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명법문] 뿌린 씨는 가꿔야 열매가 맺힌다

2015-12-10     설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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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을 상념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낙엽이 곱게 물들었다 뚝 떨어져서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 뭔가 가슴이 찌릿하지요. 찬바람을 맞으면서 무한정 걷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는데 인생의 결실은 무엇일까.’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인생의 결실이라 하면 집도 사고, 애들 잘 키워서 결혼도 시키고, 사회적으로도 어떤 역할을 하는 결실을 생각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뭔가 허전합니다. 
 
 
 
나는 나의 주인인가
선구禪句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하고 입처개진立處皆眞하라.’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어떻습니까. 주인 노릇 당당하게 잘 하고 계십니까? 번뇌와 망상이 가득하기에 수처작주 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주인 노릇을 하려면 마음에서 욕망이나 분노, 큰 상념들이 모두 떨어져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떨어질 겁니다.
 
모두 다 얽혀 있습니다. 돈이나, 물건에 마음이 쏠려 있습니다. 명예에 집착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가득한 사랑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삽니다. 그것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입처개진하라. 가는 곳마다 진리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번뇌망상 때문에 진리 속에서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슬프고 괴롭고 서럽고 분한 거예요. 
 
‘과연 나는 어떤 결실을 얻고 있는가. 어떤 결실을 향해서 가고 있는가.’ 한 번 되돌아보길 바랍니다.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사랑을 추구한다고 해서 잘 사는 것이 아니에요. 그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심성을 바꿔야 해요. 마음의 성품을 바꾸지 않는 나는 나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불자들은 신앙적 씨앗을 땅에 뿌렸으면 그것을 잘 성장시켜 열매를 맺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견성이에요. 불교에서는 견성가치가 가장 소중하다고 합니다. 견성가치 안에는 무한한 복덕과 무한한 지혜, 무한한 자비와 무한한 위신력, 무한한 공덕이 다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하게 말씀하신 것도, 그 견성가치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견성을 향해 가려고 보니까 마음대로 잘 안됩니다. 작심삼일하는 사람도 많아요. 견성을 향해 가려면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심과 원력을 갖지 않으면 도저히 갈 수가 없어요. 저는 그 신심과 원력을 현대적인 표현을 가미해서 ‘용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업을 바꾸려면 독을 피워라
인생은 참 소중합니다. 그렇기에 매순간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연습처럼 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인생 매순간이 결승전이에요. 그 시간은 지나가면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진실하게 전력투구하지 않고, 슬금슬금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잔뜩 기대하고 삽니다.
 
인생은 먹고 놀고 뛰고 향락하는 그런 놀이터가 아닙니다. 나태하고 놀고먹고 향락하기만 하면서, 행복하기를 넉넉하기를 존중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다생겁래多生劫來하면서 업력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다생을 겪으며 쌓인 잘못된 습은 내 정신을 빼앗아가요. 주인노릇하지 못하고 종노릇하게 만듭니다. 돈의 종, 물욕의 종, 사랑의 종, 권력의 종. 종노릇을 하게 되면 자기 존엄성이 상실됩니다. 습이 짙을수록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그 업을 바꿔야 합니다. 업은 잘 바꿔지지 않아요. 그래서 독을 좀 피워야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참선을 지극정성으로 해본다던가, 주력을 열심히 해본다던가, 온 힘으로 염불을 해보길 바랍니다.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춥고 더운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해보세요. 그때 심성의 위대성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그러니 꼭 한 번이라도 해보길 부탁합니다. 그래서 원력과 신심이 아주 소중합니다.
 
원력과 신심을 용기라고 표현했지요. 용기 없이는 실천할 수 없습니다. 시련을 이기려 할 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원칙을 지키고 주인 이념을 분명히 하는 것도 용기가 없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도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 양심을 지키는 것도 용기가 없으면 안돼요. 
 
양심은 여러분들의 순수한 마음입니다. 양심은 마음속 재판소와 같은 것이에요. 내적 재판소가 무너져버리면 그때부터는 껍데기만 인간입니다. 불교에서는 내적 재판소가 텅 빈 상태를 청정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청정심이 되었을 때, 지혜와 자비가 드러나게 됩니다.
 
불교를 두 단어로 말한다면 지혜와 자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혜는, 심성의 탁한 것들이 전부 스러질 때 드러나는 최고의 지성이에요. 불교인들은 지성인이 되어야합니다. 그것도 상대적인 지성인이 아니라, 상대가 끊어진 지성인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불교인들은 자비로워야 해요. 자비라는 것은 남을 연민하는 생각입니다. 관용하는 생각, 섭수하는 생각. 이해하는 생각, 사랑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자비가 없는 생활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삭막하고 황량한 들판과도 같아요. 인간의 가치라던가 보람을 느낄 수 없습니다. 자비가 내 마음에 있을 때 내가 보이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전체가 보입니다.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우리는 유한한 생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는 미립자 같이 미세한 존재예요. 100년도 못살다 떠날 존재들입니다. 우주의 나그네예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그네처럼 떠도는 일을 그만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고 힘든, 그 고통의 윤회를 끊자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견성을 가치로 두고 매진하는 거예요. 그것은 위대한 보물이기 때문에 적당히 해서는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잘못된 사고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신심과 원력을 마음에 담고 실천하세요.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실천은 부처님도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내 스스로가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어요. 성불이라고 하는 위대한 가치.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돈이든지 명예든지 영원한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속담처럼, 죽어서 돈 가져갈 수 있나요. 명예 짊어지고 갈 수 있습니까. 또 요새 “우리 못 다한 인연은 극락에서 만나 이룹시다.” 하잖아요.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모든 것이 인연법이라지만 인연이라 해도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가장 안전한 방법은 성불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성불을 위해서 여러분들 열심히 기도하고 주력하고 참선하세요. 
 
마음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가졌던 옹졸한 마음, 변덕스런 마음, 용기 없는 마음 등을 다 버리세요. 그런 마음을 모두 버리고서 자비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화장세계처럼 너무나 근사합니다. 그렇게 진실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은 지금 어떻습니까. 아름답게 보입니까.
 
복을 지으라고 말합니다. 물건을 남에게 주는 것도 복을 짓는 일입니다. 진리를 남에게 전하는 것도 큰 복이 됩니다. 상대한테 좋은 마음을 갖는 것도 복이 돼요. 저 사람 잘 됐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갖는 순간 복은 내게 옵니다. 그런데 불평하고, 원망하고, 기분 나쁘다고 표현하면, 지은 것이 그뿐입니다. 그 마음을 털어야 합니다.
 
그런 망상이 들면 ‘노는 입에 염불하라.’라고 하지요. 그때는 나무아미타불 하고 부르던지 관세음보살이라도 한 번 부르세요. 거기에는 무한한 공덕이 들어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참선을 해 딱 한 번만 생각을 쉬어도, 거기에는 무한한 공덕이 있습니다. 삶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삶을 바꿔야 복덕이 되고, 지혜도 열립니다. 바꾸지 않는 한 좋은 것이 올 수 없습니다.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항상 건강하고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정 스님
1955년 수덕사에서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강원과 범어사 선방 등에서 수행했다. 수덕사 주지, 조계종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법계위원이다. 2009년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으로 추대됐다. 1998년 종회의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죽어도 선방에서 죽겠다.”고 다짐하고 수행에 전념했다. 경허-만공-혜암-벽초-원담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하고 이판과 사판을 초월해 덕숭 문중의 가풍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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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일 수덕사 일요법회에서 설하신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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