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나를 흔들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인연, 부처님오신날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2018-09-03     이창숙
그림 : 박혜상

올해(불기2562년) 부처님오신날은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슬픈 날이 되고 말았다.

이승에서 맺으셨던 수많은 아름다운 인연들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사랑하는 아버지께서는 다시는 돌아오시지 못하는 먼 곳으로 떠나셨다. 

이 슬픔을 감히 어디에다 비교할 수 있을까? 임종의 순간에도 듣고 계시리라는 생각으로 드렸던 그 말은 꼭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아주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라서 정말 행복하고 좋았습니다”라고 했던 말들…. 가슴이 미어진다.

온 누리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충만한 날 부처님은 오셨는데 아버지는 떠나셨다. 아버지와 딸로 만난 애틋하고 고귀한 천륜으로 맺어진 인연을 눈물로 배웅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밉고 또 미웠다. 생과 사가 어찌 정해놓고 오고 갈 수 있겠냐만, 부처님오신날 떠나셨다 하니 여느 분들께서는 그 좋은 날 가셨음을 도리어 위로해 주시기도 했다. 위중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며칠만 계시면 부처님오신 날인데 그 좋은 날을 보시고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드렸던 말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분명, 하고 싶었던 말씀이 많으셨을 텐데 안타깝게 한마디도 못 하시고 가신 것은 아버지가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였을까?’ ‘정말 기다렸다가 가셨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애써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자식이 부모님을 떠나보내야 함에 있어 슬프고 아린 가슴은 어디에도 둘 곳이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떠나셨고 사십구재 중에 있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영원한 멘토가 되어 주시는 부처님 법을 만나게 된 계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지금! 오래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 내 삶을 흔든 불교를 만난 것은 10년 전 통도사 마산중앙포교당 정법사 영축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법사 불교대학을 다니며 교양반, 전공반, 경전반에 이르기까지 바른 이해와 바른 믿음, 바른 실천을 행할 수 있도록 정법의 가르침을 받았다.

마음속에 담고만 있었던 부처님 법을 만난다는 환희심으로 수업이 있는 날이면 마냥 즐겁기만 했었고, 함께하는 도반들이 있어 수업시간이 기다려졌던 그때가 추억으로 그려진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서도 불법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핑계로만 쌓아둘 뻔했었는데, 불교대학을 가겠다고 결심한 것이 내게는 살면서 참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2년의 불교대학 수업과정을 여법하게 마치고 졸업을 했고, 그 후 우연한 기회에 영축불교대학총동문회에서 월간으로 발행되는 동문회보 편집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은 부처님께서 나에게 주신 또 다른 기회였다. 동문회보 편집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더 많이 겸손함을 알아가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원고를 주셨던 호암 지태 스님과 불교대학 강의를 오셨던 큰스님과 교수님들 그리고 고마운 여러분들께도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시금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불교대학 재학 중 설악산 봉정암으로 떠났던 세 번의 순례는 내 삶에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모노드라마 같은 순간이 되었다. 부처님 진신사리보탑 앞에 엎드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수 없이 하게 했던 그 날이 아직도 그리움이 되어 남겨져 있다. 쏟아질 듯 헤아릴 수 없이 총총한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간절했던 마음을 부처님은 알고 계실까? 새벽 예불하는 스님의 맑고 청아한 염불 소리에 이유 없이 북받쳤던 눈물도 이제는 하얀 미소가 되어 다가와 준다. 아름답고 웅장한 설악의 위대함을 세 번의 가을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 또한 행운이었다. 

그리고 어느 해 여름, 경북 성주 가야산 자락의 고즈넉한 산사 심원사에서 만난 응파 스님께서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며 추천해 주신 책이 생각난다. ‘웰 다잉well dying’을 이야기한 책이었다. 책 속에 몇 구절을 옮겨 본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녹화방송이 아닌 생방송 중….”

“무엇을 어제라 하고 오늘이라 하며 내일이라 할 수 있는가.”

“이 땅에 고운미소 선물로 남겨 두시고 한세상 잘 살고 가노라고 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되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별빛으로 남을 것이다.”

책 속의 글귀를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듯 우리가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행운으로 와서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하게 살다 떠날 때도, 소풍 가기 전날처럼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설렘으로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미련이야 남겠지만 조금은 섭섭하게…. 다른 곳에서 또다시 만날 것만 같은 예감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한번쯤 생각하게 했던 글들과 함께 자꾸만 아버지가 생각나 후두둑 눈물 꽃이 피고 진다.

또 몇 해 전 부처님과의 인연은 더욱 향기롭게 이어져 차茶를 만나게 되었고 영축다도회에 입학을 했다. 전통차 문화연구와 현대인의 차 생활, 차 예절을 기본으로 두고 차를 통해 수행함으로써 내 삶에 바탕이 되어 주었다. 체계적인 이론수업과 함께 고운 자태로 남겨질 행다수업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대중보시도 있지만 헌다를 통한 신행활동이야말로, 하면 할수록 환희심이 가득해지는 행복한 배움이 된다. 차를 배우는 과정에서도 오로지 무한 무주상 보시로서 가르침을 행하시는 영축다도회의 여러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 교육반 3년을 마치고 사범반 1년 차다. 사범반 1년 차가 되면 사중에서 이루어지는 사십구재 막재가 있는 날에는 같이 공부한 도반들과 함께 봉사의 마음으로 지장전과 영가 전에 차茶공양을 올린다. 지극정성으로 우린 감로수 한 잔에 극락왕생의 발원을 담아, 이승과 영원히 이별을 고하는 날 같이 엎드려 ‘이 세상에 오셔서 못다 한 일들에 대한 집착은 훌훌 털어버리시고 아미타 부처님 계신 극락세계에서 무량한 행복 영원히 누리소서’라고 기도드린다.

비록 한잔의 차茶공양이라 할지라도 묵묵히 초심으로 돌아가서 하심을 배우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차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도 행운이요, 행복이며, 부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 또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늘 봉사하는 자세로 열심히 공부해서 훗날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으면 생각나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부처님오신날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사십구재가 며칠 남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십구재 때 우리는 발원을 담아 차를 우릴 것이다. 부처님오신날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부처님으로 오시기를 바라며…. 정성으로 우린 차를 아버님 전에 올리고 극락왕생을 두 손 모아 발원드릴 것이다.                                                           
이창숙. 법명 법성심. 마산 정법사 영축불교대학 전공11기, 영축다도회 15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