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통신] 미황사 만물공양

2017-09-28     김성동
미황사 괘불재. 사진=www.k-heritage.tv

●    “40년 전 삼산면에 심었던 밤나무에서 맛있는 밤을 땄습니다. 미황사와 달마산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밤을 올립니다.” “올해는 아들이 군대에 갔습니다. 아들이 군생활 잘하고, 방사선사 자격시험을 앞두고 있는 딸이 시험에 합격하기를 발원하며, 귀리를 올립니다.” “아름다운 미황사와 우리의 사찰문화가 세계 속에 널리 알려지길 발원하며, 단청 한지 비누를 올립니다.” “마음과 몸이 아프신 분들이 하루빨리 쾌차하고, 저희 가족이 건강하고, 부처님 말씀 따라 살기를 발원하며, 시댁에서 딴 은행을 올립니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304위 영가님들의 극락왕생과,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어버린 유가족분들이 괘불부처님의 은혜와 가피로 아픈 상처가 치유되기를 발원하며, 희생자 304위의 이름을 적어 올립니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만든 진모영입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영화 ‘올드 마린보이’ 편집을 어제 마쳤습니다. 두 번째 영화작품을 올립니다.”

●    미황사 괘불재에 만물공양萬物供養을 올린 인연들이다. 매년 10월에 1박 2일 동안 열리는 해남 미황사 괘불재는 승속과 종교를 넘어 남녀노소 1,500여 명이 참여해 다양한 놀이와 문화가 어우러진 문화예술축제다. 만물공양은 괘불재에 참석한 대중들이 각자 1년 동안 마음을 모아 농사農事한 것들을 올린다. 농사는 논밭에서 얻은 곡식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땀 흘려 일한 모든 결과물이기도 하다. 만물공양에는 곡식뿐 아니라, 학자는 논문을, 학생은 감명 깊은 책을, 화가는 그림을, 가족은 가족사진을, 영화감독은 영화작품을, 사경한 불자는 사경을, 프로그래머는 게임CD를. 세간의 만물이 부처님 전에 올라간다. 한 번은 이런 공양물도 올라왔다. 미황사 앞에 폐교될 뻔한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다. 미황사 대중의 노력으로 2003년에 5명뿐이었던 분교는 5년 후 45명이 되었다. 그 분교장 선생님이 45명의 아이들 얼굴 사진을 모아 괘불재에 올렸다. 

●    만물공양은 지난 9월 15일 열린 향상포럼에서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발표한 이야기다. 만물공양은 각자의 사연을 담고 부처님 전에 올라간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 만물공양을 “치유와 향상의 축제”라고 했다. 만물공양을 통해 각자의 삶을 더욱 다짐하며 성실해질 수 있고,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픈 이들은 공양을 올리면서 자기를 드러내고 표현한다. 공양물을 올리며 참회하며, 치유하고, 서원으로 나아간다. 울산대 박태원 교수는 “만물공양은 한국사회에서 전통의 모습과 현대적 의미를 함께 갖출 수 있는 의미심장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만불공양의 도시적인 변주가 가능한 핵심 요소는 자기를 표현하고, 고백하며, 그 즉시 치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법인 스님은 “도시에서 도시형 만물공양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    귀농한 농부가 있다. 애써 농사지은 농작물이 잘 안 되었고, 가격도 맞지 않았다. 좌절하며 생애 첫 농작물을 부처님께 올린 이후 다 좋아졌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부처님의 가피라고 말한다. 금강 스님은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만든 것을 자랑하고, 인정받길 원한다. 거기에 기쁨도 있지만, 상처도 있다. 무엇인가를 바친다는 것은 아我에서 무아無我로 나아가는 행위다. 내 것을 내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께 올려 자유로워지고, 치유도 된다. 현대인들은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무엇보다 남이 아닌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만물공양은 내가 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아我에서 무아無我가 되는 것이다.” 내 것을 공양한다는 것은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내가 올린 공양물, 내가 지은 농작물, 내가 만든 것들은 수많은 인연이 지어낸 것. 그것을 알고 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롭다. 땅끝마을 미황사에서 시작된 만물공양이 각 지역으로 흘러가길 바라며 이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