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상담실] 채워질 수 없는 사랑
지혜의 뜰, 열린 상담실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더러는 전혀 상반된 입장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괴로워하는 부인이 있는가 하면, 거꾸로 부인의 춤바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남편도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부인이나 남편과 사랑에 빠져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한 번은 중년의 남자가 필자의 동료를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성적인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남자의 직업은 흔히 말하는 제비족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카바레에서 만난 여자들을 상대로 잠자리의 파트너가 되어 주고는 그 댓가로 돈을 받아서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부인과의 성관계는 별 문제가 업는데 비해서, 부인 이외의 여자와 관계를 하려고 하면 임포텐스(성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치료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생각이 되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생계가 위협을 받는 일인지라 꼭 치료받기를 원한다고 매달려서 난처해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상적인 사랑보다는 비정상적인 사랑에 더 탐닉(眈溺)하는 경우를 보게 될 때가 있다. 얼마전에 갓 20대 중반을 넘긴 여자가 찾아왔다. 원래는 꽤나 아름다웠을 얼굴인데 그 동안의 세월이 시련을 남긴 탓인지, 나이에 비해서 서너 살 정도는 더 들어 보였다.
"선생님! 남자가 웬일인지 술만 마시면 저를 짓밟고 때려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그렇게 멀쩡하고 신사인데 술만 마시면 사람이 돌아버리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그 남자에 대한 적개심 때문인지 살기가 돌았다. 그 살기는 이내 한(恨)을 품은 강물로 변해서 그녀의 얼굴을 흘러내렸다.
"어떤 사이입니까?"
"…사실은 유부남이에요. 그동안 헤어질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을 했지만, 그동안 바친 내 청춘이 아까워서라도 도저히 헤어질 수가 없어요. 안되면 그 사람의 부인에게라도 찾아가서 담판을 짓겠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당돌할 정도로까지 보였지만, 그녀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만 해도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갔는데,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고등학교를 2학년 때에 옆의 짝이 학교를 무단결석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녀를 신뢰했던 담임선생님은 그녀로 하여금 짝을 찾아 학교를 나올 수 있도록 도와 주도록 하였는데, 그 짝은 이미 학교로부터 마음이 떠나 있었고, 집을 나와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친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친구의 자취방을 드나들었던 그녀였지만, 어느 결에 친구의 자유분방한 생활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용돈과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사치스러운 친구의 생활이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였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와의 불화가 생겼는데 평소 부모님이 자신을 잘 이해해주지 않고 차별대우를 한다고 여기던 차에, 심하게 꾸중을 듣게 되자 홧김에 가출을 하여 버렸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18세의 소녀가 손쉽게 배고픔을 해결하는 길은 뻔한 것이었다. 우선 당장의 방값과 세간 비용을 장만하기 위해서 친구가 다니던 술집 주인에게 비싼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린 다음부터는 오직 빚을 갚고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술을 따르는 생활을 계속했다.
마음에 드는 대학생과 연애를 한 적도 있었지만, 남자 쪽의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실연을 당한 뒤부터는 한없는 외로움이 덮쳐왔다.
그런 외로움이 극에 달했던 3년 전의 어느 날, 우연히 손님으로 들른 지금의 남자에게 한없는 정을 느꼈다. 흔히 말하듯이 첫눈에 반한 것이었는데, 차문을 먼저 열어주거나 옷을 들어주는 그 남자의 태도가 그렇게 신사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만나기를 바라던 이상적인 사람으로 그녀의 눈에 비추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진 뒤부터 생겼다. 남자의 태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돌변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갖은 모욕적인 행동을 하면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이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남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서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런 생활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과연 나와 같은 여자를 누가 받아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이런 생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결국 모든 문제는 사랑을 갈구하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여자의 경우도 외로움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순간에 그 남자가 따뜻한 태도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사랑에 굶주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이 베푸는 작은 친절함에도 잘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음식도 배가 고플 때는 아무 음식을 가져다 주어도 맛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외로운 순간에 만나는 남자와의 사귐은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여자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항상 자신만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자라왔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밑으로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그녀가 동생을 시샘하고 괴롭히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하던 어머니가 그녀를 시골에 있는 고모 집으로 보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모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지나칠 정도의 사랑을 베풀면서 키웠다. 그러다가 국민학교를 입학할 때가 되어서 자신을 사랑해 주던 고모를 떠나서 다시 부모님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흔히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경우들을 보게 되는데, 이 경우 아이는 두 번에 걸쳐서 큰 사랑의 상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 번은 정든 부모의 곁을 떠나서 친척집으로 갈 때이고, 두 번째는 그동안 정든 친척 집을 떠나서 다시 부모의 곁으로 돌아올 때이다. 이미 다른 형제들은 오랜 세월 동안 부모와 함께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한 편이 되어 있는 상태인데 비해서,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입장은 이방인과 같은 위치가 되기 쉽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라면서 항상 사랑의 결핍을 느끼게 된다. 대개의 경우 자신만이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들이 웬만큼 배려를 해주더라도 항상 사람에 굶주려 있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굶주림이 큰 만큼 사랑에 대한 갈구도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갈애(渴愛)가 큰 경우는 정상적인 사랑으로는 잘 만족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신에 부족한 사랑이 채워질 수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그것을 향해서 부나비처럼 자신의 몸을 불태워버리는 것이다. 정작 마음속의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증은 뒤로 남겨둔 채로.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