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일산(日傘)

청소년 불교강좌

2009-11-12     관리자

많은 경전과 법문을 통해서 불교를 알게 되고 또 많은 것을 얻어 슬기로운 삶의 지혜로 삼는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는 한문 경전과 대승 경전이 매우 난삽하고 부담이 되어 그 진의를 깨닫기가 어렵다. 이에 이른바 초기경전이라 일컫는 아함경에 있는 짤막한 세존의 법문을 통해 현실과 현대인의 갈들을 관조해 보고자 한다. 문답 형식의 게송 가운데 번개처럼 스치는 인정과 지혜가 있다.

  입으로 갖가지 주문 외우나
  안에는 먼지 가득하고
  밖에는 거짓과 속임수 넘쳐 있네.

  사람은 태생으로 청정한 것 아니니
  혹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라도
  스스로 분발하여
  굽히지 않고 꾸준히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자.
  마침내 최고의 고요를 이루리. 
  부라만이여, 이러히 알라.


  부라만의 교만한 권위

 세존께서 제타숲의 아나타핀디카에 계시던 어느날, 찾아온 부라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부라만은 매우 지체가 높은 사람이었으며, 세존께서 「부처」가 되시었으며 귀의하는 제자와 일반신도가 날로 늘고 있다는 말을 듣고,「이 세상에 부라만을 제쳐두고 더 청정한 사람이란 있을수 없다. 부라만은 신의 후예로서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배심(賠審)하는 신성물가침의 존재이거늘, 부라만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고 짓밟다니…… 이는 신에 대한 모독이며 도전이다. 내 마땅히 응징하리라……」고 단단히 벼르고, 황금 일산에 황금 굴레로 치장하여 위의를 갖추고 위엄을 떨치며 세존앞에 이르러 다음같이 교만하게 말했습니다.

『부라만이 행하는 것 청정하지 않음이 없으나 크샤트리아는 고행을 닦아도 청정에 이르지 못하는 법, 세가지 경전에 통한 부라만만이 곧 청정 하리니, 다른 누가 청정하랴.』

 그의 말은 서슬이 퍼렇게 서 있었습니다. 그는 세존이 크샤트리아의 출신인 주제에 감히「신의 후예」인 부라만을 능가하려고 하다니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니 일찌감치 물러가라는 호령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태생인 부라만이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신성이니 청정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부라만이라는 절대적인 계급을 빙자해서, 온갖 수탈과 비행을 자행하면서도 모두 신의 이름으로 옹호되었고, 크샤트리아를 비롯한 모든 계급의 사람들을 발 아래 내려다 보면서 세속의 온갖 향략을 즐기는 일이나, 비인도적인 처사마저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크샤트리아를 비롯한 그 아래 계급의 원성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감히 어찌할 수 없어 눌려지낼 수 밖에 없었을 때, 세존께서 평등과 인권을 선언하셨으니 부라만들의 당혹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진정 청정한 사람

 세존께서는, 주문을 외우고 제를 지내는 그 행위만으로는 결코 청정한 사람이랄 수 없으며, 부라만으로 태어났더라도 마음이 맑지 못하고 허위와 기만에 가득차 있으면 이는 부라만이라 할 수 없다고 단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라만이여, 이러히 알라」고 하시며 다음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청정한 길과
  위없는 청정을 알지 못하고
  달리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
  그는 마침내 청정할 때가 없으리.
  명(明)과 행(行)을 고루 갖춘 자
  그를 청정하다 하느니.


 부라만들은 그들의 경전인 베다를 입으로 외고 독송하면 그것이 명이고, 정해진 형식과 절차에 따라 제사를 지내면 그것이 곧 행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설하신 명 · 행은 그런 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청정에서 오는 맑은 지혜와 악을 멀리하고 계를 받아 지닌 실천이야말로 참다운 명 · 행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피상적이며 관념적인 부라만들의 사고와 참다움을 추구하는 세ㅔ존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짓고 선행을 닦지 않았더라도 죽은 뒤에 부라만들이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해주면 그죄많은 사람도 천상에 난다고 믿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물에 가라앉은 기름병은 아무리 기도를 해도 떠오르지 않으며, 물 위에 뜬 기름은 아무리 기도를 해도 가라앉지 않듯이, 평소 선행을 닦은 사람을 두고 부라만을 믿지 않았으니 지옥에 떨어지라고 기도를 한다고 천상에 날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지겠느냐? 또 악행만 해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을 두고 부라만이 아무리 천상에 나라고 기도를 해도 천상에 날 수는 없다」고 하시었습니다.

 " 청정한 길은 팔정도를 실천 수행하고 탐 · 진 · 치 삼독을 여의는 데 있습니다."

 
 우주 만물이 모두 인연에 따라 그 과가 있게 마련인데 그런 피상적인 관념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동시에, 비록 비천한 태생이라도 스스로 노력하고 정진한다면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고다마시여, 청정한 길과 위없는 청정을 말씀하십니까? 어떤 것이 청정한 길이며, 어떤 것을 위없는 청정이라 합니까?』

  8 가지의 바른 길

 서슬이 퍼렇던 부라만이, 조용히 타이르시는 세존의 말씀을 듣고, 흥분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져서 부라만이라는 권위와 교만을 굽히고만 것입니다. 자신의 지체를 생각한다면 세존께 머리를 숙이고 법을 청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부라만에게는 그만한 지성(知性)은 있었던 것입니다.

「바른 소견이 청정한 길이오. 바른 소견을 많이 닦고 익히면 탐욕을 끊고 성냄과 어리석음도 끊을 수 있게 되오. 부라만이라도, 탐진치 3독을 끊어 번뇌에서 벗어나면 이를 위없는 청정이라 하오」하고 청전한 길이란 곧 8가지의 바른 길ㅡ 팔정도(八正道)ㅡ임을 세존께서는 설해 주시었습니다.

 첫째 : 바른 견해(正見)ㅡ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공정한 견해를 말합니다. 나를 위주로 한 주관적인 견해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중도(中道)에 입각한 견해를 말합니다. 말로는 쉽고 간단하지만 이는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일을 분별함에 있어 정견에서 벗어나지 않는 다면 대립도 원망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불편, 부당하지 않고 공정 할 것입니다.
 둘째 : 바른 생각 <正思惟>
 세째 : 바른 말 <正語>
 네째 : 바른행 <正業>
 다섯째 : 바른 생활 <正命>
 여섯째 : 바른 노력 <正精進>
 일곱째 : 바른 정신 <正念>
 여덟째 : 바른 마음의 안정 <正定>

 이 여덟 가지를 실천 수행하는 것이 청정한 길이며, 이 수행을 통해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ㅡ 3독이 가시면 그것이 곧 위없는 청정이라고 한다는 세존의 말씀을 다 듣고난 부라만은 세존께 공손히 예배하고 그 가르침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 부라만이 위의를 갖추기 위해 바치고 왔던 황금 일산(日傘)은 부라만들의 허식(虛飾)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황금 굴레는 신의 후예라는 교만의 사슬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여래(如來) 상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습니다. 반면에 보살상에는 관(冠)도 있고, 영락도 있고 갖가지 장엄<장식>이 있습니다.

 아나타핀디카에 앉아 계신 세존은 아무런 장식이 없었고, 부라만은 황금의 일산, 황금의 굴레가 있었습니다. 매우 뜻있고 흥미로운 대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은 흔히 부라만처럼 어떤 일의 본질을 잊고 그 본질을 이루는 외형적인 형식에 매달려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다가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겉치장 없는 세존의 몸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은 물론 주변의 친구,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겉치레를 잘 한 사람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겉치레를 잘 한 사람이 모두 훌륭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모든 사람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과시하는 방법으로 겉치장을 하기가 일쑤라는 뜻입니다.

 산골짜기의 작은 냇물 흐르는 소리는 퍽 요란합니다. 그러나 큰 강일수록 소리가 없습니다. 작은 냇물은 흙 한 삽으로도 물길을 막을 수 있지만 큰 강물은 어마어마한 댐 이라야 그 물길을 막을 수 있듯이, 바르게 수행한 사람은 결코 겉치레가 요란히자 않습니다. 말수도 적습니다. 아는 체 하지도 않습니다. 주관이 뚜렷해서 남의 말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언행이 신중하고 무겁습니다. 바다는사방에서 흘러 들어오는 온갖 구정물을 다 받아 들여 똑같이 짠맛을 내는 바닷물로 만듭니다. 결코 차별하지 않습니다. 등급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다 속의 모든 생물들에게 걸맞는 영양을 제공하고 키워줍니다. 가없는 자비입니다.

 인간은 흔히 앞의 부라만처럼 어떤 일의 본질을 잊고 그 본질을 이루는 외형적인 형식에 매달려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다가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인간이 모여 사는 집단 ㅡ 사회 ㅡ 이 커지고 다양해질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욱 커집니다.

 서당식 교육은 비록 그 학문이 다양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이었는지는 몰라도 궁극의 목적인 교육의 성과는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이른 바 현대식 교육은 그 내용도 다양하고 교육 기술도 발전해서 시청각을 통한 과학적인 교육이기는 하지만 교육의 본질인 인간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져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 교교입학을 위한 교육이 되고 만 것 같습니다. 그래서 10대들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학문, 예술, 가정교육, 사회제도 등이 모두 황금 일산, 황금 굴레에 매달려 있습니다. 요 몇 년 사이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른바 뿌리 찾고, 우리 것을 알자는 풍조도 그 본뜻은 매우 바람직하나, 역시 그 본질인 선조들의 맑고 곧은 얼을 찾는 일보다는 향락 위주의 몸짓, 소리내기에 더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제 40년과 광복 후의 40년 동안 한 세기 가까이 단절되었던 옛어른들의 얼을 되찾아 단절을 메꾸고 보다 차원높은 문화를 재건하려는 참뜻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겉치레에 치우치면 알맹이를 잃게 됩니다. 부디 황금 일산을 벗어 던지고 황금 굴레에서 헤어나야 합니다.

 세존의 몸에는 아무 겉치장도 없지만 온 인류가 그 앞에 오체투지합니다. 청소년 여러분, 황금 일산 앞에 오체투지할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 또 있어서도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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潘 泳 圭   · 1929년 서울 출생  · 불교문서포교회 대표  · 젊은 부루나들의 모임 대표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