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박에 떠나는 암자순례] 태안 태을암, 서산 간월암
따뜻한 위로를 주는 암자로 떠나다
태을암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만나다
충남 태안은 크게 평안한 고을이라는 뜻이다. 태안의 진산鎭山, 백화산(白華山, 284m)에 위치한 태을암太乙庵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기암괴석들로 이뤄져 아담하지만 웅장한 백화산 중턱, 태을암의 너른 자갈마당으로 들어선다. 산중턱의 암자는 고요하다. 도량에서 태안읍과 서해바다가 한 눈에 담긴다. 가슴이 탁 트인다.
태을암.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현존하는 여러 당우는 근래에 중창되었다. 마애불의 조성 시점으로 보아 백제 때부터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태을암이라는 이름도 조선 성종 9년(1478년)에 단군 영정을 모셨던 태일전太一殿을, 이곳 백화산으로 옮긴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질 뿐이다.
대웅전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태안마애삼존불상泰安磨崖三尊佛像(국보 제307호)의 미소를 보러간다. 마당을 가로질러 동백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계단을 오른다. 간월암 주지 정암 스님은 태안마애삼존불을 회상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의 미소도 좋지만, 태안마애삼존불 부처님 상호에 은은하게 드러난 미소가 정말이지 아름다웠습니다.” 태안마애삼존불상은 백제의 미소라 알려진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6세기에 조성된 백제시대 최고最古의 마애불이다. 백화산 마애불의 단아한 미소를 친견하리라, 마애불을 보호하고 있는 전각으로 들어선다.
커다란 화강암 바위의 앞면에 양각된 부처님이다. 그런데 삼존불이 특이하다. 태안마애삼존불상은 두 손으로 보주를 든 보살이 가운데 좌정해있고 부처님께서 양 옆으로 협시해 계신다. 도상 자체가 유일무이해 미술사적으로나 시대사적으로나 중요하지만, 관련된 사료가 없어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가운데에 앉아계신 분을 관세음보살로 본다. 태을암 주지 흥법 스님은 마애불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곳 마애불에는 당시 전쟁이 많던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생들을 위해, 그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무한한 자비로 중생들을 구제하시지요. 그래서 가운데에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더욱이 이 산을 백화산이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을 백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보면 관세음보살님이 계신 이 곳이 백화도량, 관세음보살님의 도량이지요.”
아쉽게도 중생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관세음보살님과 부처님의 얼굴은 많이 마모되어 있어 은은한 미소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뚜렷하지 않은 얼굴에서도 느껴지는 미소는 온화하다.
|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는 간월암의 낙조
해가 내려앉아 붉게 물들 바다를 보러 서산 간월도로 향한다. 차로 30여 분을 달려 간월암에 도착한다. 간월암看月庵은 태조의 왕사였던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고승, 무학無學 대사(1327~1405)가 이곳에서 수행을 하다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이후 무학 대사가 지었던 간월암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만공滿空 월면月面 스님(1871~1946)이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달이 두 고승의 인연을 잇는다.
간월암은 하루에 두 번, 육지와 길이 단절된다. 자연이 속세를 끊어낸다. 달의 인력으로 간조에는 뭍과 닿고, 만조에는 연못 위 떠오른 연꽃 같은 섬이 되기에 물때와 인연이 없다면 때를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물이 빠지면 조금 전까지 바다였을 땅이 지면을 드러낸다.
물이 걷힌 바닷길을 걸어 들어간다. 물에 잠겨있던 곳에 작은 돌탑들이 총총 쌓여있다. 염원을 담아 쌓은 돌탑들은 차오르고 빠져나가는 물살에 넘어질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다. 보살의 자애로운 얼굴을 닮은 장승들은 어서 오라 반기고, 장승을 지나 염궁문念弓門을 통과하면 드디어 간월암이다. ‘번뇌 망상을 화살에 날려버리라.’는 뜻의 염궁문은 천장암에 걸려있는 경허 스님의 글씨를 복각한 것이다. 그 문을 넘어서자, 아기자기한 동자승 인형들이 옹기종기 객을 맞이한다. 소담하지만 단단한 도량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고목 사철나무를 지나 대웅전으로 향한다.
대웅전은 바다를 바라보며 묵묵히 자리하고 있었다. 해풍에 깎인 빛바랜 법당 지붕단청은 무상을 몸소 드러내고, 대웅전 안에는 대웅전보다 그 자리를 더 오래 지키고 있었을 목조보살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4호)이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며 좌정해 있었다. 임진왜란 후 불상의 모습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좌상은, 시선을 약간 아래로 두고 중품하생中品下生 수인을 맺고 있어 관세음보살로 짐작한다. 저 멀리 뱃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관세음보살은 절 마당의 용왕단에서도 푸른 용을 타고 바다를 살피고 계시었다.
간월암을 둘러싼 바다가 물비늘을 반짝인다. 툭 터진 하늘과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4월이 되면 이 도량에서 한 달에 한 번 작은음악회를 연다고 한다. 파도소리와 어우러진 음악을 들으러 오겠노라고 생각하던 찰나, 간월암 주지 정암 스님이 절 마당 나무 밑으로 촤악- 쌀알을 뿌렸다. 참새들의 저녁공양 시간이다. 참새들이 포르르 날아와 줄맞춰 공양을 하고 나니, 이제 곧 해가 질 때다. 해는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간월암 멀리로 사라진다. 황홀한 낙조를 보고나면 달이 말갛게 떠오르고, 그 달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나눌 것이다. 무학 대사는 떠오른 달을 보며 홀연히 깨달았다. 깨달음의 눈으로 본 그 달은 지금과 같은 달일까.
달은 차고 기울고 다시 차오른다. 달의 삭망으로 바다는 밀물과 썰물로 진동한다. 우주 법계 모든 조화 속에서 한시도 같은 때란 없다. 언제나 새로운 날이다. 간월암은 하늘, 바다, 땅 처처마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설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