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가정의례] 상례(喪禮)-임종의례
[불자가정의례]
상례 란 사람이 운명(殞命)하여 땅에 묻힌 다음, 대상(大祥)을 지내고 담제(膽祭) 길제(吉祭)를 지내는 것으로써 탈상(脫喪)하게 되는 3년 동안의 모든 의식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언젠가는 세상을 버리고 돌아오지 못하는 저승길로 영원히 떠나는 것이니,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가족, 친척, 친지에게 이 이상 슬프고 비통한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관습에 관혼상제의 의례 중에서 가정 엄숙하고 정중하여 그 절차가 까다롭고 또한 이론이 구구한 것이 바로 상례이다.
『중용(中庸)』에는 ‘죽은 자 섬기기를 산 사람과 같이 하고 없는 자 섬기기를 있는 사람과 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 상(喪)은 죽었다는 말이나 ‘사(死)’라 쓰지 않고 ‘상(喪)’이라 쓰는 것은 효자의 마음에 차마 ‘사’라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효(孝)는 단지 어버이 살아 계실 때만의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으로까지 이어지며, 이러한 사후의 효가 상제(喪祭)라는 엄격한 제도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효는 지극히 강조되고 있다. 부처님 자신도 부왕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먼 길을 달려가 임종을 지켰으며 손수 부왕의 관(棺)을 메시고자 하여 후대의 본을 보이셨다. 특히 불교에서는 윤회 전생(轉生)의 교리에 입각하여 가족의 선조는 물론 일체 중생의 영혼을 모시어 천도제사한다.
범망경(梵網經) 권하에서는, “모든 남자는 바로 나의 아버지요, 모든 여인은 바로 나의 어머니다. 나는 세세생생에 이를 쫓아 생을 받지 않음이 없으니 육도(六道)의 중생은 모두 나의 어비이다.”하여 뭇 생명이 모두 나의 부모라는 사상을 갖고 있다.
유교의 근본 경전은 한결같이 효를 풀어 밝히고 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엮었다고 하는『효경(孝經)』에는 그야말로 유교의 근본사상이며 유교의 실천윤리이고 모든 도덕의 근원을 이룬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교의 상제의례는 서민 등 일반 민중의 예법은 아니다. 적어도 사대부 이상의 지배계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에 반하여 불교는 모든 사람이 누구나 깨달음의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일체중생 실유불성 (一切衆生 悉有佛性)’을 주장한다. 모두 평등한 불자(佛者)인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아무 차별이 없는 평등한 존재로 보는 인간관을 근본으로 하는 의례가 불교의례이다.
불교 신도들은 재래의 전통적 의례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다음을 참고하여 예를 갖추도록 한다.
임종의례(臨終儀禮)
병든 이가 위독해져 목숨이 경각(頃刻)에 있고 임종이 다가오면, 집안 사람은 우선 집 안팎을 치우고 더러운 것을 씻어내며 깨끗이 청소한다. 오는 손님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죽은 이가 세상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임종정념(臨終正念)’을 지켜 정념왕생(正念往生)할 수 있도록 부처님의 명호 ‘나무아미타불’을 소리내여 부른다.
임종정념이란 목숨을 마칠 때, 탐?진?치 삼독(三毒)같은 삿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오로지 밝게 깨닫는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임종할 때 바른 생각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지도론(大智度論)』권24에서는,
“경에 이르시기를,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선행을 할지라도 임종에 있어서 악념(惡念)이 있다면 바로 삼악도에 태어난다. 나서부터 지금껏 악행을 했을지라도 임종시에 선념(善念)이 있다면 바로 천상계에 태어난다.”고 하여 임종정념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를 위한 구체적 의례로는, “임종항 때는 도속(道俗,. 스님이나 신도)을 막론하고 가족이나 친지[親類緣者]는 베갯머리에 모인다. 병든 이를 지켜보며 그 정신이 확실한 동안에 그 사람의 한평생 간의 선행을 소리높이 불러서 듣도록 한다. 그 의미는 병든 이로 하여금 속마음으로 환희해서 죽고 나서의 갈 곳을 걱정하지 않게 하며 정념을 지켜 흐트러짐이 없이 좋아하는 곳에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다.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秒)』.라고 항T다.
당나라 선도(善導, 613~681)화상이 저술한 『임종방경(臨終方訣)』에는 중요한 임종행의의 의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우선 병든 이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따뜻한 향물로 몸을 닦아 청정히 한다. 새 옷으로 갈아 입힌 다음 편안하게 종용히 앉힌다. 그리고 정념사유(正念思惟)하도록 한다. 중병이라 않을 수 없다면 오른쪽 옆구리를 서쪽으로 향하도록 누운 채로 해도 좋다.
병든 이 앞 청정한 장소에 사각 단을 만든다. 바닥에 꽃을 깔고 명향(名香)을 사룬다. 네 귀퉁이에 등불을 밝히고 단 안에 채식한 불화(佛畵)를 건다. 병든 이는 여기에 예배하고 부처님의 상호를 보도록 하며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도록 한다.
설법하는 이는 이 세상은 고통의 세계이며, 부처님께 귀의해서 태어날 곳은 삼악도에 떨어지는 바 없이 모든 부처님이 계시는 부처님 나라에 가서 미묘한 즐거움을 받을 것임을 설명한다. 그리고 병든 이에게 어떤 부처님 나라에 태어나고 싶은지를 묻는다.
물론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원한다. 병든 이의 소원에 따라 그 부처님 나라에 태어나도록 부처님의 명호를 소리내어 부르도록 한다. 북쪽으로 머리를 누이고 얼굴을 서쪽으로 향하여 조용히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32상 80종호)을 생각하도록 한다.
마침내 목숨이 끝나려 하면 간병하는 이도 함께 병든 이를 위해서 소리내여 부처님을 부른다.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병든 이가 칭불명호에 합쳐서 소리높이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한다. 목숨이 끝나려 할 때에 화불(化佛)인 보살중이 묘향화(妙香花)를 지니고서 행자(行者)를 맞이하려 오신다.
병든 이인 행자는 이를 보고 환희심을 낸다. 몸에 고통 없이 마음은 흐트러짐 없이 정견(正見)의 마음이 생긴다. 선정(禪定)에 들 듯이 드디어 목숨을 마친다. 결코 지옥?아귀 등의 고통받는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곧바로 행자가 바라는 곳인 부처님 땅에 태어난다.
불자의 임종의례는 이러한 것을 참고하여 봉행하면 되겠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문미호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