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표고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대안 스님과 함께 표고버섯 찾아 떠난 여행길
2016-11-07 박찬일
참하게 늘어선 참나무에
표고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대안 스님과 함께
표고버섯 찾아 떠난 여행길
대안 스님을 우리가 부르는 별명이 있다. “피디PD스님”이다. 작년 봄, 냉이를 캐고 취재하러 서산 갔을 때 내가 붙인 별호다. 당신께서도 듣고 별말씀이 없으신 걸 보니, 내 농담을 수긍하시는가 보다. 당시 서산은 제법 추웠다. 연세 많은 아주머니들이 방석 깔고 앉아 냉이를 캐고 뒤집는데, 스님이 등장하니 그 뻣뻣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일신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목 대목 카메라가 들어올 자리를 알고 딱딱 지정해주셨다. 그러니 피디라 할 수밖에. 실제로 텔레비전 촬영을 많이 하셨지만, 내가 보기에는 타고난 감각이다. 무엇이든 맞춤한 시간과 자리에 들어앉을 타이밍을 아신다는 건데, 그것이 음식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은 건 여러분도 다 아는 바일 거다. 스님이 업무해낸 멋진 사찰음식전문점 발우공양의 덕이 그랬고, 조계종 포교책 중 사찰음식의 지난 세월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대안이 없으면 대안 스님을 찾으라 하지 않았던가.
| 그 가을볕의 표고
그건 양평에서 벌어진 표고 취재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면식 없는 표고 재배 사장님도 꼼짝없이 피디스님의 지휘에 맞춰 카메라 앵글에 들어섰다 나갔다 하는데, 이게 마치 짜 맞춘 시나리오처럼 정확했다. 앵글 부리는 우리 최배문 작가는 한 손으로는 셔터를 연신 누르고, 저도 모르게 한 손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강 따라 길도 좋고 물빛 좋은 양평의 버섯밭에 우리가 간 건 이 가을의 시작이었다. 길고도 긴 혹서(얼마나 혹독하면 혹서였을까)에 시달렸으나, 여지없이 가을은 왔다. 신이 굴리는 손안에 지구는 작은 주사위만 한 것이고, 우리의 인생은 그 주사위에 점 하나도 안 되는 먼지일 터이니, 아아 흐르는 한강 쪽빛 물의 깊이조차 우리는 모르는 일일 것이다.
마침 주인 되는 이상희 사장(이라고 하나, 그와 손을 잡았더니 농사로 다져진 두께와 결이 나 같은 서생을 압도해버린다.)이 잠시 밭에 나간 틈이어서 그의 노모를 먼저 보았다. 표고 저장고 앞 그늘에 스티로폼 방석을 깔고 앉아 노모는 뭔가를 썰고 있었다.
“표고여. 이걸 말려서 가루 내어 팔어요. 갓 퍼지고 작고 그런 건 가루 내는 데 쓰는 게지.”
노모는 잠시도 손을 놀리지 않고 무심한 듯 대꾸했다.
“어디서 따긴요, 낭구에서 따지. 배지에서 딴 건 아니구, 우린 다 낭구에서만 길르니까.”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요샌 버섯도 안 되어요. 더워도 힘들고 추워도 안 열리고. 올해 더워서 난리 났어. 돈? 아이구, 무슨 돈이 돼요. 돈은.”
노모가 자른 표고가 가을볕에 말라가고 있다. 양평은 이래저래 서울 사람들 좋은 물 먹이자고 통제가 심해서 얼떨결에 오염 적은 자연을 가진 땅이다. 축사도 내기 어렵고, 밭에 농약도 잘 못 뿌린다. 그러다가 위아래 이 일대 상당수가 내친김에 친환경 농업지대로 탈바꿈하였다. 이상희 사장의 표고도 그렇게 자라고, 한살림이며 생협에 믿고 내는 친환경 버섯으로 이름이 나 있다.
표고버섯은 원래 자연산인데 대개 재배한 것을 먹게 된다. 한동안 버섯의 왕으로 군림했으나 중국산과 ‘배지재배법’이 널리 퍼지면서 흔한 버섯이 되어가고 있다. 배지란 톱밥 성분으로 표고 종균이 자랄 토양을 만들어서 생산량이 많은 농법이다. 더구나 중국산이 많아진데다가, 중국으로부터 아예 배지 자체를 수입해다가 우리나라에서 길러 수확하는 반만 국산인 농법도 많다.
한때 고급 선물의 대명사로 불리던 표고의 호시절은 그렇게 살짝 이울고 있는 것 같다. 이상희 사장은 햇빛에 그을렸는데, 그것이 고된 농사 때문이겠으나 어쩌면 속이 타고 끓어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였다.
| 우주의 원리대로 자라고 저물고
이상희 사장이 와서, 차를 몰아 표고밭으로 갔다. 하우스가 몇 동 서 있다. 이런 농사자리가 몇 군데 더 있다고 한다. 대농이라면 대농인데, 그는 어중간하다고 한다.
“크게 허는 사람이 많고, 우리는 작아요. 요새 귀농이나 귀촌하는 이들이 표고 많이 했는데, 참 힘든데 잘 모르고 오는 경우가 많지요. 표고해서 돈 만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중국산에 배지로 만든 국산도 워낙 쏟아지니까.”
그의 표정이 비 맞은 표고 머리처럼 어두워졌다. 그래도 참하게 늘어선 참나무들을 보니 안쓰럽고 반가웠다. 원목에 표고를 기르는 좀 전통적인 방식이다. 원래 참나무에 기생하는 표고의 성질을 이용한 전통적인 재배법이다. 원목 참나무를 1미터 좀 넘게 잘라서 눕혀서 물을 먹인 후 비스듬히 세워서 표고를 기르게 되는데, 그 과정이 참 지난하다.
“표고가 참 예쁘네요. 채식하는 불교 음식에 표고가 참 고마운 거예요. 천연 엠에스지(MSG)잖아. 사찰음식이 살아남은 건 버섯 덕이 커요. 『고려도경』에도 버섯이 나온다니까. 우스갯소리로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게 사찰음식’이라고 하잖아, 버섯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스님의 농담에 와그르르, 일행이 웃었다. 산중의 하우스 안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참나무 원목은 3년을 쓴다. 그게 수명이다. 그동안 열 번 정도 버섯을 딴다. 나무에 하옇게 보이는 게 종균 배양해서 심은 것이다. 하얀색은 스티로폼으로 눌러놓았기 때문이다. 저들이 알아서 철마다 시간을 두고 버섯을 틔운다. 더우면 너무 빠르게 자라고 갓이 퍼지며, 추우면 성장이 더디다. 봄과 가을에 주로 따게 된다. 역시 가을 버섯이 제일이다. 백화고라고 부르는 건, 일교차가 심해야 생긴다. 밤에 추워서 웅크린 버섯의 머리가 낮에 더운 날씨에 훅, 하고 터져버린다. 그 갈라진 모양이 아름다울수록 비싸다. 한 나무에도 백화고와 그냥 짙은 색의 머리인 흑화고가 섞여 열린다. 어린 표고가 고개를 빼꼼 내미는 모양이 안쓰럽고 귀엽다. 스님이 찬찬히 어린 버섯이 악착같이 살자고 나오는 모양을 보신다.
“우주의 원리대로 자라고 저물고. 인간은 그걸 먹고 살고. 참 세상이 저 버섯의 순환과 다를 바 없는데, 욕심들이 많아서….”
표고를 기르는 데 중요한 일이 많지만, 뒤통수를 두들기는 말씀이 쩌르르하다. 이상희 사장이다.
“우리가 하는 건 별로 없어요. 나무 눕혔다가 세우고 종균 넣고, 따고, 아, 나무를 가끔씩 두들겨주어야 해요. 구멍 속에서 자고 있는 종균을 깨우는 겁니다. 그러면 ‘아, 나 나오라는 소리구나’ 하고 표고가 나와요.”
똑똑똑. 버섯에게 우리는 신호를 보낸다. 말없이 알아서 나오는 표고들. 그것은 만물과 인간의 소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표고가 이 정도였어?
스님이 표고를 따서 버섯 간장 조림을 하신다. 그저 표고와 집간장이 다다. 온갖 향신과 맛 돋울 거리도 넣지 않고 만든 그저 담백한 요리다.
“간장이 다예요. 처사님들 술안주에 이런 채식안주를 들면 몸에도 덜 나쁠 텐데,”
연신 농담이다. 입에 버섯을 넣어주신다. 좋은 간장의 향과 좋은 버섯의 감칠맛이 알맞게 조화롭다. 씹으니, 점점 맛이 진해져서 혀가 부담스러워진다. 맛의 응축된 힘이 놀랍다. 표고가 이 정도였어? 하는 자문을 하게 된다. 흔히 버섯을 두고 일능이 이송이 한다는데 표고는 왜 빼나 싶다.
“맛있죠? 표고가 흔해지니까 우리가 그 맛을 잘 몰라요. 얼마나 맛있는 버섯인데. 가루 내서 양념으로도 많이 쓰고, 육수도 많이 내고, 볶아도 쓰고 굽기도 하고. 이리 와 봐요.”
스님은 아주 신이 났는데, 표고가 잘 생기고 맛 좋아 그러신 모양이었다. 가스레인지에 팬을 올리고 기름 한 방울 안 치고 버섯을 잘라 굽는다. 좋은 표고 향이 널리 퍼진다.
“표고는 가열하면 향이 좋아져요. 아, 좋다. 이거 먹어봐요.”
표고의 흰 부분이 갈색이 되도록 지져서 내주신다. 쫄깃한 식감이 아주 좋고, 맛의 침을 마구 솟게 한다.
“딱 소금만 넣어도 그래요, 아무것도 안 했어. 원래 좋은 재료는 소금간만 해도 맛이 알아서 다 나와요.”
말랑한 듯 쫄깃하고, 버섯의 얇은 쪽은 살짝 바삭하게 씹힌다. 재료란 이런 것이구나, 맛이란 본디 제 꼴이 중요하구나, 이것저것 분칠을 해서 얻은 맛과는 격이 다르구나. 뭐 이런 생각이 버섯을 씹는 찰나에 스쳐 지나갔다.
“표고는 말려서도 많이 쓰잖아요. 말리면 맛이 더 당당해져요. 물에 불리고 그 물도 버리면 안 돼요. 맛이 우러나오니까, 어쨌든 지금은 산지에 왔으니 생버섯의 맛을 봐야지.”
양평 중에서도 강하면은 표고 농사로 워낙 유명하다. 약재와 버섯이 유명한 서울 경동시장에 가면, 강하 표고라는 글씨를 써넣고 파는 표고를 볼 수 있다. 이곳 표고는 강하의 기후와 농부들의 정성으로 지금도 쑥쑥 자란다.
노모와 안주인이 불광 취재팀과 점심 공양을 같이 하자신다. “밥숟가락만 몇 개 더 놓으면 되는데 뭘.”이라며. 이런 말, 유난히 기쁘게 들리던 어느 가을의 낮이었다. 밥상에 소소한 찬들이 올라오는데, 버섯조림이 눈에 들었다. 모두 못생기고 작아서 상품으로 팔지 못할 것들이 농부의 밥상에 오르는 것이다. 본디 농사를 지으면 잘 생기고 큰 것을 먹지 못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들의 밥상에 가만히 숟가락을 얹을 자격이 있는지, 숟가락질 내내 스스로 물었다. 다시 차는 물빛이 노랗게 변해가는 한강변의 양평 시골길을 달렸다.
촬영협조. 강하표고농산, 010-8606-7384(이상희)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재료
생 표고버섯(흑고-소) 10개
조림장 : 재래간장 2큰술, 조청 2큰술, 쌀
가루 1큰술, 물 1컵
만드는 법
1. 생 표고버섯은 젖은 행주로 먼지를 털어낸다.
2. 줄기는 떼어내고, 윗부분을 별모양으로 도려낸다.
3. 조림장 재료를 섞어서 냄비에 끓이다가 표고버섯을 넣고 끓인다.
4. 국물이 걸쭉해지면 접시에 담는다.
Tip_
건조 표고버섯을 물에 불릴 때 감칠맛과 약성이 물에 녹아 나오므로 단시간에 불려야 한다. 지퍼백을 이용해 건조 표고버섯과 1/3컵의 물을 붓고 공기를 뺀 후 오므려 냉장고에 넣어두면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도 부드럽게 불릴 수 있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www.koreatemplefo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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