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평양 탐방기
평양, 그리 멀지도 다르지도 않은 곳
대한불교청년회 김성권 회장이 지난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이하 남측위) 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8월을 맞이해 대불청 회장의 눈으로 바라본 평양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_편집자 주
| 강가에서 낚시를, 강변에서 조깅을
평양, 직항로로 가면 한 시간이면 갈 곳이지만 중국 선양공항을 경유해서 가야 하는 불편함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을 출발해 중국 선양 공항에 도착했는데 일행에게 북한 총영사관에서 문자가 왔다고 했다. 안내하려는데 서로 본 적이 없으니 남측위 중 한 명이 2층 E 게이트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면 만나서 비자를 건네겠다고 한다. 오래전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고려항공 티켓을 받고 비행기로 향한다. 입구에서 맞아주는 단아한 스튜어디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톤의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웃음이 예쁘고 정겹다. 인사를 건네는데 살짝 갸우뚱한다. 대부분 승객이 중국과 북한 사람이었을 터인데 말투가 다른 조선인이니 그럴 수도 있으리다. 좌석에 앉으니 제일 먼저 로동신문을 준다. 체제 선전 및 북한의 소식과 세계 각국의 소식이 북한의 언어로 잘 풀어서 설명해 놓았다. 정말 오랜만에 활자로 된 신문을 보는 것 같다. 평양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북에서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신문을 스마트폰으로 보기 때문에 신문 발행이 과거보다 적어졌다고 한다.
얼마나 날았을까? 압록강 상공을 지난다는 기내방송에 반사적으로 얼굴은 창 밖 너머로 갔다. 고도가 높고 나무와 물빛이 분간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내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네 산하이니까.
압록강을 건너니 금세 평양공항에 도착했다. 북적이던 인천공항에 비하면 여유로워서 입국 또한 편안했다. 이미 북측위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반갑게 맞이해준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옆집 친구처럼 형처럼 정겹다. 버스를 타고 숙소인 보통강 호텔로 향한다. 북측위 청년학생분과 위원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27세이며 평양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며, 김일성종합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했다고 소개를 한다. 마른 체형에 밝은색 원피스를 입고 파우치를 쥐고 있는 모습이 남한의 20대 여성과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을 찾으라면 왼쪽 가슴에 패용한 휘장(배지) 정도랄까?
말을 많이 건네는 데 귀에 쏙 박히지는 않는다. 억양도 그렇지만 생소한 단어가 간간히 등장을 해서 서너 번 되물어보고서야 그 뜻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으로 가보라. 그 곳 사투리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었을 테니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평양은 차량 통행이 많지 않고, 사람들의 왕래도 많아 보이지 않았다.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조깅을 하는 사람도 보이고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 태우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까지 우리네 여느 일상과 다르지 않은 편안한 일상이었다.
| “거저 남편과 아들 건강하고 잘 풀리면 좋디 않겠습니까?”
평양에는 1980년대에 아파트 건설이 대대적으로 있었다고 한다. 많이 낡았지만 알록달록하게 페인트를 칠해서 미관상 나쁘지는 않다. 평양의 강남이라 불리는 여명 거리에는 70층의 주상복합아파트를 비롯해 최근 신축된 고층 빌딩도 많지만 우리 일행이 머물렀던 곳은 그곳과 먼 구도심이었으니 눈으로 보았던 것만을 적을 수밖에 없어 못내 아쉽다.
보통강 호텔은 대동강의 지류인 보통강 주변에 위치한 호텔로 46년이 되었다. 앞으로 3일을 보내게 될 호텔이다. 밝고 화사하진 않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호텔 로비에는 외국인들도 간간히 눈에 띄지만 한가하다.
북측위에서 환영 만찬을 준비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안산관’ 료리집이다. 드디어 북한에서 첫 끼니를 한다. 하지만 불편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환영 만찬이라 술까지 준비되어 있어, 자칫 실언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한민족의 정서라고 할까? 남한에서 고귀한 동포들이 중국 경유해서 먼 길 왔다고 코스 요리를 준비하였다.
북한 음식이 좀 심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양념은 많지 않아 원재료의 맛을 충분히 살렸고 담백하면서도 매운맛이 많았다. 국물이 자박한 김치는 일반 김장김치와 물김치의 중간 정도였다. 적당히 익혔는데 젓갈과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깔끔했다. 적당한 국물이 있어 시원하고 칼칼하기도 하다. 후식으로 당연히 냉면을 먹었는데 진한 닭 육수의 맛이 일품이다. 이틀 후 옥류관에 가는데 벌써 기대가 된다.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북한의 사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북한에는 상당수의 사찰이 존재한다. 문화재적 가치도 있겠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종교를 사회악으로 규정하는데, 사찰을 관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체제 선전용일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김일성 주석이 항일운동 중 일본군에게 쫓기던 때에 사찰 스님들께서 은신처를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그 고마움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존경하는 인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을 꼽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죽는 날까지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헌신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해 스님의 자제가 북측에서 여생을 편안히 보냈다는 내용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고, 만해 스님의 제자들과 만당을 설립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던 김상호 스님도 김일성 주석이 월북을 권유했다고 하니 북한 지도자와 불교와 인연은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이들은 북한 사람들도 사찰로 소풍을 종종 간다고 전했다. 사찰 주변의 나무도 좋고 계곡도 좋기 때문인데 “스님께 복전함에 시주도 하고 소원도 빌어보라고 권유도 받아서, 무신론자이지만 불교와는 거부감이 적어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밝게 말한다. “거저 남편과 아들 건강하고 잘 풀리면 좋디 않겠습니까?” 사람 사는 곳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다시 느낀다.
| 제주도와 다도해를 꼭 가보고 싶다
이어 본격적인 북한 청년대표들과 남한청년대표와의 상봉이 있었다. 준비해간 현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를 이끌었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건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환송만찬장에 함께 밥을 먹고 통일의 건배를 하면서 편안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녀 이야기, 남녀 이야기 등을 나누고 남한의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제주도와 다도해를 꼭 가보고 싶다고 말을 한다. 북한에는 명산은 많지만 섬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 번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다음에는 제주도에서 만나자고 제안을 하니 얼굴이 활짝 피었다.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과 북의 청년들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북측의 청년들은 대체적으로 민족적 과제로 인식하고 한민족, 한겨레이니까 무조건 만나고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반면, 남측의 청년들은 경제적 영토 확장과 파생되는 이익, 일자리 창출, 군복무 면제 등 다양한 내부의 문제 해소를 위한 통일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물론 북에서는 일관된 정부주도하의 주입식 교육이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에서는 통일을 굳이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많기에 아무래도 경제적 이익 측면을 많이 강조하며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하다 보니, 통일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위 문제들은 눈 녹듯이 해소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틀 후 옥류관에 들렀었는데 그 규모가 대단하다. 사진으로 봤을 때에는 자그마한 2층 식당 정도로 봤는데 실제로는 폭이 100여 미터는 될 듯하다. 봉사원 말에 의하면 하루에 1만여 그릇 정도가 판매가 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다.
옥류관 냉면에 대한 북측 위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더욱 잘 알려졌지만 북한 사람들도 좋아하는 메뉴로 꼭 먹어봐야 한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업일이란다. 하지만 멀리 남측에서 온 동포들을 위하여 방 한 칸을 개방했다. 배려에 고마움의 인사를 드린다.
냉면을 시키니 면수가 한 컵 나오더니 녹두지짐이 나온다. 얇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녹두지짐은 우리네 시장의 녹두보다 더 곱게 갈아서 부쳤는지 밀도감이 좋다. 코스요리처럼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제공된다. 봉사원은 국물까지 깔끔하게 다 먹어야 잘살고 복이 온다는데 굳이 그렇게 설명 안 해도 되겠다. 한 그릇 더 시켰으니까. 남한에서 먹었던 냉면과는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원조는 역시 다르구나. 하루 1만 그릇 팔릴 만 하다. 평양냉면에 대한 그리움은 평양만큼이나 오래 남을 듯하다.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평양을 3박 4일 다녀오며 많은 생각이 스친다. 남한이랑 북한이랑 다를 게 무엇인가. 우리는 한민족이고 같은 말을 사용하고 글을 쓰고 역사를 배우는데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만나야 하고 통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통일은 경제적 이익을 떠나 민족적 과제로 함께 인식하고 만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김성권
제29대 대한불교청년회 중앙회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이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청년미래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