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과 세 아이들의 봄맞이

지혜의 향기 / 청소

2010-05-26     관리자
결혼 전의 내 방은 그런대로 깨끗했다. 엄마는 나에게 청소하란 말을 하지 않았고 나도 엄마가 청소하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엄마는 마치 우렁각시 마냥 식구들이 외출했을 때 내 방이며 거실, 부엌을 혼자서 정리하고 청소하시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원래 집은 그런 줄 알았다.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있는 줄 알았고 집은 원래 깔끔한 줄 알았다.
결혼하고 나서 우렁각시가 없는 나의 집은 달랐다. 구석구석 먼지는 왜 그리 쌓여있는지, 부엌 바닥에는 뭔가가 떨어져 있고 화장실에서는 냄새도 났다. 게다가 세 명의 아이들은 집을 항상 어지르기만 했다. 집은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했지만 맞벌이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집에 신경 쓸 시간은 항상 모자라게 느껴져, 그냥 청소기 한 번 돌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애가 셋인 집이 이 정도는 당연한 거야. 애들 밥이랑 간식 챙겨 먹이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구’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고 변명하니 내 맘은 그런 대로 편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니 집이 난장판이었다. 현관 앞에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막내의 겉옷이랑 가방이 뒹굴고 있었고, 거실에는 책이며 장난감까지 널려 있었다. 애들이 점심 때 먹은 음식들은 그릇 안에 바짝 말라있었다. 방학 중이라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왔지만, 화가 너무 난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일하러 나갔다 오면, 집을 좀 치워놔야지. 내가 어려운 부탁했어? 그냥 자기 물건만 제자리에다 놓으라고! 그리고 너! 나이가 몇 살이야? 자기가 먹은 그릇 정도는 설거지해야 하는 거 아냐?”
애들은 슬슬 엄마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저녁시간이라 애들이 배고플 것을 알지만 일부러 청소를 다 하고 나서야 늦은 저녁을 해주었다.
“정임아, 여기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사이트야. 너도 들어가 봐. 너무 좋아. 나도 이번에 이사 가면서 여기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거든.” 어느 날 사무실에 놀러 온 명진 언니가 자기가 즐겨 찾는다는 인터넷 카페 한 곳을 소개 시켜주었다. 언니가 소개해준 인터넷 카페는 ‘살림을 잘하는 여성들’의 모임이었다. 우리 집 소개란을 클릭하자 인테리어 잡지에나 등장할 법한 사진들이 쭉 나왔다. 내가 원하던 홈, 스위트 홈이었다. 사진 속의 거실, 서재, 부엌은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왔고 가구들이며, 소품들도 하나같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넋 놓고 한참을 보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음, 저렇게 하고 살려면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아야겠지? 애들 세 명에? 저렇게 꾸미고 살려면 돈도 많이 들 것 같은데…. 언니, 난 그냥 지금처럼 살아야겠다.” 언니랑 웃으며 그렇게 결론 내렸다.
그 날 사무실에서 조금 일찍 퇴근을 했다. 평소보다 집에 일찍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막내와 큰아들은 거실에서 장난감과 책을 정리하고 있었고, 큰딸은 점심 때 못한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무장갑을 끼고 실실 웃으며 현관으로 나왔다. 자기네들 나름대로 엄마 퇴근시간 맞춰서 집안을 치우는 중이었는데 엄마가 일찍 와서 당황한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들도 학교 다니느라 학원 다니느라 힘들 텐데,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살림하면서 애들도 돌보고, 직장까지 다니느라 너무 힘이 든다고 생각했다. 애들 얼굴을 보면 간식은 무엇을 주고 저녁 메뉴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고, 방과 거실을 보면 청소기를 돌려야 할 것 같았고, 가구를 보면 ‘먼지를 닦아야 할 텐데’라며 생각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고 받으면서 힘들어 한 것 같다.
결혼 전에 그랬던 것처럼 친정엄마가 다 해주시고 나는 편안하게 내 할 일을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이제는 내 아이들이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힘들지 말라고 어설프지만 도와주는 모습이 예쁘기도 했다. 아이들이 청소한 곳은 집만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나 보다. 항상 ‘~해야 하는데’ 하면서 조급해 하고 나만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속상했던 마음을 우리 아이들이 청소해 준 것 같다.
이제 봄이다. 화분도 몇 개 준비하고 카펫도 치우며 봄맞이 준비를 해야겠다. 그러면서 애들에게 작은 꽃 화분이라도 하나 선물하면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해야겠다. 이번 봄에는 집안 청소에만 얽매이지 않고, 가슴 속에 쌓여있는 속상하고 기분 나쁜 마음들도 다 툭툭 털어 청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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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임 ː 올해 결혼 15주년을 맞는 중견 주부. 중학생 아이 2명과 이번에 초등학교 입학한 예쁜 막둥이까지 세 명의 아이를 둔 엄마이며, 뒤늦게 직장을 다니며 살림도 하는 가끔은 슈퍼우먼이 되고픈 ‘워킹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