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지 않게 모자라지 않게
몸이 가벼워지는 여름채소 - 애호박과 애호박만두
2014-09-01 불광출판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알맞은 거리란 어느 만큼일까. 멀어서 외롭고 그립다가도 가까우면 또 아옹다옹하는 것이 우리네 살림살이다. 그렇기에 관계맺음의 지혜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둘만의 거리감각을 찾아내는 일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만남을 위해서는 성큼 다가서야 할 때가 있다. 경희의료원 동서협진실 류재환(59) 교수가 그랬다.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과감히 의대에 편입했던 그는 양・한방 복수면허 의료인으로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간 거리를 좁히며 통합의료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영양의 균형, 그리고 즐거운 식탁을 건강의 필수요소로 꼽았다. 이달의 사찰음식은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건강식품’ 가운데 하나인 애호박으로 만든 애호박만두다. 류재환 교수와 제자들은 애호박만두의 담백함에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 세계가 주목하는 슈퍼 푸드
이만하면 스타급이라 할 만하다. 뉴욕타임즈 선정 ‘푸대접 받고 있지만 진가를 알아야 할 식품 11가지’, 타임지 선정 ‘10대 건강식품’, 식품과 인체노화 분야 권위자 스티븐 플랫 박사 선정 ‘14가지 슈퍼 푸드’. 세계적으로 그 효능이 공인된 호박 얘기다.
호박은 소화기능을 활성화시키면서 이뇨작용을 하기 때문에 부종 뿐만 아니라 해독과 소염에 특히 좋으며, 영양학적으로는 비타민A, C, E를 대량 함유하고 있다. 비타민A와 E는 항산화작용이 탁월하고 활성산소의 독성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해 암과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애호박 씨에 들어 있는 레시틴 성분은 치매를 막고 뇌를 활성화한다. 호박류 중에서도 씨까지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애호박만의 장점이다.
애호박은 임진왜란 이후 중국과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열린 지 7~10일이면 수확이 가능해 애기호박, 즉 애호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경작지가 습하지만 않으면 쉽게 기를 수 있고, 먹었을 때 소화하기 좋아 오래 앉아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즐겨 먹었다. 그래서 ‘승소僧蔬’라는 별칭으로 불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민간에 널리 퍼졌다.
애호박만두
재료
애호박 2개, 생표고버섯 2개, 양배추 약간,
간장1/2t, 소금 약간, 참기름 약간,
식용유 1t, 만두피 20개
만드는법
1. 애호박을 가로로 4등분하고 돌려깎기한 다음 채 썬다.(속은 빼고 단단한 부분만 쓰는 것이 먹기에 좋다.)
2. 양배추와 표고버섯은 얇게 채 썬다.
3. 애호박과 양배추를 살짝 소금에 절인 후 물기를 짜서 프라이팬에 덖는다.
4. 표고버섯에 간장과 참기름 양념을 한 다음 덖어낸다.
5. 3과 4에 소금, 참기름, 식용유를 넣고 버무려 소를 만든다.
(만두소에 식용유를 살짝 넣으면 익힌 후에도 촉촉한 만두소를 맛볼 수 있다.)
6. 1/2T 분량의 만두소를 넣고 만두피를 반으로 접어서 중앙 부분을 잡고 가장자리를 중앙으로 모아 네 모서리를 붙인다.
Tip_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애호박은 과육이 부드럽고 맛이 달아 오래 전부터 밥상에 올렸다.
6~8월에 나는 애호박은 잘랐을 때 단면에 과육이 배어나올 정도로 싱싱하다. 구입할 때는 연두색이면서 작고 윤기가 흐르는 것을 선택한다. 위아래 굵기가 일정하고 크기에 비해 무거운 것일수록 좋다. 얇게 썰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살짝 말리면 식감을 높이고 쉽게 물러지지 않는다.
| 승소僧蔬와 승소僧笑의 만남, 애호박만두
작년 여름, 인기 TV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일이 있다. 이때 절에서 함께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 애호박만두다. 예로부터 스님들이 반가워하던 별식인 만두는 철마다 다른 재료로 소를 만들어 사철 즐기는 음식이었다. 만두 빚는 날이면 모든 스님들이 둘러 앉아 웃음꽃을 피웠고, 공양시간 내내 스님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하여 국수와 함께‘승소僧笑’라고 불렸다.
애호박의 별칭 ‘승소僧笑’와 만두의 ‘승소僧笑’가 만난 애호박만두는 절집에서 가장 사랑 받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봄에는 취나물과 견과류를 넣고, 여름에는 애호박을, 가을에는 무와 배추를, 겨울에는 김치를 넣어 만두를 빚는다. 같은 만두라도 계절에 따라 먹는 방법이 달라지는데 겨울에는 주로 장국이나 떡국에 넣어 뜨끈한 국물음식으로 먹고, 여름에는 찐만두로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만두를 해먹는 전통은 날씨가 추운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겨울이면 만두를 채반에 담아 곳간에 걸어두고 먹었다. 설날에는 만둣국을 끓여 차례상에 올렸다. 만두소가 상하기 쉬운 온화한 날씨의 남부 지방에선 이런 전통을 찾아보기 어렵다. 냉장문화가 발달한 현대에는 만두가 사찰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해먹는 인기음식이 되었다.
| 적게, 즐겁게 먹어야 건강하다
애호박만두가 승소僧蔬와 승소僧笑의 만남이라면, 최근 의료계의 화두는 ‘동서東西의 만남’이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장점을 어떻게 통합해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을 것인가? 오랫동안 의료인들에게 이원화된 동서의학은 풀리지 않는 갈증이었다. 그 해갈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가 바로 경희의료원 동서협진실 류재환 교수다.
한의학과 재학 당시, 그는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의 조화로운 융합의 패러다임을 꿈꾸며 의과대학에 편입해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통합의학의 길에 들어섰다. 대한동서의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의료인은 하나의 의료기관만을 개설할 수 있었던 종전에서, 양·한방 복수면허자는 의료기관 동시개설이 가능하도록 의료법 개정의 초석을 마련했다. 조계종 전국병원불자연합회 4·5대 회장으로 국내·외 의료봉사 현장에 발 벗고 나서는 독실한 불자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위해 종로 부암동 한 갤러리에서 만난 류재환 교수의 첫마디는 이랬다.
“과잉의 시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2/3가 질병을 가지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에너지 섭취 과잉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져요. 부적절한 식생활이 원인이죠.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질병을 한 가지 이상 앓는 대사증후군 환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이 적어지고 신진대사량도 줄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는 자연적으로 감소해요. 사실 이건 문명 발달로 활동량이 적어진 현대인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소식하지 않으면 병이 올 수밖에 없어요.”
건강하려면 에너지 섭취량과 소비량의 균형이 중요한데 현대인, 특히 노령일수록 소식少食이 더욱 중요하다는 요지였다. 그는 과식과 폭식을 만병의 근원으로 꼽았다. 과다한 당분이 체내에 들어오게 되면 혈당이 상승해 기분이 좋다고 느끼게 해주지만, 혈당이 빠르게 떨어지고 나면 다시 단 것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 문제라는 것이다.
류재환 교수는 소식少食을 위해 사찰음식으로 차린 담백한 밥상을 권했다. 사찰음식에는 식물성 식이섬유가 많아 장내에서 부피가 증가하므로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하고, 장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불필요한 에너지와 노폐물 배출을 돕기 때문이다. 영양의 균형을 위해 단백질과 철분이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 쓴다면 사찰음식은 아주 이상적인 식단이 될 수 있다는 것. 육류의 살코기에 많은 철분은 과잉 시 감염과 발암의 원인이 되며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유발하지만, 부족할 경우에도 인지장애와 신경계의 퇴행성 변화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철분이 많은 식품으로는 김, 미역, 다시마, 파래 등의 해조류와 시금치, 쑥, 콩, 강낭콩, 깨, 팥, 잣, 버섯 그리고 호박이 있다.
“행복지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조언해요.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먹으라.’ 우리 몸은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아침 6시 전후 잠에서 깰 때 교감신경이 서서히 자극되기 시작하죠. 심장은 펌프질을 하고 혈관은 수축됩니다. 몸은 긴장 상태에 들어갑니다. 반면에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식사는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요. 혈관이 이완되고 호흡은 편안해지죠. 이것은 명상할 때 나오는 알파파 상태와도 같습니다. 단, 부교감신경 항진 시에는 무기력해질 수 있으니 과식을 피하는 것은 자율신경 균형에도 필수조건입니다.”
소식笑食의 미덕에 대한 류재환 교수의 설명은 인체 내부를 눈앞에 그리듯 구체적이다. 그와 제자들은 끊임없는 열정으로 동서의학의 통합을 통해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사찰음식과 현대과학의 만남은 어떨까. 사찰음식이 그 효용성을 객관적으로 검증 받아 폭넓은 대중화의 길이 열린다면 더욱 많은 이들이 사찰음식으로 차려진 건강한 식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넘치지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차려진 식탁 말이다. 사찰음식과 현대과학 사이의 거리가 성큼 가까워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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