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한 끼의 유혹
마왕의 방해로 한 덩이 밥도 얻지 못했던 부처님 이야기
가끔씩, 삶이 구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눈앞에 놓인 무언가 때문에 평소의 소신을 접을 때, 그렇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겨우 그것 때문에 내가 ….” 라는 생각이 들 때면 그 구차함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후회는 나를 경쾌하고 편안한 삶으로부터 한참이나 밀쳐낸다.
유혹, 두 번 세 번 돌이켜 생각해도 마땅하고, 그래서 평소 남들에게까지 힘주어 말하던 소신을 꺾게 만드는 그 유혹의 정체는 무엇일까? 뒤돌아보면, 나를 흔든 그것들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엄청난 부나 명예, 세상에 둘도 없는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 때문에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하고, 평소와 다른 말을 하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다면, 자신에게 그리 냉혹하게 채찍질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겨우 그것 때문에….”
그렇게 소소한 욕심들 앞에서 무릎 꿇은 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마다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부처님 말씀이 있다. 『잡아함경』에 나오는 말씀에 살짝 살을 붙여 이야기로 꾸미자면 이렇다.
언제인가 세존께서 홀로 숲에서 지내실 때 일이다.
이른 아침, 찬란한 햇빛이 비치고 이슬이 가시자 세존께서는 옷을 갖춰 입고, 발우를 들고, 파라 마을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그때 마왕 파순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사문 구담이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파라 마을로 걸식을 나섰다. 내가 이제 먼저 그 마을로 찾아가, 여러 신심 있는 바라문과 장자들을 구슬려 사문 구담이 빈 발우로 마을을 나가게 하리라.’
마왕의 방해로 그날 세존께서는 한 덩이의 밥도 얻지 못했다.
빈 발우로 마을을 나와 숲으로 향하던 무렵, 한 사내가 부처님을 뒤쫓으며 이렇게 외쳤다.
“어이, 사문! 사문!”
세존께서 뒤돌아서자, 그 사내가 다가와 빈 발우를 기웃거렸다.
“음식을 전혀 못 얻었네.”
안타까운 듯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의 입가에는 조롱이 담겨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생각하셨다.
‘이 자는 마왕 파순이다.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다.’
사내는 세존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주어 말했다.
“고타마! 너무 걱정 마시오. 나랑 다시 마을로 들어갑시다. 내가 음식을 푸짐하게 얻게 해 주겠소.”
세존께서 눈길을 내리고 잠시 침묵하셨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셨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편안하고 행복하게
나는 살아왔네.
나의 음식은 샘솟는 기쁨
저 광음천의 신들처럼
나는 늘 살아왔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 해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나는 살아가리라.
나의 음식은 샘솟는 기쁨
덧없는 이 몸에 얽매이지 않고
나는 살아가리라.
부처님의 노래가 끝나자 사내는 잔뜩 힘주어 폈던 어깨를 접었다. 그리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부처님도 숲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 부처님의 위대함이란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세상의 고통은 탐욕과 분노가 초래하는 것이고, 그 탐욕과 분노는 터무니없는 어리석음에서 발생한다. 나는 그 어리석음을 깨달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며, 고통을 초래하는 탐욕과 분노를 뿌리째 뽑아버렸다.”고 당당하게 선언하셨지만, 그런 부처님 주위에서도 마왕이 항상 틈을 엿보았다. 마왕은 고통의 상징이고, 고통스러운 삶으로 이끄는 사령이니,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부처님 주위에 항상 잠재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에 등장하는 마왕 파순은 정말 마귀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마을 수장쯤 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처님 자신의 갈등을 인격화한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무엇이 되었건, 부처님이 한 끼의 유혹에 망설였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처님은 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온은 덧없는 것이니, ‘나’라고도 ‘나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나의 삶은 끝났다. 나는 살기를 바라지도 않고 죽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누군가 전단향 가루를 가져와 나의 오른팔에 발라준다 해도 나는 기뻐하지 않고, 누군가 칼을 들고 와 나의 왼쪽 팔을 자른다 해도 나는 분노하지 않는다.”
이런 몇 마디 말씀만으로도 그 깨달음이 얼마나 확고하고, 해탈의 기쁨과 열반의 평온함이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부처님을 흔든 것은 겨우 ‘한 끼의 밥’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 가지는 이 이야기가 경전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목격자가 없는 진술이니, 부처님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는 경전에 수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밥 한 끼에 흔들렸던, 어쩌면 창피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하셨을까?
돌아보면, 나의 삶에서 크게 후회되는 탐욕과 분노의 순간은 대부분 거창한 일들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아주 소소한 일들에서 발생하였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또 멀찍이 시간의 강물을 건너서 바라보면 너무나 사소한 일들인데, 그땐 그리 절박한 문제인 것처럼 다가섰던 것이다. 그래서 그 사소한 일상에서 양심을 접기도 하고, 소신을 꺾기도 하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였다. 부처님은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광경을 상상해 본다.
부처님이 눈가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배가 많이 고팠어. 그래서 마을을 한 바퀴 더 둘러볼까도 싶었지. 그때가 아니면 다음날까지 꼬박 또 굶어야 했거든. 하지만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지. 왜냐고? 난 밥 한 끼에 목숨 거는 사람이 아니거든. 하루에 한 번 걸식하고, 그 걸식도 일곱 집의 문만 두드려서 얻는 것, 그것이 내가 정한 내 삶의 규칙이야. 그 규칙도 깨트리고 싶지 않았지.
게다가 한 끼를 굶은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될 기쁨이 나에게 있지. 그게 뭐냐고? 그게 바로 해탈의 기쁨이야. 결국은 이 몸까지도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인연의 그림자일 뿐이야. 살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버둥거리며 밥 한 끼에 연연하는 순간, 난 그 해탈의 기쁨을 잊어버리게 되지. 그래서 깨달음의 힘으로 그 한 끼의 유혹과 한 끼에 연연하는 궁색함을 이겨냈지.”
어쩌면 내 삶에서 떨쳐내야 할 유혹의 무게는 ‘밥 한 끼’ 정도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걸 포기하지 못해 끝내 부처님처럼 평온한 웃음을 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깨달음도 그 한 끼의 유혹을 이겨낼 힘인지도 모른다.
양나라 무제의 친구였던 도홍경陶弘景은, 무제가 산해진미에다 온갖 융숭한 대접을 해도 슬그머니 궁에서 도망치고는 하였다. 양무제가 다시 데려오게 하고 “산에 도대체 뭐 좋은 게 있다고 자꾸 도망치느냐?”고 다그치자, 그가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산에 뭐가 있냐구요?
산마루에 구름이 뭉실뭉실하지요.
그저 나 혼자 좋아서 웃을 뿐
그 기쁨을 당신께 바칠 수는 없군요.
한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 마당 한편에 핀 수국 빛깔이 참 곱다. 이 기쁨이 숱한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