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지진 속을 걷다 -하나

순탄한 시간들

2015-08-02     만우 스님

타멜 거리가 한산하다. 골목마다 무거운 침묵이 두껍게 깔려있다. 건물 틈 사이를 지나온 햇빛이 날카롭게 굳게 닫힌 문들마다 걸려있고, 열려있는 작은 슈퍼마켓에는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건네는 목소리가 낮다. 가게들이 반 정도는 문을 열었지만 사람도 물건도 거래가 없다. 여느 때 같으면 여행자들로 가득했을 가게들과 거리에 먼지조차 일지 않는다. 아직 네팔을 벗어나지 못한 몇몇 외국인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배회할 뿐 휴식과 쇼핑과는 무관한 발걸음들이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문을 연 식당이 없다. 한참을 헤매다 골목 끝에 있는 문을 연 식당이 있어 이층에 올라가 차를 시켰다. 평소 자동차 경적소리와 사람들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던 비상하는 새떼들의 나는 소리, 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새들도 둥지를 잃었으리라.’ 마음이 거기까지 간다.

 

| 지나온 시간 속을 다시 걸어본다

지진이 일어난 지 일주일 만에 돌아본 타멜 거리는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건물이 비스듬히 기울어 서로 맞닿아 있는 모습은 보았지만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건물은 보지 못했다. 지진이 일어나자 피해지역이 고향인 많은 사람들이 타멜을 떠나서 문을 연 가게나 식당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내부균열로 인해 사람이 묵을 수 있는 숙소가 드물었다. 마침 네팔사람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이 문을 열어 저녁을 먹었는데 종업원들이 다 고향으로 가버려서 딸과 둘이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이 식당주인도 문을 닫으려고 하다가 트레킹을 가는 사람들이 짐을 맡겨 놓아서 할 수 없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지진 때문에 식재료가 원활하게 공급이 되지 않아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을 다 해 줄 수가 없다고 해서 간단히 김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다가 디보체Diboche에서 만나 같은 숙소에 머문 청년 두 사람을 여기서도 만났다. 그들도 여기다 짐을 맡겼다고 한다. 가는 일정이 우리와 비슷해서 여러 번 인사를 나눈 친구들이다. 지진도 같은 곳에서 만났다. 트레킹을 마치고 인도를 거쳐 이집트 터키까지 수개월에 걸쳐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가이드와 포터 없이 에베레스트 트레킹에 도전한 용감한 젊은이들이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는 동안 어둠이 내리는 타멜 거리를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 속을 다시 걸어본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시작한지 5일째 되는 날 도착한 곳은 딩보체Dingboche였다. 마을 입구 좌측 능선에는 커다란 쵸르텐이 세워져 있고 여러 채의 숙소들이 단정히 자리 잡고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전날 디보체에서 만난 젊은 친구 둘이서 먼저 도착해 멀리서 손 인사를 한다.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오르는 동안 낯이 익은 외국인들과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 오늘 숙소인 쿰부 리조트Kumbu Resort에 여장을 풀었다. 여기는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 더 머무는 곳이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천천히 마을을 둘러본다. 해발 4,410미터에 위치한 딩보체는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밭에는 감자를 심는 여인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감자가 굵지 않아서인지 통감자를 그대로 심는다. 여기 감자가 맛이 좋다고 가이드가 귀띔한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으니 비록 크기는 작으나 맛은 뛰어날 거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그만 가게에 들러 이리저리 살펴보니 한국 신라면이 여기까지 진열되어 있다. 호불호를 떠나서 세계 곳곳 우리나라의 흔적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다. 대단한 것인가? 한 켤레 걸려있는 벙어리장갑을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어둠이 찾아들고 초승달이 서편 하늘에 걸려있다. 이때가 좋다. 지상의 풍경이 눈 덮인 설산과 어둠이 덮인 대지로 이원화되는 흑백의 시간, 수천 년을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오래된 풍경 속에 나를 던져 놓고 바라보는 일, 생각이 단순해진다. 분별심이 사라지고 지나온 나의 행적에 대한 평가가 온순해진다. ‘별거 아니다.’ 짧은 한마디로 모든 묵직한 것들을 해산시킨다. 살짝 고개만 들어도 북으로는 8,000미터급 로체Lhotse와 로체사르Lhptse Shar가 하늘에 맞닿아 있고 동으로는 히말라야 3대 미봉 중에 하나인 아마 다블람Ama Dablam이 눈앞에 있다. 남으로는 캉테가Kangtega, 탐셀크Thamserku, 콩데Kongde가 서쪽에는 박범신의 소설로 유명한 촐라체Cholatse와 타보체Taboche가 우뚝 서 있다. 초승달이 봉우리마다 빛을 뿌리며 서편으로 넘어간다. 이 또한 ‘별거 아니다.’ 생각을 안고 가볍게 잠자리에 든다.

 

| 가장 높은 히말라야의 바람으로 오시라

날씨가 쾌청하다.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 더 머물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 시간이 여유가 있다. 차를 마시고 모닝 똥, 쿤달리니 운동으로 몸을 푼다. 안도 풀고 바깥도 풀고, 짐을 운반하는 포터나 좁교도 오늘 하루 등에 멘 짐을 풀고 푹 쉬는 날이다. 좁교는 암컷 물소와 수컷 야크 사이에서 태어난 새로운 교배종이다. 야크는 해발 4,000미터 이상에서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지대에서는 짐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암컷 물소를 야크가 서식하는 4,000미터 고지대까지 끌고 와 교배시켜 태어난 종이 좁교다. 좁교는 물소와 야크의 장점을 지니고 태어나 먹이는 적게 먹으면서 체력은 강인하고 특히 고지대와 저지대에 상관없이 적응을 잘 해서 히말라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운송 수단이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코스이기 때문에 포터들이 부족해서 대부분 팀으로 움직이는 트레커들은 포터와 함께 좁교를 이용한다.

다섯 마리의 좁교를 이끌고 오는 좁교 주인이 좁교에게 먹일 아침을 준비하면서 눈이 마주치자 순하게 웃는다. 잠시 지켜보니 옥수수 가루를 물에 개어 건초와 함께 먹이는 것이 전부다. 몸무게가 500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육중한 이 동물의 먹이가 고작 옥수수 가루와 건초 두 가지라니 평소 나의 식탁을 생각해보니 부끄럽다. 공양게를 보면 몸이 마르지 않을 정도의 음식을 도업을 이루기 위해서 먹으라고 했는데 내 식생활을 살펴보니 질서가 너무 없다. 티베트의 동굴 수행자들처럼 어떤 거친 음식도 환경도 완벽하게 견뎌낼 수 있는 몸을 단련하는 것, 좁교가 나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오늘은 고소적응을 위해 딩보체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는 5,100미터 나가중 피크를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정이다. 셀파의 무덤들이 있는 고개에 오르니 사방의 설산들이 한층 눈부시게 다가선다. 멀리 세계 6위 봉인 마칼루Makalu도 보인다. 룽다가 겹겹이 걸려 있는 제일 전망 좋은 곳을 골라 노란 리본을 걸고 기원한다. ‘부디 심해의 어둠을 뚫고 가장 높은 히말라야의 바람으로 오시라. 자유롭게 비상하시라.’

히말라야에 올 때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들르는 곳마다 히말라야 하얀 봉우리가 잘 보이는 곳을 골라서 노란 리본을 걸어놓았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사원에, 전망 좋은 능선에 하나씩 리본을 달며 여기까지 올라왔다. 에베레스트가 제일 잘 보이는 칼라파타르에 산 자나 죽은 자나 함께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리본과 마음을 걸어놓고 내려오겠다는 것이 처음 출발할 때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국 칼라파타르에는 걸어놓고 오지 못했다.

 

| 그 품이 흔들릴 줄 아무도 몰랐다

두 시간쯤 오르다 오른쪽을 보니 절벽 아래 조그마한 곰빠가 아마 다블람Ama Dablam을 정면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러 차례 히말라야에 왔기 때문에 고소에는 적응이 되어서 혼자 곰빠를 들러보기로 했다. 어림잡아 길을 가늠해 곰빠에 도착해 살펴보니 비어있은 지가 꽤 오래 된 듯 문이 굳게 잠겨 있다. 나중에 가이드인 빠상에게 물어보니 평상시에는 비어있고 우기에 스님 한 분이 올라와서 일종식을 하면서 지낸단다. 편안히 앉아 아마 다블람을 바라보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차가운 바람 속에 햇살이 따갑게 얼굴에 와 닿는다.

‘어머니의 진주 목걸이’란 뜻을 지닌 아마 다블람은 안나푸르나의 마차푸차레, 알프스의 마터호른과 함께 세계 3대 미봉으로 불린다. 단순히 형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어머니의 품안 같은 따뜻한 기운이 서려있는 산, 저 산을 바라보며 깊게 침묵했을 수행자들, 전생의 인연이 있어 오늘 여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오늘 여기 온 인연으로 금생에 혹은 내생에라도 여기서 잠시 머물 수 있기를, 소박한 발원을 아마 다블람에게 건넨다.

야크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내일이면 다시 올라갈 길을 바라보니 문득 붓다의 행로가 떠오른다. 붓다가 되기 위해 올랐던 고행의 길과 붓다가 된 후에 중생 속으로 내려가 걸었던 고행의 길, 어느 길이 더 힘들었을까? 갑자기 진눈깨비가 내려 시야를 뿌옇게 가린다. 모든 봉우리들이 구름과 안개의 품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초모룽마Chomo Lungma-티베트어로 이 세계의 어머니 신神. 그 품이 흔들릴 줄 이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