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새로운 시간을 위하여
해가 진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은 새해를 맞는 설렘보다 진하다. 지난 시간을 뒤적이는 한 해의 끝은 아릿하다. 돌아가 다시 피가 돌게 할 수 없는 시간들.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동여매어 어딘가에 묻고 새해 속으로 들어간다. 누가 이렇듯 지난 시간을 묻고 새로운 시간을 받아들일 생각을 했을까. 누가 시간을 토막 내기 시작했을까.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은 시간과 불이었다. 한 시간, 한 나절, 하루, 한 달, 일 년, 십 년, 백 년….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토막 내고, 시간마다에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지금 연年이라는 단위의 마지막에 모여 있다. 우리가 빠져나오면 곧바로 박제가 되는 시간들. 내가 들어 있었지만 결국 내가 빠져나왔다. 그래서 내가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시간들.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얼마나 위험했던가.
시간을 발명했지만 인류는 오래전부터 시간의 지배를 받아왔다. 시간은 흐를수록 인간을 더욱 강하게 옥죄었다. 나약해진 현대인들은 시간에 호소하고, 시간에 경배하고 있다. 우리에게 빠름은 줄곧 최고의 미덕이었다. 너나없이 달렸다. 하지만 인류가 속도를 숭배할수록 그 스피드는 공포였다. 뒤처지면 세상에서 낙오할 것이라는 생각이 모든 것을 삼켰다. 그 빠름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달리기만 했다.
첨단과학단지에서는,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또 개인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고 한다. 지구인들이 이렇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버스가 조금만 늦게 와도, 인터넷 접속이 조금만 늦어도, 휴대폰이 조금만 느려져도 짜증을 내고 분통을 터뜨린다.
시간은 쪼갤수록 뾰족해진다. 우리 곁에는 바늘 끝처럼 예리한 시간들이 서 있다. 어느 때부턴가 횡단보도에도 시간의 눈금이 등장했다. 푸른 신호등 아래 남은 시간을 알리는 점멸등을 달아놓았다. 처음에는 친절하고 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점멸등은 우리 행동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사람과 차량들이 점멸등만을 바라보며 깜박거리고 있었다. 시간을 토막 내어 걸어놓고 그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점멸등의 지시에 따라 사람은 뛰고 차는 질주했다. 기다려 주는 여유와 주위를 살피는 배려가 사라져 버렸다. 결국 횡단보도에는 늘 바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렇다고 이렇듯 지구촌에 급한 시간만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레빈은 ‘모든 문화에는 고유한 시간의 지문이 있다’고 했다. 수도승이 기도를 올리는 선방의 시간과 주가가 널뛰는 객장의 시간은 분명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과 노름판에서 패를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사람마다 결이 다른 시간이 주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야산 백련암에서 색다른 시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가을밤이었다. 바람이 불어와 백련암 뜰을 쓸고 있었다. 눈을 들어보니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떠 있었다. 저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작은 별로, 다시 한반도라는 곳으로, 다시 가야산으로, 또 그 안의 백련암이란 작은 절로 별빛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떠 있는 시간’을 보았다.
또 지리산 실상사를 찾았을 때였다. 온갖 망상을 짊어지고 버스에서 내렸다. 막 실상사에 들어서자 홀연 넓은 경내가 나타났다. 한여름 대낮이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뜰에 천년 석탑이 서 있었다. 그 앞에 서자 석탑의 검버섯에 시간이 딱 멈춰 있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보았다. 그때의 시간들은 지금도 내 안의 무늬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지금 휴대폰 하나씩 차고 서로에게 길을 묻는 고단한 유목민들이다. 우리의 여백을 흡입하는 휴대폰은 어디에서 우리를 호출할 지 모른다. 새해에도 우리를 쫓아다니는 무수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수시로 날카로운 시간들이 침공할 것이다. 함께 초록별 지구에 사는 사람들, 똑같이 시간에 찔리는 사람들. 새해에는 모두의 마음에 고운 무늬의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우리 다시 만나요, 바쁜 시간은 마지막 달력에 가둬두고 느긋한 지구촌에서.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