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마음의 직업을 바꾸세요

2019-01-03     배영대
배영대 중앙일보 문화 선임 기자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온다는 발상은 365일이 반복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겁니다. 새해를 맞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새해의 마음을 초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무엇인가 시작할 때의 첫 마음입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합니다. 새해는 초심을 세우는 때입니다. 초심은 초발심의 줄임말이기도 합니다. 작심삼일로 흔들릴지언정 돌아갈 초심조차 없다면 흔들릴 때마다 제어장치가 없게 됩니다. 신라시대 의상 스님이 “초발심 때가 바로 깨달음의 시간”이라고 하신 말씀도 그런 의미로 보여요.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면서 흔들릴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고, 다시 또 돌아가고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초발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불자의 공통 초발심은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처님의 마음, 즉 깨달은 마음을 닮고자 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마음이라고 하면 갑자기 어려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현대 명상에서 쓰는 알아차림이라는 용어도 괜찮아 보입니다. 상황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은 일상에서 늘 일어납니다. 그런데 무엇을 알아차리는 것인가요? 부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라고 하지요.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순간 즉각 ‘아! 지금 내가 부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초심 즉 부처님의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돌아올 수 있다면 화가 제2, 제3의 분노로 확장되면서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겠지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한 번 알아차림을 해보면 두 번 세 번도 할 수 있고, 그게 쌓이다 보면 습관이 된다고 알아차림의 경험자들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5년 전 겨울, 새해를 앞둔 어느 추운 날이 기억납니다. 저의 은사스님이 해주신 말씀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제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의 직업을 바꾸세요.” 

처음에 어리둥절했습니다. 마음에도 직업이 있는가? 의아했습니다. 직업이라는 말에 생각이 걸린 겁니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고달픈 현실을 피해 산사로 들어오라는 소리인가? 그런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닐 수만 있다면 계속 다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직업을 바꾸라는 말이 저의 삶에 벼락처럼 내리치는 죽비였음을 알아차리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바꿀 것은 단지 마음가짐뿐이었습니다.

마음 씀씀이가 달라져야 한다는 얘깁니다. 밖으로 향해 있던 나의 시선을 내 안으로 회전시키는 일입니다. 원망과 분노의 마음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인색한 마음에서 베푸는 마음으로, 속 좁은 마음에서 큰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의 크기를 태산만큼 키워내는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감사할 일입니다. 천당과 지옥, 삶과 죽음이 한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마음의 직업을 바꾸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진정한 주인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귀한 존재이고 싶어합니다. 귀함과 천함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부처님이 성도 직후 하신 말씀에서 불교의 원초적 성격을 볼 수 있습니다.

“출생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오. 출생에 의해 브라흐민이 되는 것도 아니오. 행위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고, 행위에 의해 브라흐민이 되는 것이오.”(『숫따니빠따』, 일아 번역, 불광출판사)

신분 차별이 심했던 카스트 계급 사회에서 맨 위층에는 브라흐민이 있었고 맨 아래에는 불가촉천민이 있었습니다. 출생 신분으로 귀와 천을 나누지 않은 부처님의 말씀은 파격적입니다. 

부처님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천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능력이 있는데도 부모를 돌보지 않는 사람, 거짓말이나 이간질로 남을 화나게 하는 사람, 베풀 줄 모르고 인색하기만 한 사람, 탐욕스럽고, 교활하며, 뻔뻔한 사람도 부처님이 경계한 천한 부류에 속합니다. 

그것으로 그친 것은 아닙니다. 매 순간 알아차림을 통해 다시 초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배영대
서강대 철학박사.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중앙선데이에서 ‘배영대의 명상만리’를 연재 중이다. 저서로 『대한제국 120년, 다시 쓰는 근대사(근간)』, 『실학별곡, 신화의 종언(근간 예정)』이 있다. 논문 「도와 균형」, 「곽점 죽간본 노자 연구」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