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세상은 꿈이어라
한 해가 깊어간다. 멈춰 서 있는 듯이 보이던, 혹은 어서 지나갔으면 싶었던 기억들이 밀려나고 또 밀려든다. 내 국민학교 같은 반이었던 방앗간 집 딸은 책을 또박또박 참 잘 읽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은주였다. 병장 말호봉 때, 김해가 고향이었던 내 군대 동기생은 전역을 불과 보름 앞두고 휴가를 명받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수송부였던 그는 겨우내 기름때에 손이 터 있었는데, 내가 지금껏 보아 온 사람 중에 가장 착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다가, 빵집에서 딱 한 번 만났던 여고생도 있다. 문경이 고향이었던 그이는 이제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가을에 도토리나무에서 꿀밤이 떨어지고, 대추나무에서 벌레 먹은 대추가 비틀어지고, 감나무 가지가 부러지듯 그렇게 기억은 흘러나가고 또 흘러들어온다. 시간을 시간인 줄도 모르고 살다가, 문득 돌아보면 세월은 너무 낯설어서 남의 기억이거나 남의 시간인 것처럼 보인다. 이 짠한 시간의 기억들이 섬뜩하니 겨드랑이를 스쳐 지나갈 때 소스라치듯 몸이 떨린다. 한 번만, 한 번만이라고 외쳐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 또한 가망 없고 하릴없는 짓임을 모르지 않는다.
형편이 닿으면 기억을 좀 잊고 살고 싶다. 내 기억인지 아니면 남의 기억인지도 모르는 기억들이 실려 오면, 아주 낯선 표정으로, ‘누구세요?’ 하고 수줍게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겪지 않은 남의 일처럼, 가을 저녁 바람이나 까마득한 별처럼 내 기억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짠하게 여겨지는 아무것도 없어서, 낙동강 어귀의 비릿한 민물고기 냄새처럼 바람에 그냥 떠다녔으면 좋겠다. 그렇게 애당초 세상에 오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 없이 바람처럼 다녀갔으면 좋겠다.
어제, 꿈을 꿨다. 깨고 나서 온종일 께름칙했다. 젊은 날의 꿈은 깨고 나면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는데, 나이 들어서 꾸는 꿈은 온종일 찜찜하다. 기억과 꿈과 실재가 뒤죽박죽되는 느낌이랄까, 그런 찜찜함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기억이나 꿈도 지금 현재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실재일 것이다.
향백공向伯恭이 대혜 선사의 유배지로 편지를 보냈다. 대혜의 나이 61세 되던 1149년의 일이다. 그가 보낸 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혜의 답장만 볼 수 있다. 『서장書狀』에 있는 내용을 보면, 향백공은 대혜 선사에게, 깨달은 때와 깨닫지 못한 때 그리고 꿈꾸고 있을 때와 깨어있을 때가 같아야 하는 것이냐(悟與未悟, 夢與覺一)고 물었던 것 같다.
향백공은 중국 송나라 때 호부戶部에서 시랑侍郞 벼슬에 있던 사람이다. 『서장』에는 시랑 벼슬에 있던 사람이 여럿 나온다. 시랑은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줄인 호칭인데, 중국에서 왕명 출납을 맡아보던 관서官署인 문하성門下省의 장관인 시중侍中을 보좌하는 직책이었다. 시랑벼슬에 있던 사람이 왜 이런 난해한 질문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그는 부지런히 수행했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달은 때와 깨닫지 못한 때 그리고 꿈꾸고 있을 때와 깨어있을 때가 다르지 않다는 선의 말귀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편지를 받고 대혜는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편지의 내용은 대혜 자신이 36세 즈음에 의심했던 것과 같은 문제였다. 그래서 “읽다 보니 저도 모르게 가려운 곳을 긁는 것 같았다”고 답장에 적었다. 그리고 자신도 이 문제를 가지고 스승인 원오圓悟 선사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그때 스승은 다만 손으로 가리키며 짧게 타일렀었다. “그만, 그만하거라. 망상을 멈추거라, 망상을 멈추거라.” 의심이 풀리지 않은 대혜가 다시 길게 물었다.
“잠들기 전에는 부처님이 좋다고 한 것은 따라 하고 해롭다고 한 것은 하지 않습니다. 또 여러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하여 조금 얻게 된 것도 깨어있을 때는 전부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어 잠이 들려고 하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꿈에 황금을 보면 꿈속에서 기쁘기가 한량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칼이나 몽둥이로 저를 해치려 하는 것과 같은 나쁜 일을 만나면 두려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이렇듯 꿈속에서조차 제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데, 하물며 죽음에 이르러 육신이 흩어지고 온갖 고통이 걷잡을 수 없이 닥쳐오게 되면 어떻게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 지경에 이르니 황당합니다.”
말을 다 들은 후에도 스승은 여전히 같은 대답만 반복했다. “네가 지금까지 말한 온갖 망상이 끊어질 때를 기다려라. 그러면 깨어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가 똑같아지는 데에 자연히 이르게 될 것이다.” 이 대답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스승이 다시 말했다. “부처가 나투는 곳 어디나 따뜻한 남풍이 불어온다(擧諸佛出身處 薰風自南來). ”
이 말을 듣는 순간, 대혜는 문득 마음속에 걸려 있던 어떤 것이 사라졌다. 가슴속에 걸려 있던 것이 없어진 후에 비로소 꿈속에 있는 때가 곧 깨어있는 때이고, 깨어있는 때가 곧 꿈속에 있는 때임을 알게 되었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이치는 남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말해 줄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꿈속의 일을 가지고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과 같았다.
『성유식론成唯識論』이라는 많이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 있다. 마음작용을 집중적으로 설명한 책인데 불교의 마음관을 집대성했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는 마음이 일어나는 과정을 아홉 가지 단계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유분有分이다. 눈앞의 대상을 좇아 별다른 생각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며 ‘있구나’ 하는 정도만 인지하는 마음 상태다. 아이쇼핑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다음엔 두 번째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것 중에서 어떤 특정한 것이 눈에 들어오는 마음 상태다. ‘눈에 띈다’거나 속된말로 ‘꽂힌다’고 표현할 수 있는 마음 작용이다. 능인발能引發이라고 명칭이 붙어 있다.
세 번째는 눈에 띈 것을 이리저리 재어보는 마음 작용이 이어진다. 이런 마음 작용을 견심見心이라고 한다. 재어보는 기준이나 내용은 여러 가지다. 유행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고, 남들이 뭐라고 할지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다음엔 자기에게 이로운지 손해인지를 따지는 마음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것이 등심구심等尋求心이다. 이렇게 저렇게 재어보던 마음이 결국 이익이냐 손해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왜 이로운지 혹은 해로운지를 마침내 판단 내지는 결정하는 마음 상태가 된다. 등관철심等貫徹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기에게 이로운지 혹은 해로운지 결정을 내린 마음은 이제 그 이유를 굳이 말로 설득하려고 한다. 옆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없으면 자기 자신에게라도 왜 지금 저것을 사야 하는지 혹은 사지 말아야 하는지를 막 설명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굳이 말로 설명하려는 이유는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마음 작용은 이름도 안입심安立心이다. 그다음 일곱 번째는 자신이 판단한 이로움과 해로움을 기준으로 행동에 옮기려는 마음 상태가 된다. 세용심勢用心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끝이 아니다. 자기 뜻대로 선택하고 행동한 다음에도 마음은 사후 보완 작업을 한다. 이것이 반연심返緣心 즉 행동으로 옮기기를 마친 다음에 이전의 마음에 다시 돌이켜 꿰맞추는 마음작용이다. 일종의 자기변명 내지는 자기합리화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엔 마음이 처음의 그 자리,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태인 유분有分으로 돌아간다. 마음은 본래 이런 아홉 단계로 순식간에 작용한다는 게 『성유식론』의 설명이다.
흔히들 꿈을 망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실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꿈이든 눈앞의 일이든 모두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연히 실재와 망상을 따로 정한다. 이는 꿈속에서 꿈을 말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모든 꿈은 실재이며 모든 실재는 꿈이다(全夢是實 全實是夢). 모든 게 마음 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다. “지극한 사람은 꿈이 없다”는 말의 진의가 이러할 것이다.
박재현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저술로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 깨달음의 신화』, 만해, 그날들』 등이 있고,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부산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에서 겨우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