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는 방법

2019-07-25     동명 스님
바르후트 대탑 난간에 새겨진 마야부인의 태몽-꼴까따의 인디언뮤지엄 소장-


부처님은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을까?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뱃속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시험관에서 자라나지 않았다면, 예외는 거의 없다. 어머니 뱃속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을까? 다시 말하면, 어머니는 어떻게 임신하게 되었는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관계에 의해 어머니는 임신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업력’에 따라 어머니 뱃속에 들어간다. 그런데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성관계에 의해 미래의 부처님을 잉태한 것이 아니라, 오직 미래의 부처님인 보살의 ‘원력’에 의해 임신하게 된다. 부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숫도다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는 당시 오래도록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숫도다나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후계자를 생산하지 못한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마야부인이 특별한 꿈을 꾸었다. 여섯 개의 황금색 상아를 가졌고 몸의 일곱 부위가 땅에 닿는 하얀 코끼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왕비의 옆구리로 들어왔다. 신비로운 상쾌함을 느끼며 잠에서 깬 왕비는 왕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꿈은 곧 미래의 부처님께서 마야부인에게 잉태(孕胎)되었음을 상징한다.
미래의 부처님인 보살은 다음 생애에는 붓다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리라 마음먹고 도솔천에서 몸을 버리고 하강하여 어머니의 옆구리를 통해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이는 아기 부처님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관계로부터 잉태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관계로부터 잉태되지 않은 성인이 또 한 분 계시다. 바로 예수님이다. 그는 신(神, God)의 뜻에 따라 한 번도 성관계를 갖지 않은 약혼녀에게 잉태된다. 두 성인이 이 세상에 오시는 방법이 비슷하면서도 사뭇 대조적이다. 성관계를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순결’을 뜻하며, 이는 똑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순결이 요구되는 처녀이자 약혼녀인 어머니에게 잉태되는 반면, 부처님은 유부녀이자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왕비에게 잉태된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매우 불온하여 신의 관점에서 바라봐야만 이해될 수 있는 일이지만, 부처님의 경우에는 성관계 없는 임신이라는 것조차 불분명할 정도로 이상할 것 없다. 부처님의 경우에는 최대한 무난하게 태어나셔서 자연스럽게 중생을 제도할 것이 예고되지만, 예수님의 경우에는 대단히 특별하게 태어나셔서 큰 충격을 줌으로써 세상의 주목을 끌리라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도 다른 것은 예수님의 탄생은 오직 신의 뜻이지만, 부처님의 탄생은 오직 스스로의 ‘원력’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불자들은 ‘신의 뜻’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원력’에 의해 살아가야 함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보살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간 이유
보살이 도솔천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니까야』와 『아함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부처님들의 일대기를 말씀해주시는 가운데 등장한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법을 알라. 보살은 도솔천에서 내려와 어머니의 바른편 옆구리를 통해 태에 들어갈 때 바른 생각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때 땅이 진동하여 큰 광명을 놓았다. 해와 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들까지도 크게 밝아졌다. 어둠 속에 묻혀 있었던 지옥의 중생들도 각각 서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광명은 악마의 궁전까지도 비추었다. 제석천을 비롯한 신들과 범천과 사문과 바라문, 그리고 모든 중생들도 큰 광명을 입었다.”(『장아함경』 「대본경(大本經)」)
보살은 ‘스스로’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왜 ‘오른쪽’인가? 인도 사람들에게 왼쪽은 깨끗하지 못하게 여겨지고, 오른쪽은 깨끗한 것으로 취급된다. 오른손으로는 밥을 먹고, 왼손으로는 뒤를 닦기 때문이다. 오른쪽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왜 ‘옆구리’인가? 이에 대해 혹자는 부처님이 크샤트리아 계급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베다 시대의 창조 신화에는 거인 푸루샤의 몸이 분할되어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들이 거인 푸루샤를 인간으로 분할할 때 “그의 입은 바라문이 되었고/ 그의 두 팔은 라자냐(크샤트리아)가 되었고/ 그의 두 넓적다리는 바이샤가 되었으며/ 그의 발에서는 수드라가 생겨났다”라는 『리그베다』의 게송이 그것이다. 두 팔 대신 겨드랑이나 옆구리에서 크샤트리아가 탄생했다는 내용으로도 변형되는데, 이를 두고 부처님이 크샤트리아 계급이기 때문에 옆구리를 통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갔으며 태어날 때도 옆구리로 나오셨다는 얘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계급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보인다.
산스크리트로 창작된 서사시 『붓다짜리따(Buddhacarita)』에는 “우루왕은 다리로부터, 무리투왕은 팔로부터/ 인드라 신과 같은 만다트리왕은 정수리로부터 태어났으나/ 카크시바트왕은 겨드랑이로 태어났으니/ 왕자의 탄생도 그와 같았다”라고 적혀 있다. 이는 크샤트리아라고 해서 옆구리나 겨드랑이나 팔을 통해서만 잉태되거나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보살이 옆구리를 통해서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간 것은 부처님이 보통 사람들과는 태생적으로 다른 신이(神異)한 존재임을 강조한 것일 뿐, 계급을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 있진 않다는 것이다. 어쨌든 미래의 부처님인 보살은 옆구리를 통해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보살이 보통 사람들처럼 질(膣)을 통해서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청정함이 그대로 유지되었음을 말해준다.
바른 생각이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삿된 생각으로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가지만, 보살은 삿된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말한다. 『대지도론』은 “만일 남성이라면 어머니에 대해 애정을 품고 생각하길 ‘이 여인과 나는 잘 맞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반대로 미워하는 생각을 품는다. 만일 여성이라면 아버지에 대해 애정을 품고 생각하길 ‘이 남자와 나는 잘 맞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어머니에 대해서는 반대로 미워하는 생각을 품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살은 누가 그의 아버지이고 누가 그의 어머니인지 미리 알아서, ‘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몸을 키워주리라. 나는 부모에 의지해 태어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니, 이를 바른 생각으로 어머니의 태에 든다고 하는 것이다.

태생이 아니라 행위가 귀천을 결정한다
부처님이 이렇게 신이한 방식으로 어머니의 몸에 잉태되는 이유는 부처님이 보통 사람들과는 태생부터 다른 존재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 줄기차게 강조하신 태생이 귀천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業, ⓟkamma, ⓢkarma)가 귀천을 결정한다는 가르침과는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분명히 모순된다.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널리 홍포하기 위한 방편을 쓸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부처님이 태생이 아니라 행위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이유는 인도 사회가 태생을 너무나도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남다른 존재가 되었을 때 당신의 가르침이 더욱 널리 전파될 수 있음을 부처님께서는 (또는 경전의유통자들은) 고려하셨던 것이다.
실로 인도인들은 비천하게 태어났으나 각고의 노력으로 크게 성공한 이보다 설사 실패했다 하더라도 귀하게 태어난 이를 존중한다. 인도 사회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홍포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애초부터 위대하게 태어났음을 강조하는 것이 유용했던 것이다. 부처님과 관련된 신화 중에서 특히 탄생 신화가 많은 이유이다.
부처님의 화려한 탄생 신화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방편이었다. 태생이 귀천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부처님의탄생 신화는 당시 결정적이었던 ‘신(神)’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벗어난 독특한‘신화’였다. 부처님의 어머니 뱃속으로의 이동은 신이(新異)하긴 하지만, 신의뜻에 의해 신기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의 원력’에 따라 특별해진 ‘행위의 결과’이다. 부처님의 탄생 신화도 태생이 아니라 행위가 귀천을 결정함을 암시하고 있음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신화는 우리들로 하여금 다음 생애에는 ‘스스로의 의지’로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있을 정도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동명 스님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지홍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구족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북한산 중흥사에서 살고 있다. 출가 전 펴낸 책으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