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如談] 2. 습관에 대해
한의사 이혁재의 건강 如談 2. 常習과 不習, 그리고 時習
요가수련을 10년 가까이 한 사람이라도 3개월만 수련을 그만두게 되면, 뻑뻑한 몸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10년 가까이 담배를 멀리한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계기로 끽연을 다시 하게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습관은 일반적으로 이중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습관은 좀처럼 몸에 배지 않는 반면, 버려야 될 것으로 여겨지는 습관은 좀처럼 마음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게 됩니다. 습관이 이렇게 되는 이유를 단순화시키면, 몸에 잘 배지 않는 건 게으름 때문이고, 마음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건 사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내용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지”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서로가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바뀔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승재와 김연숙씨 이야기**
승재(6살, 가명)는 입이 짧아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몸이 좀 마른 편입니다. 식욕부진을 걱정하던 어머니가 상담을 원해 만나게 된 친구지요. 세수나 양치질은 잘 하냐고 물어 봤더니,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런 건 시키지 않아도 너무 잘 하는데, 하루 세 끼 먹이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는 어린이였습니다.
김연숙(35살, 가명)씨는 직장생활을 하다 늦게 아이를 출산한 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분입니다. 남편이 출장이 잦은 터라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갓 돌이 된 아이와 단 둘이 밤을 보내게 되었답니다. 아이가 6개월이 될 때 까지는 그럭저럭 버텼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다 보니 남편과 아이 모두 그렇게 밉더랍니다. 그러다 보니 저녁만 되면 혼자 술을 먹는 횟수가 늘게 되었구요. 그러던 것이 이제는 술을 먹지 않고는 단 하루도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 승재와 승재 어머니, 그리고 김연숙씨가 대기실에서 함께 모이게 됐습니다. 대기실에서 종종 일어나는 익숙한 풍경인데, 김연숙씨가 육아문제로 승재 어머니에게 몇 가지 조언을 구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승재는 그날 처음 방문한 탓에 낯설어 했고, 승재 어머니는 김연숙씨의 질문에 성의 있는 답을 주긴 했지만 좀 난감해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루해 하는 승재와 저는 대기실에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승재 어머니와 전화로 이미 상담을 한 터라 승재의 사정은 대략 알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승재에게 편식하지 않고 하루 세 끼를 먹는 건 양치질이나 세수하는 습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당부와 설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승재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마침내,
“좋아요. 그럼 하루 세 끼를 먹을께요. 하지만, 딱 세 달간 만이에요.”
“왜, 더 하면 안돼?”
“사실 세 달도 제가 많이 양보한 거예요. 더 이상은 안돼요.”
그러자 김연숙씨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승재와 얘기하기 전, 김연숙씨가 상담실에서 한 말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상담 끝 무렵에 제가 금주를 권유하자 김연숙씨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좋아요. 제가 한번 세 달은 참아 볼께요. 하지만 더 이상은 자신 없어요. 사실 세 달 동안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확답을 드릴 수는 없네요.”
라고 말이죠.
대기실에서 한동안을 저와 눈을 마주하고 웃던 김연숙씨가 승재에게 한마디 합니다.
“승재야. 너 세수랑 양치질하는 건 귀찮지 않아?”
“가끔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죠.”
“그럼 어른이 되서도 계속 세수랑 양치질 할 수 있어?”
“흠, ... 별로 어려울 거 같진 않아요. 사람은 깨끗해야 병이 안 나니까요.”
“깨끗한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규칙적으로 먹지 않아도 병에 걸려. 배고파서 생긴 병이 더 무섭다, 너. 그래서 사람들이 귀찮아도 하루 세 끼를 먹는거야”
“지금부터 주욱이요? 어른되고 할아버지가 되서도요?”
하루 세 끼씩 꼬박 먹는 일을 딴 사람들은 평생하는지, 그리고 자신도 그래야 하는지 몹시 고민과 걱정에 싸여 물어본 승재의 말에 김연숙씨는 다시 한 번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더군요.
“밥 잘 먹고 몸을 튼튼히 하지 않으면 뱃가죽이 등가죽이랑 붙어서, 아무리 세수하고 멋진 옷 입어도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할 거야.”
마음에서 습관 하나를 떨궈야 될 사람과 몸에 습관 하나를 붙여야 될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승재는 아직까지도 약속을 잘 지키고 있으며, 김연숙씨 역시 몇 번의 고비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김연숙씨는 그 날 승재를 대화를 한 이후 기분이 많이 풀어졌다고 합니다. 평생 해야 될 세 끼 식사 습관에 곤혹스러워 하던 승재의 얼굴을 떠올리면, 술 먹고 싶은 생각쯤은 사라지면서 우울한 기분도 많이 풀어진다고 합니다.
***시습(時習)과 상습(常習)과 불습(不習)**
잘 아시다시피 논어의 첫 구절에는 자연스러운 삶에 덧붙여 인간이기에 또한 누릴 수 있는 세 가지 기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중에서도 으뜸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는 것”(學而時習)입니다.
시습(時習)이라고 하면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을 떠 올리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귀속을 거부한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일생이 이름과 어울린 삶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이 어르신 덕에 ‘시(時)’와 ‘습(習)’이란 글자를 한 데 묶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습(時習)을 번역할 때 종종 ‘때때로 익힌다’라고들 합니다만, 이렇게만 번역하게 되면 읽는 이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게 됩니다. 좀 게으르고 싶은 사람들은 “음, 내내 하지 않고 가끔하면 된다는 뜻이군”이라고 해석합니다. 사실 저도 그런 뜻이길 바라는 성향에 속합니다. 혹은 사심이나 집착이 강한 사람들은 “음, 때만 생기면 언제나, 즉 무시(無時)로 익히라는 말씀이군”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시습(時習)’은 ‘때에 어긋나지 않게 제 할 일을 다 하라’는 뜻이 깔려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움’(學)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바로 ‘때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러갈 때, 나아갈 때, 바꿔야 할 때, 지켜야 할 때, 보이는 때, 열리는 때, 갈무리될 때, 겨를을 가질 때’ 등등. 이런 때를 알아 때에 어긋나지 않는 방향으로 사심이나 게으름 없이 몸과 마음을 행하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시습은 ‘불습(不習)’이나 ‘상습(常習)’과 구분되야 합니다. '불습(不習)’은 말 그대로 익히지 않는 것인데,‘몸에 배야 할 습관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상습(常習)’은 ‘마음에서 빼야 할 습관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것’입니다. 배야 할 것을 몸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나, 빼야 할 것을 마음이 가슴으로 안고 있는 것이나,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바로 여기서 병이 생긴다고 봐도 틀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 방향을 바꿔 생각해보면 ‘상습’은 대체로 사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몸의 수고로움을 고려하지 않고 혹사하는 경우가 많고,‘불습’은 게으름을 즐기기 위하여 마음의 공명정대함을 써먹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상습으로 인한 병의 치유는 사심이 일어나게 된 경위를 살펴 반성하는 것이 상책이 되고, 수고로운 몸을 보하는 것은 하책이 됩니다. 불습으로 인한 병의 치유는 마음의 공명정대한 쓰임을 통로를 발견하는 것이 상책이 되고, 몸을 움직이는 여러 운동은 하책이 됩니다.
상책과 하책의 차이는 재발이 있는가 없는가와 삶의 질과 인격이 높아지는가 아닌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시습(時習)’으로 가느냐 못 가느냐입니다. 김연숙씨는 승재를 설득시키는 과정을 통해 남편이나 아이를 탓하던 과장된 마음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면서 도량이 넓은 마음으로 바뀌었고, 승재는 양치나 세수로 몸 밖을 가꾸는 것 못지 않게 몸 안도 골고루 돌봐 바로 세워야 한다는 걸 배웠기에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하겠습니다. 둘의 만남은 서로가 상책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인연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당분간 두 사람은 한의원에서 볼 일이 없지 않을까 합니다.
이혁재
한의사. 신천 함소아한의원 원장. 연세대 물리학과와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했으며, 경희대 한의과대학 대학원에서 의사학(醫史學)을 전공하고 있다. 석사학위 논문은 「동의보감에 나타난 의역(醫易)사상에 대한 고찰」이 있으며, 현재도 허준의 『동의보감』과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