라고요. 이런 것이 궁극의 예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었어요. 그 어떤 예술적 의도도 들어 있지 않은 풍경이 내가 봄으로써 예술이 되는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 왔어요.”
그렇게 탄생한 스님의 사진작품 <Water is Wet>. 의도하지 않은 순수한 예술에 대한 탐구는 스님 스스로가 승려로서 품은 해탈에 대한 원과 많 이 닮아 있는 듯했다. 유학 생활을 거치며 스님에게 예술은 더 이상 의도를 품고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보는 행위’ 그 자체가
되었다. 작품에 내재하는 자성(自性)을 인정하지 않으니 공(空)이다. 그러고 나니 스님은 예술가로 서 무엇인가를 제작해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 어날 수 있었다. 작품 활동과 해외 포교를 꾸준히 병행해 왔던 스님은 당분간 수행에 좀 더 매진할 예정이라 밝혔다. 작품을 만들고 만들지 않고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니 스님은 이제, 더 가볍다.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 2019. 7. 23. ~ 2019. 9. 22. 문의: 02-2077-9483
정선, 김홍도를 비롯하여 노영, 한시각, 조세걸 등 조선 시대 화가들의 실경산수화 36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스님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나간 화가들의 여정도 살펴볼 수 있다.
박생광 展
대구미술관, 대구 | 2019. 5. 28. ~ 2019. 10. 20. 문의: 053-803-7900
전통적인 소재를 활용하여 ‘한국적 회화’를 구축했다 평가받는 박생광 작가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때 승려가 되기 위해 진주 호국사에 입산하기도 했다는 작가의 작품 속에 나타난 불교는 어떤 모습인지 느껴보자.
구나영 展
갤러리가비, 서울 | 2019. 8. 24. ~ 2019. 9. 17. 문의: 02-735-1036 희로애락의 감정과 일상에서 받은 영감들을 나무와 숲에 빗대어 수묵 기법으로 표현하는 구나영 작가의 전시. 붓을 들고 화폭 앞에 앉아 명상하듯 그려낸 구나영 작가의 마음 풍경을 만나보자.
글. 마인드디자인
한국불교를 한국전통문화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고민하는 청년사회적기업으로, 현재 불교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서울국제불교박람회·붓다아트페스티벌을 6년째 기획·운영하고 있다. 사찰브랜딩, 전시·이벤트, 디자인·상품개발(마인드리추얼), 전통미술공예품유통플랫폼(일상여백) 등 불교문화를 다양한 형태로 접근하며 ‘전통문화 일상화’라는 소셜미션을 이뤄나가고 있다.
사진. 법전스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