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콩나물이 숨 쉬는 소리

동원 스님과 함께 콩나물 찾아 떠난 여행길

2016-03-03     박찬일
 
 하나씩 내려설 때마다 냄새와 기운이 달라졌다. 우리는 다른 생명의 세계로 가는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콩나물 ‘공장’은 건물의 지하에 있었다. 완벽한 어둠. 우리는 미동도 없이 칠흑에 익숙해지기 위해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아마도 착각이었을 것이다. 콩나물이 숨 쉬는 소리를 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 착각을 이내 사실처럼 믿고 싶었다. 너무도 어둡고 조용한 사위, 숨소리가 들려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콩나물은 저희들끼리 호흡하는 열로 자랍니다. 온도를 잘 맞춰주고 물을 잘 주어야지요. 그렇죠, 제 자식들 같아요. 숨소리가 진짜 들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신혜남(58) 사장의 말이다. 그는 경기도 광주, 제법 산세가 심한 인적 드문 땅에 건물을 짓고 콩나물과 숙주를 길러내는 이다. 누구나 이런 시설을 ‘공장’이라고 이르겠지만, 나는 다른 적당한 말을 찾아야겠다. 저 빽빽한 생명이 만들어지는 장소를 공장이라 부르기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둠에 우리 홍채가 적응하고, 붉은색 전기난방등의 빛에 의해 콩나물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박스에 날짜별로 각기 다른 콩나물들이 가득 들어차서 자라고 있다. 알다시피, 콩나물은 빛을 피해서 기른다.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뿌리’를 기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뿌리(정확히 말하면 배축이라는 기다란 몸통과 뿌리)가 바로 식용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광합성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 준다. 
 
“이 녀석들을 보니 환희심이 일어, 환희심이.”
 
동원 스님의 낮은 탄성이다. 상자 안에 저마다 살겠다고 고개를 내밀고 애를 쓰는 콩나물들이 가득한 광경을 보시고는 하는 말씀이다. 콩나물은 아주 예민한 생명이다. 물을 주고 어둡게 하면 자라긴 하겠지만, 좋은 품질을 얻자면 더 세세한 조건이 필요하다. ‘참맛콩나물’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무농약의 좋은 콩나물을 생산해온 신 사장은 콩나물에서는 박사로 통한다. 
 
“대략 이십도 정도의 온도를 연중 유지해 줘야 해요. 그러니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입니다. 물이 중요한데 당연히 맑고 좋은 물을 줘야 콩나물이 맛있지요.”
 
신 사장은 물의 산도를 조절해서 알칼리수를 만드는 방법으로 콩나물의 품질을 높이고 있다. 콩나물에 따로 주는 것 없이 오직 물만 주기 때문에 그 물의 중요성이 더욱 높은 까닭이다. 물 주는 기계가 콩나물 통이 놓인 장소를 몇 번이고 왕복하면서 가늘고 곱게 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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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나물은 마치 우주의 섭리대로 몸을 만들어 간다 
 

 

1일차 녀석들은 누워서 조금 뿌리를 내밀고 있다. 날짜가 거듭될수록 몸을 일으킨다. 4, 5일차가 되니 곧바로 서 있다. 땅에 심은 게 아닌데도 콩나물이란 이 생명은 마치 우주의 섭리대로 그렇게 몸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자란 콩나물은 7일차면 시중에 나간다. 갓 뿌리를 낸 어린 것들이 불과 일주일 만에 먹음직스러운 콩나물로 변하는 것이다. 콩나물은 전형적으로 ‘밀식’ 상태라야 오히려 잘 자란다.
 
“우리가 갓 출가해서 교육받을 때 스님들이 그랬어요. 콩나물처럼 빡빡하게 눌러 길러야 잘 자란다고. 그때는 스님 소리가 섭섭했지요. 좀 풀어주고 그러면 좋을 텐데 싶었던 거지. 엄하게 길러야 좋은 중이 된다는 말씀으로 지금은 새겨들어요.”
 
스님의 회고다. 아닌 게 아니라 콩나물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기를 쓰며 자란다. 콩나물이 들어 있는 통은 높이가 가슴께에 이르는데, 키가 고작 몇 센티미터에 불과한 콩나물이 몇 겹으로 층층이 자라나고 있다.
 
“그게 바로 호흡 열에 의해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됩니다. 많이 올라가면 사십 도까지도 됩니다. 그러나 너무 높기만 하면 콩나물이 상해요. 그래서 물을 뿌려주면 열도 식히고 영양도 주는 것이지요.”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해서 여섯 시까지 콩나물을 돌본다. 하루에 세 번 출하하고,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된다.
 
스님이 날짜별로 쑥쑥 자라 모양이 다른 콩나물들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이뻐, 이뻐”를 연발하신다. 정말 꼬리를 꼬불꼬불하게 말고 있는 콩나물들이 귀엽게 보인다. 스님은 절집 음식이라면 콩나물과 두부가 먼저 생각나신다고 한다. 제사가 많은데, 수행음식으로 좋고 속이 편안하며 값도 좋은 게 그것들만 한 게 뭐가 있겠느냐는 말씀이다.
 
“초파일 같은 때는 콩나물이 아예 통째 일고여덟 개는 들어와야 얼추 맞출 거야. 정말 쓰임새가 많은 게 콩나물이지.”
 
흔히 콩나물은 생으로 먹지 않는다. 숙주는 생으로 먹더라도 콩나물은 비리다는 인식이 있다. 신 사장이 생 콩나물을 권한다. 하나씩 먹다 보니 자꾸 손이 간다. 전혀 비리지 않고 고소하고 향긋하다. 좋은 콩나물은 날로 먹어도 좋다는 얘기다. 샐러드 같은 무침을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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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를 쓰고 자라려는 콩나물의 초발심
 
요즘 콩나물은 위기의 식품이다. 소비량이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한창 자랄 때 집안 찬에 빠지지 않았던 콩나물. 소싯적 기억도 있다. 어머니는 돈 40원을 주시면서 꼭 20원어치씩 두 봉지를 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야 양이 많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흔하게 콩나물을 먹었다. 무침도 맵게 순하게 맛의 변주를 주었고, 국에다가 콩나물밥, 온갖 찌개에도 빠지지 않았다. 한겨울 시원한 동태찌개에 콩나물을 어떻게 빠뜨릴 수 있었겠는가. 고단하고 어려운 시절, 콩나물 없이 어머니는 어찌 그 많은 식구들 먹을 상을 차릴 수 있었겠는가.
 
“예전에 절집에 뭐 먹을 게 있었겠어요. 늘 보는 게 콩나물이라 지겹기도 했지. 콩나물밥, 갱죽 같은 거 정말 많이 해먹었어요. 콩나물은 수행자들에게 참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순하고 여리며 독이 없어요.”
 
스님은 손수 콩나물을 기른다. 마침 요리를 위해 한 봉지 거둬오셨다. 콩나물전문가인 신 사장이 보더니 ‘잘 기르셨다.’고 한다.
 
“콩나물을 길러보면 참 이런 생각도 들어요. 모난 것 깎아 가며, 모자란 것 보태 가며 저렇게 똘똘 뭉쳐서 힘써 자라는 게 무언가 세상에 전하는 말이 있는 셈이에요. 기를 쓰고 자라려는 콩나물이 초발심이 아니고 뭔가 싶고.”
 
요새 사찰음식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기왕이면 절집의 음식을 통해서 절제와 사랑 같은 선한 마음을 배워 가야 옳은 게 아닌가 말씀하신다. 조리법이 전부가 아니라는 일침이다. 하긴 조리법이야 책이나 인터넷에도 있다. 말씀을 얻는 것이 어려운 법.
 
요즘 콩나물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은 단지 기호의 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이른바 ‘집밥’을 먹는 환경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가 준비하는 따뜻하고 정이 있는 가족 식사의 붕괴를 의미한다. 어쩌면, 콩나물이란 잠수함의 토끼처럼 가족 붕괴의 신호 상징물인지도 모른다. 산소가 부족하면 토끼가 먼저 알아채듯, 콩나물 맛을 잃어버리는 것은 전통적인 가족상이 무너진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집에서 어머니가 콩나물 다듬고 요리하고 그런 환경이 무너진다는 뜻인 것 같아. 인스턴트 음식에 콩나물이 나올 리 없고. 하…”
 
관세음보살. 스님의 탄식이다.
 
| 동그란 통 한 톨 늠름하게 자라듯
 
“그렇지 않아도 좋은 콩나물 기르는 사람들이 아주 힘들어졌어요. 사먹는 음식은 원가를 줄여야 하니 콩나물을 좋은 걸 쓰기 어렵지요. 경제가 어려우니 저가 재료가 더 많이 나도는 데도 영향을 주고.”
 
내가 일하는 식당에서 콩나물로 직원들 음식을 만들곤 한다. 재료상에게 주문을 하는데, 콩나물 맛이 별로다. 혹시나 해서 산지를 봤다. 중국산이다. 콩나물도 중국산이 있는지 그때 알았다. 재료상은 국산을 찾는 가게가 거의 없으니 따로 요청하지 않으면 중국산을 공급하는 것이다. 헌데, 그 여리고 약하며 값도 싼 콩나물까지 중국산을 먹어야 하는지 신 사장에게 물었다.
 
“네. 콩나물을 다 키워 들여오는 게 아니라 중국산 콩을 쓰면 원산지가 그렇게 됩니다. 발아를 시키는 게 아니니까 콩 그 자체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중국산이라고 표기해야 합니다. 국산 콩은 비싸니까 중국산을 쓰는 것이지요.”
 
알아야 면장한다고, 콩나물도 우리가 배워가며 사먹어야 한다. 성장촉진제 문제도 그렇다.
 
시중에 나오는 다수의 콩나물은 촉진제를 쓴다. 성장이 빠르고 줄기가 통통하며 잔뿌리가 없어서 손질이 편하기 때문이다. 흔히 ‘찜용’이라고 하여 통통한 콩나물은 거개 촉진제를 썼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그 촉진제 이름을 보통 ‘인돌비’라고 하는데 무게가 늘어나니까 제조상들이 애호한다.
 
“보통 콩 무게에서 약을 안 쓰면 5백 퍼센트쯤 나물이 나옵니다. 약 쓰면 8백 퍼센트가 나오니까 유혹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요. 사람들이 ‘통통해서 좋다.’고 하니까 더 그런 거예요. 콩나물은 원래 꼬불꼬불하고 곱슬한 게 맞아요. 잘 생각해 보세요. 옛날 콩나물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스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 사장이 콩나물회사 사장이 된 건 아주 우연이었다. 그는 원래 다른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어느 날, 「농민신문」 1면에 ‘농약 콩나물 말썽’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충격이었다. 자신이 좋은 콩나물을 길러보고 싶었다. 친구가 “네가 농약 안 치고 기르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고 장담했다. 그만큼 촉진제 쓰는 것이 대세였다. 그는 그렇게 콩나물을 시작했고, 최초의 다짐대로 한 번도 약 없이 일주일짜리 아이들을 수없이 길러냈다.
 
스님이 콩나물로 요리한다. 찜이다. 아삭하고 고운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고생했다, 얘들아. 일주일 동안 자라고, 그렇게 길러낸 생명이 음식으로 만들어져 우리 몸을 채운다. 내 몸은 본디 우주이니, 저 생명들의 보탬이 그저 가벼울 리가 없다. 마지막 콩나물 한 점까지 다 잘 먹었다. 건물밖에 아직 바람은 차고, 멀리 산에는 잔설이 가득하다. 그저 동그란 통 한 톨이 늠름하게 자라듯, 계절도 이내 오리라. 스님이 돌아서는데, 옷깃이 일으킨 바람이 문득 부드러웠다.    
 
촬영협조. 신혜남 참맛콩나물, 031-793-6495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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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 스님의 입맛 돋우는 매운 콩나물찜 
 
재료
콩나물 300g, 미나리 30g, 청양고추 2개, 홍고추 1개, 통깨 1큰 술
양념장 : 집간장 1큰 술, 고추장 1큰 술, 채수 1/2c, 생강즙 1작은 술, 고춧가루 2큰 술, 들기름 2큰 술, 고운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콩나물을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뺀다. 미나리는 4cm 길이로 자르고, 청·홍고추는 꼭지와 씨를 제거하여 잘게 다진다.
 
2. 분량의 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궁중 팬에 콩나물을 넣고 양념장을 부은 뒤 중간 불에서 익혀 가며 뒤집어 준다.
 
4. 김이 나고 콩나물이 익으면 마지막으로 미나리와 다진 고추를 넣고 뒤섞은 다음 통깨를 뿌려 그릇에 담아 낸다.
 
 
Tip_
콩나물은 처음부터 뚜껑을 열고 조리하거나, 뚜껑을 닫고 완전히 익힌 후 뚜껑을 열어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www.koreatemplefo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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