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화가의 붓다의 마음]벌레에 대한 단상

2017-07-04     황주리

며칠 전 하도 잠이 오지 않아 물이라도 마시려고 부엌에 나갔다가 커다란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살충제를 찾다가 없어서 그냥 돌아오니 이미 그놈은 사라지고 없었다. 재빠른 작은 바퀴에 비해 커다란 외래 바퀴는 행동이 어눌해서 잡기가 쉽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벌레 잡기에 취약한 나는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살생의 순간에 대한 불안감일지도 몰랐다. 붓다는 정말 아무리 해로운 벌레라도 생명 있는 것은 죽이지 말라 하셨을까? 

누군가 내게 답해주면 좋겠다. 이런 벌레는 죽이고 이런 벌레는 죽이지 말라고. 이름 모를 모호한 벌레가 나타날 때마다 그놈을 살려줄지 말지 고민하는 나를 바라보며 어이없을 때가 종종 있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고야마는 유일한 벌레가 바퀴벌레다. 이롭고 해로운 것에 대한 분별망상일지도 모르나, 사실 우리는 대상에 대한 분별없이는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나갈 수가 없는 법이다. 사라진 벌레가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잠시 들면서 그놈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번식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다음 순간, 작업실로 들어가니 커다란 바퀴벌레가 형광등 불빛 아래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게 조금 전 목격한 놈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기에는 부엌과 작업실은 멀었지만, 금세 바닥을 기는 걸 보니 같은 벌레 같았다. 내가 그 크기에 놀란 덕에 그놈의 수명은 연장되었고, 침실로 돌아와 누우니 흥분되었던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었다. 그놈이 나를 더 무서워했을 것인데, 사람인 내가 그 벌레 한 마리의 출현에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했던 것이다.

아침이 되니 벌레가 있었던지조차 꿈처럼 아득했다. 엉뚱하게도 “잃는 것 없이 다 잃는 게 번뇌이며, 얻는 것 없이 다 얻는 게 지혜”라는 붓다의 마음의 변증법이 떠올랐다.    

 

황주리
작가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