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연화소식 : 한암漢岩 스님 간찰簡札
화중연화소식
편집자주-이 화중연화소식(火中蓮華消息)은 경봉 스님과당대의선지식이신 용성, 제산, 한암, 효봉 스님들께서 나눈 간찰(簡札)입니다.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나눈 법담이 오늘 족적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 귀한 자료들은 경봉 스님의 시자 스님이었던 명정 스님께서 흔쾌히 내주셨고 여기에 풀이와 주(註)까지도 달아주셨습니다.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
오랫동안 적조하던 차에 문병하는 편지 잘 받았습니다.
도체(道體) 인연따라 자적하시다니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요.
제(弟)는 별 탈없이 편안히 지냅니다.
오후(悟後)의 생애에 대하여 고인들의 숱하게 많은 언구(言句)가 있으니 혹 이르기를 한 조각 굳은 돌같이 하라. 혹은 죽은 사람의 눈같이 하라. 혹은 고독(蠱毒)이 있는 물을 지나는 것과 같아서 한 방울의 물도 묻혀서는 안 된다 하시고, 또 우리나라 보조 국사의 『진심직설(眞心直說)』의 열 가지 망령됨을 쉬는 것에 첫째 깨달아 살핌이요, 둘째 쉬고 쉬는 것이요, 내지 열째는 체(體)와 용(用)에서 벗어나는 것까지 요긴하고 간절하지 않은 법어가 없으나 다만 자기 자신이 스스로 묘(妙)를 터득해야 하는 것이오니 이 몇 가지 법문 중에 하나를 택해서 사용하여 오래 가면 자연히 묘한 곳이 있어서 내가 수용하는 것이니 천마디 만마디가 모두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고인이 이르기를 문으로 좇아 들어온 것은 집안의 보배가 아니라 하시니 그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수행을 하려 하면 말은 말대로 나는 나대로나 저 물 위에 기름 같아서 졸지에 절단하고 터지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실답고 쇄쇄낙낙한 경지에 이르려면 늘 한 생각 일어나기 전에 나아가 보아 오고 보아 감에 홀연히 잊어버리면 가슴속의 오색실이 자연히 끊어지리니 이와 같이 실답게 깨닫고 실답게 증득하여야 천하 사람의 혀끝을 끊는 것이라 지극히 빌 뿐입니다.
그러나 위에 말한 것도 저 눈밝은 사람 분상(分上)에는 참으로 섣달의 부채격이라 하하 허물이 적지 않습니다.
편지하신 대로 계획하신 것을 중지하신다면 내원암(內院庵)의 일은 참으로 아깝습니다.
운봉(雲峰)이 좋은 사람인데 다시 이러한 사람은 구하기 어렵습니다.
제(弟)의 문하에는 이러한 사람이 없으니 가탄이외다.
제(弟)는 내년 3∼4월 사이에나 옮겨 갈는지 금년 겨울에는 이곳에서 겨울을 지낼 준비가 다 되었나이다.
아무쪼록 좋은 선원(禪院)이 되게 주선하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경오년 9월 13일
한암 삼가 답장 올림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