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별똥별 캐러, 감자밭으로
원상 스님과 함께 감자 찾아 떠난 여행길
| 김꺽정 부인과 임사임당 아내의 산 속 외딴집
“그 길 끝까지 오시면 돼요.”
전화를 건 운전자에게 걸려온 대답이었다. 산길로 접어든 차는 한참을 달려 한 채씩 집을 만났고, 차를 세웠으며, “아니오.”라는 답을 들었다. 그때 생각이 났던 것이었다. 산길에서 목적지를 찾을 때는, ‘의심하지 말고 가라. 여기가 맞나 싶을 때 더 가라.’는 화두였다. 과연 ‘…외갓집’에서 기르는 개 세 마리(실은 한 마리는 마실 온 옆집 개)가 우리를 맞았다. 왜 아니겠는가. 인생의 길도 그럴 것이다. 본디 참된 것은 쉬이 보이지 않나니, 의심하지 말고 갈 일이다.
주인네 임소현, 김영미 부부가 맞아준다. 임씨는 천상 선비 풍모고, 날카롭고도 순한 눈매(이런 게 진짜 있다)를 가졌다. 아마도, 본디 퍼런 눈빛을 이 산골의 부드러운 기운과 능선이 둥글게 깎았으리라. 김씨는 포근하고도 억척스러워 보이는 내자다. 아니나 다를까, 김씨는 농민운동을 했고, 남편 임씨를 만나 귀농한 처지란다.
“제가 바깥사람 같고, 저 사람(남편)이 안사람 같죠? 다들 그래요.(웃음)”
괄괄한 성미의 아내 김씨다. 사진작가 최 선생이 어디선가 뵌 분들 같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맞다. 텔레비전 휴먼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부부다. 이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들어가서 구경했더니 흥미로운 분들이다. 임씨는 『불광』 취재팀을 남달리 맞아주면서 본디 다니던 회사가 조계사 근처에 있었다고 말한다. 직장 초년시절을 그 주변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멀리서 차바퀴 헛도는 소리가 들린다. 승용차가 올라오기에는 벅찬 길. 스님이 오시는 모양이다. 원상 스님(통도사 자연음식연구소장)이 차를 버리고 걸어오신다. 환하게 웃으신다. 마침 고마운 비가 뿌린다. 일동 합장.
마당에 앉아 환담한다. 원두막 위로 갓 수확한 양파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농사는요 뭘. 그냥 우리 먹을 만큼 짓고 효소 내리거나 할 용도로 조금 하는 거죠. 산야초로 효소를 만들고 오미자 농사를 지어 발효원액도 조금 합니다. 밭농사를 짓고 있는데 조금 하는 것도 멧돼지 가족이 와서 먹어버리곤 해요. 귀농 10년차에 정작 농사가 어렵다는 걸 깨닫는 중이죠.”
남편 임씨는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인제로 귀농했다가 영월로 옮겨왔다. 지세가 좋고, 물이 맑으며, 기운이 마음에 드는 땅이라고 한다. 원두막에 앉아 보니, 집이 보통 물건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직접 지은 집이다.
“기둥으로 쓸 나무를 마련해서 말려가며 지은 집이에요. 나무가 말라야 재목이 되거든요.”
기둥 세우고 흙 발라 직접 손으로 지은 집이 산세에 딱 물려서 아주 안정감 있다. 구석구석 사람 손의 노고가 깊다. 화장실도 당연히 수세식이 아닌데, 냄새 한 자락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의 깔끔한 손길이 그런 것이다. 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가는지 궁금해진다.
“농사는 뭐 그렇구요, 방 하나 민박 내고 그래요. 필요한 건 다 만들어 쓰고, 없으면 안 쓰고.(웃음)”
이 부부는 지역에서 활동가로 일한다. 동강 보존본부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감자에 대한 환담이 이어진다. 바로 집 앞 텃밭이 감자밭이다.
마침 수확을 할 시기여서 호미와 광주리를 들고 손을 합쳐 캐보기로 한다. 해는 구름에 가려 진땀도 흘리지 않고 감자를 뽑아 올린다. 이런 일이란, 기실 농사라고 부를 수도 없는 즐거운 노동이다. 갈아주고 김매는 고단한 일이 끝나고 수확의 기쁨에만 슬쩍 끼어드는 셈이라 미안한 마음이다.
|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올해 농사가 어렵습니다. 가물어서. 감자도 다들 작다고 아우성이지요.”
임씨의 말이다. 과연 쑥 뽑아 올린 감자 대궁 밑으로 알이 적다. 굵직한 것들이 간혹 보이고, 자잘한 조림용이 태반이다.
“농약과 비료를 안 치니 본래 작기도 작습니다. 알이 작아도 맛은 좋을 거예요.”
아내 김씨가 거든다. 이 낙관이 이들을 이 산골에서 머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 캐는 밭을 멀리서 집 마당의 개들이 지켜본다. 짖지 않고 사람을 따르는 녀석들이다. 절집에서 개를 기르면 불성이 스민다 하였는데, 이 집 개들도 그렇다. 맑은 눈으로, 감자 캐는 사람들을 본다. 우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서양화가 고흐는 일하는 대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오직, 낮은 불빛 아래서 수확한 감자로 식사하고 있는 농민의 퀭한 눈빛과 낯빛이 그의 애정을 말해준다. 그는 이 작품 한 장을 그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크로키와 스케치를 했다. 그중 상당수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가 이 작품에 쏟은 애정을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감자밭에서 스님과 우리는 감자를 캤다. 그 농민의 마음으로 말이다. 두런두런, 스님의 우스갯소리와 감자 먹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자는 부각이 먼저 생각나요. 저며서 전분 빼서 하얗게 만들어서 소금물로 데쳐요.(군침) 그걸 불 땐 방에서 말려요. 기름에 튀기면 되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스님이 조리법(?)을 말로 설명하면서 그것을 마치 입에 넣는 듯한 기분을 표현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안 후에는 가장 맛있게 먹는 것이 불가의 도라면, 스님의 표정은 맞춤하다.
“감자를 아주 좋아해요. 절 음식에도 많이 쓰고 있고. 순결하고 흐뭇하고 꿋꿋한 맛이잖아요. 감자 없으면 뭘 먹었을까 싶고.”
| 음식, 쾌락이되 쾌락을 강조하면 교만해진다
감자는 엄밀히 말해 토종 개념이 없다. 우리 땅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래 시기도 상당히 늦다. 순조24년(1824년),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문헌에서 처음 감자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청과 우리 국경 사이에 몰래 삼을 캐러 들어온 청나라 사람들이 감자를 심어놓고 먹었는데, 그들이 가고 난 후 땅에 남아 있던 감자를 통해 우리 땅에 번식했다는 것이다.
김동인의 소설 『감자』는 실은 고구마다. 감자는 ‘북감저’라고 불렀고, 고구마와 비슷한 이름으로 혼용되었다고 한다. 생김새가 비슷하고, 전래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서로 혼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재배 지역도 상당 부분 겹친다. 감자는 북방에서 오래 갈아 먹었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재배 면적이 넓어졌는데, 이는 일본의 곡물 수탈 정책과 물려 있었던 까닭이라고 한다. 감자 같은 대용 구황작물을 심고, 쌀을 빼앗아 갔던 것이다.
감자는 그 후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특히 땅이 척박한 지역에서 크게 활약했다. 농지가 거친 강원도가 감자 덕을 본 것은 물론이다. 화전민이 감자를 갈아 먹고 살았을 것 같은 이곳, 영월군 북면의 임소현 씨 댁 밭에서 지금 감자가 막 땅으로 나오고 있다.
“전국 선방을 다니면 별별 음식이 다 있어요. 지역별 영향도 있고, 선방에서 누가 공양을 쥐고 하시느냐에 따라 메뉴가 많이 달라져요. 감자로 만드는 음식도 마찬가지인데, 참 많은 걸 만들어서 공양하십니다. 감자옹심이는 아시지요? 감자붕생이라는 것도 많이 해서 공양 올리는 걸 봤어요. 감자란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감자옹심이는 감자를 갈아 내려서 둥글게 빚어 채소를 넣고 끓여먹는 음식이다. 붕생이는 일종의 범벅으로, 서양의 샐러드와 유사하다. 영월지역의 특산 음식이기도 하다.
“서양식 음식도 공양으로 더러 준비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건 감자샐러드예요. 삶은 감자를 잣 소스로 버무려 냅니다. 고소하고 몸에도 좋고, 아주 맛있어요.”
스님은 막 감자샐러드를 한입 달콤하게 입에 넣는 표정이다. 감자는 전분이 많으니 기름기와 잘 어울리는데, 기름진 마요네즈 대신 잣으로 그 몫을 대신한 조리법이다. 생각만 해도 맛있겠다.
지금 당대의 대중들 관심은 먹는 일에 많이 경도되어 있다. 아쉽게도 그것에는 쾌락의 측면이 강조될 뿐, 어디서 온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생활철학적인 면은 뒤로 물러앉아 있다. ‘먹방과 쿡방’은 어디까지나 유행일 뿐, 삶의 본질과는 서걱거리는 사이다.
“지금 다시 우리가 음식을 봐야 해요. 식食, 먹을 식. 들어간 것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사찰음식이 이 시대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기이기도 하죠.”
음식이 쾌락이되, 쾌락을 강조하면 교만해진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다.
“저는 부재료를 보려고 해요.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하면 남아서 버리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알뜰하고 온전하게 쓰는 일이 절 음식 만드는 스님들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감자를 깎아서 나온 껍질도 말려서 가루 내어 전분을 더 얻고, 손질한 채소 한 이파리도 말려서 쓰는 일을 말하시는 듯하다. 원두막에 매달아 놓은 양파가 한 개 툭, 떨어진다. 감자를 먹고, 일행은 일어섰다. 불성 가진 개들이 뒤를 따랐다. 다음해 농사로 다시 이들은 감자를 심을 것이다. 비, 내린다.
촬영 협조. 내 마음의 외갓집 : 070-4133-8636, 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리 920-5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원상 스님의 여름별미 유부 감자 샐러드
재료
유부(초밥용) 5장, 감자 2개, 오이 1/4개, 빨강 파프리카 1/2개, 취나물 200g, 조림 간장, 조청, 집간장, 깨소금, 참기름, 소금, 잣 소스 잣, 올리브유, 소금
만드는 법
1. 유부는 끓는 물에 데쳐 물기를 짜, 세모모양이 되도록 반으로 자른다. 간장과 조청에 살짝 조려낸다.
2. 물을 자작하게 부은 냄비에 감자를 넣고 푹 쪄서 으깬다.
3. 취나물은 데쳐서 물기를 짠 후, 집간장,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무쳐준다.
4. 오이와 파프리카는 곱게 채 썰어 다지고 취나물 무친 것을 다져서, 소금과 잣 소스를 넣어 으깬 감자와 함께 섞는다.
(잣 소스는 잣, 올리브유, 소금을 소형믹서에 넣고 곱게 갈아서 만든다.)
5. 유부 속에 4를 알맞게 채워 넣는다.
6. 접시에 취나물 무친 것과 함께 올려 낸다.
Tip_
감자를 고를 때는 흠집이 적고 표면이 매끄럽고 단단한 것이 좋다. 푸른빛이 돌거나 싹이 나 있는 것은 피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그늘에서 보관하며, 사과와 함께 두면 싹이 잘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