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만의 사찰 대부분이 사경당을 갖춘 이유
[특집] 이제 사경 수행을 시작합니다
이제 사경 수행을 시작합니다 |
한국불교의 수행에서 사경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참선이나 위빠사나 등이 수행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합니다. 예부터 사경은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과 공덕을 위한 가장 보편적인 수행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찰에서는 사경 수행을 잘 접하지 못하거나, 형식적인 의례 행위로 간단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경이 어떤 의미를 주고, 사경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경 수행의 효과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반갑게도 몇몇 사찰과 단체에서 사경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사경 수행이 어떤 전통으로 오늘까지 이어져왔고, 지금 한국불교계에서 어떻게 이어오고 있고, 불자들이 사경 수행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01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사경했을까 박상국 |
대만불교 사경 신행
| 사경에는 수많은 수승한 공덕이 있다
불자에게 염불이나 참선 이외에 붓을 들어서 경전을 베껴 쓰는 사경도 신행의 한 방식이다. 『금강경』 「지경공덕분」 제15에는 “또한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슬림이 없으면 그 복이 더욱 수승한데 하물며 경전을 쓰고 지니며 독송하고 남을 위해 해설해 주는 것이랴.”라고하였고, 『법화경』, 『지장경』, 『유마힐경』 등 대승경전마다 경전 사경의 공덕과 이익을 언급하였으니 사경의 수승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경은 경전 문구를 쓰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가장 간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결집하여 엮은 경·율·론이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해졌는데, 약 2세기 이전에 비구들이 불법을 널리 펼치기 위해서 결집한 불전을 나뭇잎인 ‘패다라엽’에 빠알리어로 적은 ‘패엽경’이 사경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동한東漢 시대부터 경전을 번역하였는데 번역된 경전 문구는 대부분 붓과 먹으로 쓰였다. 경전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 다시 베껴 쓰면서 사경하는 풍토가 성행하게 되었다. 중국 전통문화인 붓글씨는 문인들이 추구하는 정신적 소양으로, 붓글씨를 통한 사경의 형식은 불법을 널리 펼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통문화의 아름다움도 전하게 되었다.
사경에는 많은 수승한 공덕이 있으므로 중국 육조시대 이후, 스님을 포함하여 역대의 제왕, 사대부와 평민 등 재가불자들이 불법을 널리 펼치고자 사경하였거나 복덕을 기원하고 보시, 천도 등을 위해서 사경을 하기도 하였다. 불제자들이 손으로 경전을 쓰는 방식으로 일본에 전해진 경전이 8만4천 부가 있다. 현대에는 인쇄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서 경전을 손으로 써서 유통할 필요가 없어졌으나 사경은 여전히 불제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행방법의 하나이다.
사경은 붓으로 쓰는 것 외에도 만년필 등으로 쓰기도 한다. 현대에는 컴퓨터의 사경 프로그램과 휴대폰 사경 앱 등이 등장했다. 사경하는 장소는 자신의 집이나 사찰 등에서 할 수 있고, 사용하는 종이는 흰색 외에도 색깔이 있는 종이와 향기가 나는 종이, 금·은박 사경지 등 각종 사경 용지가 있다. 사경하는 글자체는 정자체인 해서楷書 이외에 전서, 예서, 초서와 행서 등을 운용해서 사경한다. 경탑과 연화대 안쪽에 경전 문구를 써서 장식하는 형식의 사경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하고 사경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사경을 마친 경전 문구는 잘 보관하거나 친구들에게 선물하여 인연을 맺기도 하는데, 사경한 경문을 불에 태우는 여부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각자의 주장이 있었다. 사경 경문을 태울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보관공간을 달리 마련하지 않아도 되고 회향의 효과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태우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경 경문을 태우는 것은 경전에 대한 공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찰의 경탑 안에 넣어서 봉안하는 방법도 있는데 대부분 사찰의 사경 행사를 통해서 거행되고 있다. 불광산의 ‘『반야심경』 백만 부 법신봉안’ 행사를 예로 든다면, 신도들 각자 『반야심경』을 한 부씩 사경하도록 독려하고, 백만 명이 동참한 사경 경문 백만 장을 불광산 불타기념관 대불상 안에 봉안하여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를 기원하였다.
| 누구나 사경당에서 사경할 수 있다
사경의 목적은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복덕을 기원하고 보시와 천도 이외에 참회와 정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는 청정심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사경을 하기도 하고, 대중과 인연을 맺고 부처님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사경하는 신행과 서예의 예술적인 아름다움의 추구는 그 목표가 비록 다르지만, 간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경전을 쓰다 보면 붓글씨를 잘 쓰게 되며 마음공부에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사경으로 불법을 가까이하고 경전의 뜻을 익히게 되니 그 공덕의 수승함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대만에서 대외적인 홍법교화 기능을 갖춘 사찰에는 대부분 사경당寫經堂을 갖추고 있고, 신도들이 사경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장소로 제공하고 있다. 많은 종류의 사경 책자가 유통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유명 서예가의 필본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어서 사람들이 모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사경이 신행이기도 하지만 예술적인 수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직업과 연령에 상관없이 단지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다 사경할 수 있으므로 사경신행을 장려하는 모임이 많다. 모임을 통해 사경 신행을 널리 펼치면서 사경과 신행에 있어서 대중이 겪는 어려움에 답을 주고 있으니 대만에서 사경신행의 흐름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 불광산을 사례로 들면, 소속된 모든 사찰에 사경당을 갖추어 신도들이 사경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11년 완공된 불타기념관에는 사경당 세 곳과 사경 공간 한 곳이 대중들의 사경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쉽고 간략한 내용의 법어가 적힌 사경지가 준비되어 있어서 수많은 참배객들이 드나들어도 제한된 시간 안에 마음을 가다듬고 사경하면서 법어 속 깊은 뜻을 생각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외에도, 시간의 길고 짧음과 개인과 단체 참배객의 성질에 따라서 달리 사경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사경 절차는 사경당 소임스님의 인솔 하에 차분히 자리에 앉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회향까지 사경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 가운데는 불자가 아니거나 붓을 들어본 적 없는 외국인도 적지 않고, 사경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 ‘전에 느껴본 적이 없었던 편안함과 고요함’을 체험한다. 이를 계기로 사경을 시작하게 되었다거나 인근에 있는 절에 다니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으니 중생을 교화하는 사경의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경의 인연들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깊이 있는 사경 신행은 어떠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서, 어떤 사찰에서는 매주 한 번씩 한 자리에 모여서 사경 주제를 정해놓고 함께 수행하는 형식의 대중신행으로 하고 있다. 혹은 기원법회를 통해서 함께 사경하고 대중의 공덕으로 사회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불광산 사경당을 예로 든다면, 지난 1994년에 마련된 사경당은 불광산 대웅전 서쪽 편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경당에 들어와서 사경 용지를 선택하여 자리에 앉아 정해진 사경 절차에 따라서 한 획, 한 획 마음을 담아 써 내려가면서 사경에 몰두한다. 넓은 창문으로 밝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사경당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한두 명이 조용히 앉아서 사경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여러 사찰의 사경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경이기도 하다.
불광산 사경당 소임자 혜의 스님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정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사경하러 오는데 보통 사경당에 오게 되면 바로 앉아서 사경하고, 사경 후에는 바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자원봉사자를 필요로 하는 사찰의 다른 부서나 각종 행사와는 달리 사경당은 자원봉사자의 별다른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다. 사경당 봉사자들 대부분이 사경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경은 단지 고요함 속에서 진행되고 사경당에는 오로지 책상과 의자, 붓과 사경 용지만 필요하기에 작은 공간에서도 심신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 남녀노소 모든 계층의 신행활동이 될 수 있다
불광산 사경당의 사경 절차는 다음과 같다. 사경 전에 먼저 조용히 앉아서 합장하고 소리를 내지 않고 ‘나무본사석가모니불’ 세 번과 ‘개경게’를 염송한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정성스럽게 사경하고, 사경을 마치면 합장하고 소리를 내지 않고 삼귀의와 회향게를 염송한다.
사경에는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경전을 익히고 지혜를 키우는 등의 공덕과 이로움이 있다. 불광산 사경당에서는 사경하는 사람들이 정진하고 매진하여 신행에서 수승한 이로움을 체득할 수 있도록 2일, 4일, 7일 사경 정진 등 사경 수행을 진행하면서 사경 절차를 지도한다. 또 스님을 모셔서 법문을 듣기도 하면서 대중들이 사경 정진을 통해서 집중력을 키우고 반야지혜가 드러나서 인간정토를 만들어 가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신행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는데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사경을 통해서 신앙을 선택하기도 하고, 자신의 수행으로 삼아 날마다 시간을 정해 사경당에 와서 사경하기도 한다.
사경으로 감응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경당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 불자는 원양화물선의 기관장인데 배를 타지 않는 날은 항상 사경당에서 사경 정진을 하였다. 배를 타고 항해를 할 때는 배가 아무리 흔들려도 동요됨이 없이 사경을 하였고, 자신이 사경한 사경 경문이 어느 정도 모이면 바다에 뿌려서 바닷 속 중생들에게 회향하였다. 불가사의하게도 거친 파도가 대부분 가라앉았고 위험한 경우를 모면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경으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기에 가정과 인생에서 좋은 변화를 갖게 된 경우는 더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정성 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부처님의 감응이 있다.”라는 말이 사경에서도 인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신심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사경의 범위는 매우 넓은데, 『반야심경』, 『금강경』 등의 경전 외에 불광산 사경당에서는 대중이 간략하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 성운 대사의 법어 등을 사경 용지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옛 시구와 게송 등 불교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 내용이라면 모두 사경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사경은 개인적 배경과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앉아서 사경할 수 있기에 남녀노소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신행활동이 된다. 불광산에서 매년 거행하는 어린이 여름캠프에서는 참가 어린이들에게 사경 체험을 하도록 하고 있다. 장난기가 넘치는 어린이라도 사경당에 앉고 30분이 지나면 모두들 조용히 사경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사경의 정신적인 정화작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인터넷으로 ‘사경’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어떻게 사경을 하고, 어떻게 시작하는지, 어디에서 사경 용지를 나눠주는지, 사경 체험기 등 온갖 정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는 방법 이외에 재가거사가 자신의 사경 체험을 책으로 만들어 출판한 것도 있다. 또한 불광산 전임주지 심배 스님의 저술 『환희사경歡喜抄經』과 불광산 부주지 혜소 스님의 사경법문 혹은 감산대사憨山大師, 인광대사印光大師의 사경법문은 모두 사경 신행하는 불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심배 스님의 저술을 예로 든다면, 사경은 정신력을 집중시키고 인내심을 키우며, 붓글씨를 잘 쓰게 되고 심신을 안정시키며, 경전을 배우게 되어 반야지혜를 키우게 된다며 사경의 이로운 점을 짚어주고 있다. ‘사경’을 논문 주제로 삼아서 사경 경험이 인생에 주는 영향을 깊이 있게 연구한 대학원 논문도 있다. 현대인에게 사경은 신행이자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행법이다. 사경을 통해서 불법의 깊은 뜻을 느끼게 되고, 고요함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융합하면서 망념을 가라앉히게 되니 도량에 있는 사경당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희고 검은 종이와 글자 속에서 마음 역시 더욱 청정하고 깨끗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