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설거지하고 울력하고... 서울 옥천암 거사회

이제 거사의 시대를 열다

2018-10-01     유윤정

이제 거사의 시대를 열다

지혜를 실천하는 우바새, 거사居士. 우리는 절에서 만난 남성 불자를 거사라 부릅니다. 이제는 거사들이 활약할 때입니다. 우리 지역 사회에서, 사중에서 오랜 시간 기운차게 활약하고 있는 거사들의 모임을 찾아가 봅니다. 이들은 사찰에서 만난, 법으로 맺어진 형제들이었습니다. 거사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사중의 울력을 도맡기도 하고, 손이 필요한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하며, 자신의 신행생활을 이어나가면서도 형제 도반과 속 깊은 신행 이야기를 나눕니다. 거사이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멋진 거사들을 만났습니다. 

01    한마음선원 법형제회  조혜영
02    부산 마하사 거사림회  김우진
03    대구 정법회 거사림  김우진
04    군포 정각사 거사회  김우진
05    서울 옥천암 거사회  유윤정
06    거제불교거사림  김우진

사진 : 최배문

설거지 베테랑 거사회가 나가신다    

“아유! 불기 닦는 일은 힘 있는 우리 거사들이 해야지요.” 8월 셋째 주 서울 홍은동 옥천암(주지 종민 스님)의 일요법회, 옥천암 거사회 거사들이 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매며 모였다. 방금 전까지 공양간에서 배식 봉사와 설거지 봉사를 함께 한 후다. 사중 이곳저곳 어느 곳 하나 힘쓰지 않는 데 없는 옥천암의 분위기 메이커, 거사들이 뭉쳤다. 불기 하나를 닦는 데도 껄껄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    거사로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일요일 열 한 시, 일요법회를 시작하는 시간. 백불 마애불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드리던 거사들이 법회를 보기 위해 하나둘 설법전으로 모였다. 설법전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한 주의 안부를 묻는 에너지가 기운차다. 

법회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설법단의 맨 앞줄을 거사들이 가득 채웠다. 오늘의 법사인 탄경 스님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하고 법문을 시작하자, 거사들이 맨 앞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법문을 곱씹었다.

2007년 도심 포교를 활성화하고자 했던 원력으로 발족해, 현재 60여 명이 함께하는 옥천암 거사회. 매주 열리는 일요법회가 되면 평균 20여 명의 거사가 법당에 함께 모인다. 이날 셋째 주 일요일은 거사회가 사중 봉사와 월례회의를 하는 날이기도 해, 거사들이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 봉사는 공양간 배식과 설거지 그리고 불기 닦기다. 배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서로를 ‘설거지 베테랑’이라고 칭찬하는 모습이 낯설지만 유쾌했다. 불기에 광택제를 발라 윤을 낼 땐 한 거사가 노래를 부르며 울력의 분위기를 돋웠다.

“거사회가 없었을 땐 절에 오는 걸 쑥스러워 하는 거사님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보살님들이 많으시니 잠깐 왔다가도 쑥스러워 법회만 보고 일찍 돌아가는 거사님들도 많이 계셨죠. 아니면 일 년에 한두 번 큰 행사 때만 오거나요. 지금은 거사회가 있으니 다들 편안하게 나오세요. 이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모두들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절에 옵니다.”

임재광(54) 옥천암 거사회장은 함께 이야기 나눌 도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활동한다고 전했다. 신용삼(69) 거사회 부회장도 “절 문턱을 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거사회가 그 문턱을 쉽게 넘게 했다”고 덧붙였다. 장희영(58) 씨는 예전에는 절에 와도 예불이나 기도법회만 참석하고 돌아가곤 했지만, 거사회에 속한 다음부터는 더욱 활발한 신행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만약 거사회에 소속돼있지 않았다면, 그저 법회에 나와 혼자 신행만 하고 돌아갔을 겁니다. 거사회에는 도반이 있습니다. 신행생활을 이어나가면서도 도반과 속 깊은 신행 이야기를 교류할 수 있어요. 거사회원으로 있으면서부터는 우리 손으로 절을 가꾸니, 사찰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게 되요. 거사로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그밖에도 이들은 거사들이 법회에 참석하면서부터 자녀는 어린이・청소년 법회에 가고 부모는 일요법회에 참석하는, 온 가족이 절에 오는 가정이 늘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진 : 최배문

|    봉사도 으뜸! 단합도 으뜸!

“저희는 사찰에서 만난, 법으로 맺어진 가족입니다. 비슷한 연령의 도반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지요.”
임 회장의 말처럼 이들의 가족같은 친밀함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옥천암 거사들은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만난다고 했다. 하루는 절에서 만난다면, 하루는 날이 좋아 밖에서 만난다. 마음 맞는 이들이 함께 모여 족구, 당구 등 스포츠 경기를 하기도 하고, 식사도 나눈다. 애경사는 당연히 함께한다. 전체 단합도 으뜸이다. 지난 8월 15일에는 흥국사 인근으로 단합대회도 다녀왔다. 40대 중반부터 70대까지 활동하는 거사회 도반들은 서로에게 든든한 벗이었다. 장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가 전문가다. 

“살면서 내 일이 아닌 분야에서 생길 일들이 많지요. 예를 들면 세무라던가, 건축, 인테리어 등 여러가지요. 모두 저마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기에 도반으로써 서로 궁금한 것은 편안하게 물어보고 도울 수 있다는 것도 좋습니다.”

이들에게 거사회란 옥천암이라는 울타리에서 만난 공동체다. 법으로 맺어진 도반이자,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생활 커뮤니티였다.

이러한 친밀함은 탄탄한 신행으로까지 이어졌다. 좋은 도반과 함께 하는 보시는 언제나 행복하다. 옥천암 거사회는 사중에서 크고 작은 울력봉사를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외부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나갔다. 4년 전부터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인근 요양원에서 봉사를 이어왔다. 장학금도 마련했다. 옥천암 거사회와 자모회, 사중이 십시일반 모아 자녀들과 학인스님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당신들의 공부도 놓치지 않았다. 회원들은 모두 기본교리 수업을 이수했다. 회원 중에는 포교사도 있고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이제 또 무엇을 꾸려볼까. 요즘 회원들은 11월 성지순례 기획으로 촘촘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성지 순례는 매년 봄, 가을 두 번 갑니다. 거사회 회원들이 기획하고, 회원들과 가족, 동참을 원하는 옥천암 신도와 함께 떠나지요. 이번 가을 8회차 성지순례는 11월 3일에 태백산 법흥사와 정암사, 적멸보궁 순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거사회 활동 문화가 다른 절에서도 활발히 일어나기를 이들은 진심 어리게 바랐다. 임 회장은 “거사 문화가 발전해서 다른 사찰의 거사님들과도 왕래할 수 있다면, 함께 체육대회도 하고 봉사도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며 이야기를 건넸다. 

“힘든 울력은 거사들이라서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거사들이 함께 만나는 것이 좋으니 내가 먼저 절에 온 사람에게 친절히 포교합니다. 거사회가 낯선 사람들에게는 먼저 손을 내밉니다. 이게 도심 포교가 아닐까요. 저희는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편안하게 만나는 우리 거사회가 정말 좋습니다. 거사로서 활발하게 신행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옥천암 거사회는 신행활동도 탄탄히 이어가면서, 인근 사찰과도 교류를 넓히고 싶다고 발원했다. 그 빛나는 서원처럼 옥천암 거사회의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도반의 울타리는 넓고 튼튼하게 짜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