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 너머

사진작가 김영갑 (1957-2005)

2015-08-02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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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몰입의 황홀함을 말한다. 제주도의 변덕스런 바람을 마주하며 서 있었다. 우행호시牛行虎視, 소처럼 물러남 없이 걸었고 호랑이처럼 눈빛은 형형했다. 찰나를 사로잡아 필름에 담는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제주도인가, 그인가. 사진작가 김영갑, 그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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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시간의 황홀
이 땅에 이 이상 물러날 곳은 없으리라. 1985년, 그가 육지에서 유배의 땅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도를 사진에 담겠다.’고 20년간 스스로 철저하게 자신을 유폐시켰다. 처절하게 자신을 몰아갔다. 제주의 바람과 마주서서 오름을 찍었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샀다. 끼니는 들판에서 갓 뽑은 당근이나 고구마 따위로 허기만을 달랬다.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카메라를 들쳐 메고 중산간으로, 오름으로 올랐다. 루게릭병으로 온 몸의 근육이 전부 말라갈 때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만들며 사진만을 생각했다. 목숨 걸고 화두 드는 선사처럼 자신의 몸을 사루어 제주의 황홀경을 담았다. 사진에 모든 삶을 걸었고 사진을 찍다 생을 다했다. 김영갑, 그는 말했다. “내 사진은 내 삶과 영혼의 기록입니다.”

그는 제주의 오름을 가장 많은 앵글에 담아낸 사람이다. 사진에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의 제주도가 담겨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사진에 찰나의 황홀함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삽시간의 황홀’이라고 표현했다. 명멸하는 순간을 찍는다는 것은 각골의 인내 끝에야 얻어진다. 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몇 개월이고 한 자리를 지켰다.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려면 스물네 시간 깨어있어야 한다. 철저한 몰입. 한 호흡을 놓치면 그 시간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함은 삽시간에 끝난다. 환희의 순간이 김영갑의 파노라마 카메라에 사로잡혔다. 이제는 같은 장소에 가더라도 그 풍경을 담을 수 없다. 제주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으므로.


“둔지오름 북동쪽에서 수평선과 지평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감동을 한다. 
이곳 들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 적막, 평화로움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온갖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이곳을 산책한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그저 편안한 상태에서 걸어본다. 
때로는 돌담이나 나무 그늘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하늘, 땅, 나무, 풀, 돌 …
눈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불현듯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때 셔터를 누른다. 이것이 바로 삽시간의 황홀이다. 
그때 은은한 황홀은 내 안에서 찾아온다. 
이는 대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해석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 중


그의 사진은 날것이다. 중학교 때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형이 가져온 카메라가 그를 만들었다. 그는 정식으로 사진을 배우지 않았다. 친구 아버지의 사진관에서 심부름하며 어깨 너머로 사진기술을 익혔다.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누비다 1982년, 제주의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매료돼 3년 뒤 ‘섬 것’이 됐다.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뷰파인더로 지켜보았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중산간 들녘의 생명력을 담았다. 너른 들판, 오름, 하늘, 바람, 햇빛, 냄새. 사진에 텅 빈 것을 가득 채워 넣는다.

먹을 것을 아껴 산 필름으로 매년 개인전을 열었다. 지인은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개인전을 열고서는 전시장에 나가보지 않았다. 사진작가는 그저 사진으로 이야기할 뿐. 부연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기 위해서였다. 전시된 사진에는 제목도, 캡션도 달지 않았다. 

2015년, 그가 제주의 오름 너머 피안의 언덕으로 넘어간 지 10년째 되는 해다. 그의 사진들이 제주도를 안고 서울로 마실 나왔다. 피안으로 넘어간 그이기에 여전히 전시장엔 나오진 않을 터이다. 작품에 대한 부연설명은 작가 생전에도 스스로 허락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작품에 대한 감상은 온전히 감상자들의 몫이다. 한 가지의 사실은 말할 수 있다. 그의 사진에는 바람의 땅, 제주가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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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십 년만의 나들이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展
장소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전시기간 2015년 6월 27일(토)~9월 28일(월)
휴관일 7월 6일(월), 8월 3일(월), 9월 7일(월)
입장료 성인 10,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
문의 02-737-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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