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제자 이야기] 도반들의 존경받았던 부루나 존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수행자
| 전법의 화신으로
우리가 십대 제자라고 알고 있는 분들 가운데는 같은 이름을 가진 분들이 있어서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저 유명한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가 그렇습니다.
부루나 존자는 푼나 만타니풋타(혹은 푸르나 마이트라야니)가 정식 이름입니다. 포악하기 짝이 없는 수나파란타국(혹은 수로국) 사람들을 교화하러 가겠다고 부처님께 허락을 구한 제자로 유명합니다.
“저는 수나파란타라는 나라로 가서 지내려고 합니다.”
부루나 존자가 이렇게 고하자 부처님은 물으십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포악하고 잔인하다. 그대를 비난하고 욕할 텐데 어떻게 하려고?”
“‘흙뭉치를 던지지 않으니 얼마나 친절한 사람들인가!’라고 여길 것입니다.”
“흙뭉치를 던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몽둥이로 때리지 않으니 참으로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몽둥이로 때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칼로 베지 않으니 참으로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날카로운 칼로 목숨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부처님 제자들 중에는 이 몸과 목숨에 대해서 늘 덧없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언제든 버리고 떠나도 아깝지 않은 것인데 저들이 도와주니 고맙다고 여길 것입니다.”
『맛지마 니까야』에 등장한 일화를 많이 각색해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경전 구절 그대로 소개한다면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넘어선 내용인지라 무척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전법을 향한 부루나 존자의 마음은 굳세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처님조차도 두 손을 들 정도입니다. 결국 부처님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대가 그 정도로 자제력을 갖추고 있다면 수나파란타에서 잘 지낼 수 있겠구나. 적당한 때라고 생각하면 가도 좋다”라고 허락합니다.
그는 이후 수나파란타에 도착해서 오백 명의 남성과 오백 명의 여성을 교화했으며,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고 경에서는 밝힙니다. 수나파란타는 본래 그의 고향이라고 경전 해설서에서는 말합니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그는 장사하러 사밧티에 들렀다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출가합니다. 출가한 뒤 경전 내용대로 고향으로 돌아가 포교에 힘쓴 뒤 세상을 떠납니다. 훗날 부처님은 이렇게 그를 기립니다.
“훌륭한 가문의 아들인 부루나는 현명했다. 그는 가르침에 따라 지냈고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부루나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완전한 열반(반열반)에 들었다는 말은, 살아서 이미 열반의 경지를 체득했으며 아라한의 경지에 든 채로 목숨이 다해 세상을 떠났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을 음미해보자면, 설법제일 보다는 전법제일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북방으로 전해진 불교에서는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는 목숨을 걸고서 포교에 힘쓴 이 사람을 가리킵니다.
| 스승을 기쁘게 한 제자
그런데 남방불교에서 말하는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는 다른 사람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밧투 근처 도나밧투에서 탄생한 사람으로, 그의 외삼촌이 바로 저 유명한 안냐 콘단냐입니다.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인 5비구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부처님의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 제일 먼저 가르침을 이해했기 때문에 ‘안냐 콘단냐(깨달은 콘단냐)’라 불리는 성자입니다. 그는 누이의 집을 찾아가 조카인 부루나를 교화하여 출가시킵니다. 부루나는 부처님을 직접 뵙지 않고도 아라한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또 도반들에게도 법을 설해주어 그들의 수행을 돕습니다.
『맛지마 니까야』에는 고향 땅에서 부루나 존자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수행을 충실히 쌓아온 스님들이 저 고매한 부처님을 친견했을 때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부처님은 부루나의 도반이자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의 고향에서 스스로 욕망이 적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욕망이 적음을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만족할 줄 알기를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스스로 한가하게 머물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한가하게 머물도록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스스로 어지럽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어지럽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도록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스스로 정진하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정진하도록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스스로 계를 잘 지키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계를 잘 지키도록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스스로 삼매를 잘 성취하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삼매를 성취하도록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스스로 지혜를 성취하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지혜를 성취하도록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스스로 해탈을 성취하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해탈을 성취하도록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스스로 해탈에 대한 앎과 봄(知見)을 성취하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해탈에 대한 앎과 봄을 성취하도록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욕망이 적음, 만족할 줄 앎, 한가하게 머묾, 교제를 삼감, 정진・지계・삼매・지혜・해탈・해탈지견이라는 수행의 열 가지 단계를 스스로도 완벽하게 성취했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그것을 권한다면, 그 사람은 부처님 제자로서 가장 훌륭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장면을 경에서 읽으며 상상해봅니다. 어쩌면 부처님을 현재 친견하고 있는 스님들은 수행자가 갖춰야 할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당신에게서 가르침을 직접 듣지 않았는데도 법답게 수행자의 위의를 갖춘 이들을 보시고 대견스레 여겼을 터입니다. 과연 어떤 이가 있어서 이들을 이렇게 잘 인도하였단 말인가. 부처님은 그게 궁금하셨을 테지요. 그런데 이 스님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입을 모아 한 사람의 수행자 이름을 댑니다.
“예, 세존이시여, 부루나 존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부루나 존자, 즉 뿐나 만따니뿟따가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그 열 가지 수행단계를 다 갖춘 이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곁에서 지켜보던 사리불 존자는 감탄합니다.
‘아, 부루나 존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한 번도 만나지 못해서 그의 얼굴도 모릅니다.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막 모여든 수행자들 입을 통해서 이제 막 이름만 겨우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리불 존자는 그 부루나 존자를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감탄을 합니다. 그 이유가 궁금한가요?
첫째, 올곧게 수행을 하는 동료 수행자들의 칭찬을 받기 때문입니다. 둘째, 동료들이 스승 앞에서 칭찬해주기 때문입니다. 셋째, 막연히 훌륭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열 가지 이유가 있어 칭찬을 받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스승 역시 크게 기뻐했기 때문입니다.(『맛지마 니까야』 24. 「파발수레의 경」)
부루나 존자가 갖춘 열 가지 수행단계도 훌륭하지만 사리불 존자가 감탄하는 이 행복의 네 가지 조건은 또 어떤가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며 좇는 가치 앞에서 담담하게 등을 돌리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일은 외롭고 고단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자기처럼 진리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는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 든든해집니다. 방향을 잃고 헤매던 사막에서 청량한 샘을 만난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저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라는 공식으로만 알려진 수행자지만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동료 스님들은 그를 스승 앞에서 찬탄했고, 스승은 한없이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사리불 스님은 부루나 존자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수행자라고 감탄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포교하면서 어떤 위험한 상황도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여기며, 진리의 길에 나선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부루나 존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교수이며 불교칼럼리스트이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다. 현재 YTN라디오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과 BBS 불교방송에서 ‘경전의 숲을 거닐다’를 진행하고 있다. 또 불교서적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 수행 입문』, 『붓다 한 말씀』,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