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채식의 덕향(德香)이 만리(萬里)를 감쌀 때
특별기고/구제역 진혼곡(씻김굿)
인간우월주의에서 빚어진 잔인무도함
겨우내 얼어붙었던 메마른 대지에 새봄을 알리는 단비가 오랜만에 촉촉이 내린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혹한도 밀려드는 봄기운 앞에선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게 자연의 법칙인가 보다. 다들 어릴 적 문고리에 손이 쩍쩍 들러붙던 추억을 되살리는 맹추위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마음 한켠에는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은 대재앙의 위기의식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과 기대를 품음직도 했다.
그런 와중에 난데없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맹위를 떨쳐 수백만 마리의가축이 때 아닌 떼죽음을 당하는 수난이 펼쳐졌다. 몇 년 전 구제역 파동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막대한 재앙이다. 말이 좋아서 ‘살처분’이지, 문자 그대로 끔찍한 ‘생매장’이다. 그 혹한에 대규모 인력과 중장비를 동원해 커다란 쇠삽차로 언 땅을 파고 멀쩡한 소・돼지와 닭・오리를 산 채로 묻은 것이다. 오로지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지난번에 파묻은 가축의 몸에서 나온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킨 경험을 기억하는 영리한 인간들은, 이번에는 아예 방수용 비닐을 깔고 덮어 가면서 묻은 모양이다. 이제 총명한 사람들은 짐승을 집단 생매장한 무덤에 구멍을 뚫고 관을 박아 침출수를 뽑아 올린 다음, 가축분뇨와 마찬가지로 하수 처리해 인류의 안전과 위생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한다. 역시 신출귀몰한 천재들의 두뇌다.
불현듯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에 도취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특히 수백만 유태인을 집단 학살한 히틀러의 나치즘이 떠오른다. 비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을 처넣고 독가스로 생매장한 만행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종(種)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우월주의에서 빚어지는 동물의 집단사육과 도살 그리고 구제역・조류독감으로 인한 생매장은, 민족우월주의에서 빚어진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비롯한 수많은 소수민족 학살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 끔찍한 잔인무도함은.
신의 천지만물창조론과 인간의 만물영장론이 함께 어우러져 인류의 자연정복과 만물지배를 정당화하는 종교철학에 인류가 정복당하고 지배당하면서, 이 모든 끔찍한 잔인무도함이 세계 도처에서 수시로 끊임없이 확대되어 온 것이리라. 그토록 아름다운 인본주의(Humanism)도 ‘배타적(Exclusive)’인 수식어가 붙으면 완전히 딴판이 된다. 인류에겐 천당이 동물에겐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천당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영리한 놈이 제 꾀에 제가 넘어가니, 머지않아 자업자득과 자승자박이 뒤따라 이어진다.
근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사람도 양심은 있는지, 집단 생매장에 나선 사람 중에는 정신적 후유증을 심하게 앓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자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 사람들도 완전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평소 고기를 먹고 살 텐데, 산 짐승을 생매장하는 걸 직접 보고 거들면서 양심의 가책과 정신적 충격을 제법 심하게 받은 모양이다. 특히 재작년 워낭소리를 보면서 심금이 울리고 진한 감동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큰 눈망울의 선하디 선한 영물(靈物)이 산 채로 파묻히는 모습을 볼 때 어떠했겠는가?
정신과 치료 소식을 듣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 따라 며칠간 잠도 못 잔 채 광주에 투입되어 선량한 시민에 총기를 발사하여 집단학살을 자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공수대원들이 겪었을 정신적 충격과 양심의 가책이 안쓰럽기만 하다.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은 특별법으로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5·18묘역의 국립묘지 승격 등으로 명예도 회복하였다. 하지만 군대라는 특수성으로 작전에 강제 동원된 공수대원들이 강요된 가해자로서 겪고 당해야만 하는 정신적 양심상의 피해는, 그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거나 풀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불공평인가?
몇 년 전에야 비로소 생각나 일간신문에 기고는 하였으나, 이미 나팔 불고 원님행차가 지난 뒤일까? 10여 년 전쯤 김대중 대통령 때 한참 광주시민혁명의 명예회복을 논의하고 진행할 때, 이 생각이 떠올라 제안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아쉬움만 마음속에 감돈다.
인간의 탐욕에 울리는 경종
가축 생매장을 전후한 모든 비극은, 알고 보면 자기 입맛과 제 몸 건강만을 첫째로 여기는 인간의 이기적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따라서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인한 수백만 가축의 생매장에는, 고기를 즐겨 먹고 찾는 우리들의 책임도 크다. 어쩌면 구제역과 조류독감 자체가 인류의 식탐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는 자연계 섭리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집단사육에 시달리다 도살장에 끌려간 수천만억 중생의 원한이 단단히 맺혀, 마침내 삼한사온도 없는 혹한을 몰고 와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맹위를 떨친 건 아닐까? 속담에 한 아낙이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 한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一婦含怨, 六月飛霜]고 하는데, 그토록 엄청난 중생이 학살을 당하니 오죽하랴?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지닌다고 믿는 불교에선 살생을 첫째 금계(禁戒)로 지키므로, 참된 불자라면 거의가 살생의 결과로 얻어지는 중생의 고기를 먹는 걸 자제해야 하리라. 더러 건강과 체면 심지어 동사섭의 중생제도라는 미명 아래 고기를 먹는 불교수행자들이 적지 않은 현실은, 불교의 위상과 교세를 실추시키는 주요 원인일 뿐만 아니라 구제역과 조류독감, 광우병의 공업(共業)을 초래한 먼 인연이리라. 청정한 채식의 덕향(德香)이 만리(萬里)를 감쌀 때, 동물도 사람도 괴질의 공포와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바라춤이라도 추어야 할까? 혹한 뒤 새봄을 맞는 굿판에 촉촉한 단비가 주룩주룩 쏟아진다. 나만의 감정이입일까? 빗소리는 생매장 당한 중생의 흐느낌도 같고, 원혼을 어루만지는 씻김굿이나 진혼곡처럼 느껴진다. 빗물은 중생의 피눈물이리라. 어쩌면 중생의 원혼을 씻어주는 대비수(大悲水)나 팔공덕수(八功德水)일까? 억울하게 생매장 당해서조차 잔인한 인간한테 복수는커녕 감로(甘露)로 축복하다니, 짐승의 자비심이 이토록 크구나.
일경사심(一境四心) 또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법문이 있다. 똑같은 물이라도, 사람이 보면 물이지만, 하늘이 보면 장엄한 보배유리 대지고, 아귀한테는 흥건한 피고름이며, 물고기한테는 집이란다. 감로처럼 흠뻑 내리는 봄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느껴지리라. 생매장당한 가축의 침출수가 넘쳐 나올 것을 염려하는 당국자들의 마음에는 이 비가 무엇으로 여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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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 1960년 전부 부안 곰소 출생으로 법명은 보적(寶積)이다. 서울대학교 법학박사(중문학 부전공)이며, 국립대만대학 법률학연구소 연구생(3년)을 거쳐 학술진흥재단 박사 후 연수생(Post-Doc)을 지냈다. 저서로 『단박에 윤회를 끊는 가르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