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스님의 선담禪談] 대의단大疑團이 있어야...
대의단大疑團이 있어야 수행으로 들어간다
대웅전 뒤편으로 10여 분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소림굴이라는 조그마한 토굴이 있다. 선원에 다니다 대중을 떠나 혼자 오롯이 공부하는 수좌스님들이 1-2년씩 수행에만 전념할 때 사는 곳이다. 10여 년 전쯤에 해인사 도반인 원장 스님이 살았을 때의 이야기다. 스님은 젊은 시절 용맹정진 하느라 치아가 들떴지만 아랑곳 않고 공부를 하다가 치아가 두 개만 남기도 했다. 토굴에 사는데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큰절에 내려와 밥을 먹는데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나이는 환갑이 가까운데도 성도재일에는 대중선원에서 수행하듯 혼자서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을 묵묵히 했던 스님이다. 처음 토굴에 올라갔을 때의 일이다. 참선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당신의 은사인 성철 스님이 설한 100일 법문을 MP3로 한 달 동안 듣고 또 듣고 하였다는 것이다. 다 듣고 나서는 수행에 대한 신심과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여 녹음기를 향해 삼배를 올렸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서옹 대종사의 수행법에 관한 연구논문을 쓰고 있다. 스님의 행적과 자료들을 꼼꼼하게 수집하고 찾는 과정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이야기로만 전해오는 서옹 스님의 「진실자기眞實自己」라는 논문을 찾았을 때는 더없이 기뻤다. 일본 유학시절인 1943년, 교토의 임제대학을 졸업할 때 스님이 쓴 논문이다. 당시 교토학파의 다나베 하지메의 불교학은 유명했다. 그의 사상을 담은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는 논문이 있었는데 그 논문을 반박하고 새로운 진보된 이론의 논문을 써서 학부생이던 스님의 논문이 대학원 교재로 채택된 사건은 신화적인 이야기로 전해오고 있다.
10여 년 전 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스님에 의하면 졸업한 지 60년이 지났어도 대학의 사람들은 ‘서옹 스님’ 이름만 들어도 존경하는 마음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70년이 지난 대학졸업 논문이 학교에 남아 있겠는가 싶어서 포기를 했는데 다행히 누군가가 찾았다고 해 메일로 전해 받을 수 있었다. 250자 원고지에 펜으로 단정히 쓴 글씨들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일본어를 모르니 일본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법장 스님에게 번역을 부탁을 하였다. 내용을 하나하나 원문과 대조하며 읽어 내려갔다. 현대철학의 한계와 진실자기의 선에 관한 상세한 정리는 명확했다. 그 경지를 충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원고와 번역문을 불단에 올리고 삼배를 올렸다.
스승을 받드는 것은 그 법을 받드는 일이다. 가까이에서 모실 때에는 마치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듯 귀함을 몰랐다. 아니 내가 큰스님에 대한 상相을 크게 만들어 놓고 실망하고, 좋아하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참이 지난 후 스승의 흔적 속에서 큰 자비심을 발견할 때야 비로소 나의 어리석음을 통탄하고 새로운 발심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평소 수행을 지도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 대의단大疑團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수행의 처음과 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틈만 있으면 산속의 스님들이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치열한 현장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다보면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 부딪친다. 이런 생사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풀려고 몸부림칠 때 절대 이율배반과 절대 긴장이 나온다. 절대 긴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진실한 자기 생명의 치열한 참구參究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때를 「진실자기」에서는 ‘전 세계에 불이 난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 ‘전 세계에 불이 난 것과 같은 긴박함과 절실함을 느낄 때 절대모순은 정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참구할 것도 없고 참구될 것도 없는 상태일 때 대의단에 들어가게 된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늘 초심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발심을 일으키게 만들 것인가가 지도하는 나의 고민이었는데 여기서 한번 크게 비약飛躍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진실자기」에 대의단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공부하는 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대의단은 ① 오직 절대모순 그 자체이다. ② 그 순간, 전 세계는 해체된다. ③ 생사도 없으며, 착하고 악함도, 더러움과 깨끗함도, 참됨이나 거짓도 없다. ④ 인류도 허공도 사라진다. ⑤ 절대위기가 저절로 해소된 것이다. ⑥ 심리적인 마음도 정신적인 마음도 없는 것이다. ⑦ 아무것도 없다는 의식도 없으며, 아무것도 없다는 의식도 없다고 하는 것도 없는 것이다. ⑧ 내적 차별을 초월하고 외적 대립을 초월했다는 것도 없는 것이다. ⑨ 능소를 초월하고, 이름 지을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으며, 일체를 초월하고 있다. 이러한 대의단의 경지를 선가에서는 동중일여(動中一如,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의단), 몽중일여(夢中一如, 꿈을 꾸는 속에서의 의단), 숙면일여(熟眠一如, 깊은 잠 속에서의 의단)라는 표현을 한다. 수행 중의 마음 상태나 경지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서옹 스님의 또 다른 책인 『임제록연의』를 읽다가 ‘비약飛躍’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뛰어서 날아오른다는 말이다. 점차적인 것이 아니라 한순간 차원을 달리한다는 말이다. 돈오돈수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을 가슴에 안고서 이리저리 궁리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때 나오는 답은 추측과 상상의 답만이 나올 뿐이다. 나는 그래서 ‘향상’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자신을 향상시켜야 비로소 풀린다. 향상이나 비약은 점차적으로 습득해서 얻는 과정이 아니다. 그래서 비약이라는 말이 적절하다. 서옹 스님은 살아 생전에 ‘투과’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는데 이 말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투과하고 향상되어 일체의 차별하는 마음이 없는 절대 평등에 이른다. 이러한 때가, 어른의 말을 빌리면, 구석구석까지 밝게 빛나는 평등전일(平等全一, 모든 것이 하나로 평등함)한 것이다.
8일은 짧은 기간이지만 가끔 대의단을 체험하고, 힘을 얻어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절대 긴장을 하게 만드는 세상의 현실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절벽에 내몰리게 하고 그곳에서 생사투의 마지막 벼랑이 땅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뇌하는 현대인들의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름을 준비하는 마음이 바쁘다.
금강 스님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 결사운동’, 무차선회를 진행하였다. 홍천 무문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진행하며 일반인들과 학인스님들의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