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참회가 필요하다

특집/새로운 희망의 출발점, 참회(懺悔)

2011-04-26     불광출판사
생명에 대한 참회
생명이란 무엇인가? 기나긴 우주의 역사 속에, 그토록 긴 시간을 담고 지금이 순간 꽃 핀 존재다. 이 꽃은 긴 시간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지금이 순간에도 주위의 다른 뭇 존재와 관계를 맺으면서 발현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성을 다시 말한다면 연기 실상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그토록 강조한 생명존중의 의미는 연기 실상에 대한 깨어있음이며, 관계성에 대한 철저한 통찰로부터 온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크게 눈에 띄는 상황은 국내 구제역 유행과 일본 지진 및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이다. 이렇게 일상적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사회재난 사태는 우리에게 아주 쉽게 눈에 드러나는 상황에서조차 많은 사람과 동물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으며,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불행히도 사회재난의 많은 부분은 인간 중심의 경제적 시각만으로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우리들의 욕망에 의한다. 생태 파괴와 양극화로 나타나는 욕망의 시대에 과연 우리들의 참회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는 분명하다.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적 경쟁만이 우리 사회의 삶의 기준으로 되어 있음을 마음으로부터 참회해야 하는 상황이 이 사회의 모습이다.

헛된 죽음에 대한 참회
또한 우리 사회가 참회할 것으로 죽음이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마무리다. 앞선 수많은 생명과 선조들의 사라짐이 바탕이 되어서 오늘의 다양하고 조화로운 생태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
죽음이 있어야 생이 빛나건만, 죽음을 외면하면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원리를 벗어나려고 애쓰는 인간이란 존재는 무조건 죽음으로부터 도망가려고만 한다. 생각해보면 죽음에도 의미 있는 죽음, 자연스런 죽음, 그리고 헛된 죽음이 있다. 물론 어느 한 죽음도 무의미한 것이 있겠는가마는, 그중에는 진정 무의미하고 헛된 죽음이 있다. 우리가 구제역과 해일에 의한 많은 생명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은, 이러한 죽음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무의미하고 헛된 죽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의 근대적 시각에 물든 우리 사회는 생에 대하여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죽음을 피해야 할 그 무엇으로만 본다. 그 바탕에는 자연스런 죽음마저 거부하면서 각종 보신제와 동물의 장기마저 사용해서라도 오래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있다. 몸에 좋다는 이유로 특정 야생동물을 씨가 마르도록 죽이고, 중환자실에서 약물에 젖어 아무 의미도 없는 목숨만을 연장시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을 위하여, 너와 나를 위하여, 또 나를 위하여 죽음을 담담하고 떳떳하게 맞이하는 자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존중의 삶이다. 생명존중과 생명집착이 다름을 모르고 생에 대한 집착이 마치 생명존중인양 착각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무엇보다 참회가 너무도 절실히 필요하다.
이처럼 ‘나’라는 자기만의 욕망에 빠져 집착을 빚어내는 우리 사회의 욕망을 참회해야 한다. 결국 진정한 방생(放生)이란 죽을 동물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무명으로 인해 죽어 있는 자신을 깨우침을 통해 대자유를 얻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속화된 사회 집단의 참회
한편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사회 집단의 참회도 필요하다. 참회는 ‘나’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상기할 때, 불교계 내부의 참회는 반드시 필요하다. 종교 역시 어차피 인간들이 모여 만든 집단이니 불교만을 따로 떼어 탓할 수는 없지만, 세속의 탐진치(貪瞋癡)가 그대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종교 집단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더욱 은밀하게 감춰진 종단 내의 부끄러운 행태가 있다. 세속 집단보다 더 심한 권력과 이권에 대한 집착은 우리에게 참회를 요구한다. 국민을 외면하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아부하며 존재하는 종단은 결국 불교를 죽음으로 이끌 뿐이다.
종단의 이러한 행태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태 파괴, 생명존중을 촉구한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사회에서 소외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절망에 대해 같은 사회의 한 구성 집단으로서 보거나 듣고자 하지 않는 것이고,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에 침묵하는 모습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종단의 모습에 대하여 국민들은 깨어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종단의 모습을 보며, 불교신자로서 종단을 대신해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참회를 드리게 된다.

개인의 참회
이제 개인으로서 참회가 필요하다. 보다 더 내 주위의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했음을 참회한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손을 한 번 잡아주고, 옆에서 그들의 작은 목소리를 들어주거나 아무 말 없이 그저 꼭 안아만 주었더라도 충분할 것을,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그들의 절망을 외면해오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이처럼 동시대인들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을 참회한다.
또한 다양함으로 이루어진 이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나의 말과 행동으로 마음이 다치고 감정이 상한 모든 이들에게 참회한다. 인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임에도 불구하고 비난이 되어 듣는 이의 마음이 괴로워졌다면, 모두 나의 허물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나의 존재를 참회한다. 이 세상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에 의존해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이 세상에 빚을 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지금까지 먹고 살아왔고, 옷 한번 만든 적이 없는데 잘 입고 살아왔다. 과연 나는 내 주위에 어느 정도 빚을 갚고 살아가고 있는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이토록 넘치도록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다른 존재에 대하여 참회할 뿐이다 .
모든 것은 연기적 인연 속에 마치 넓은 바다에서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것과 같으니 무풍기랑(無風起浪)이라. 진정 마음으로부터 참회를 드리면서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생명, 생명은 자유이자 참회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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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 서울대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에서 생명약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대 의과대학 박사 후 연구원,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강사, 보스턴대 의과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수의학과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생명과학과 선』, 『불교생명윤리 이론과 실천』(공저),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공저), 『나, 버릴 것인가 찾을 것인가』(공저), 『붓다와 다윈이 만난다면』(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