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어디 꽃뿐이랴
빛의 샘/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 새삼스럽게 봄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남들이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하는 일을 가지고 혼자서 떠벌이는 격인지도 모른다.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이란 것은 마음으로 다가가서 서로 교통하는 것인데, 요즘 우리들에게 그러한 정서적 여유가 남아 있는지 먼저 내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고 싶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여유 없는 현대생활이라고 하더라도 새봄은 또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는 남녘의 봄소식을 앞 다투어 전할 것이다. 또는 이 같은 상투적인 봄소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에서 봄옷을 차려입은 여인네들의 거리 풍경을 담아 보도하면서 우리들의 무감각해진 봄맞이 정서를 더욱 무뎌지게 부채질할 것이다. 해마다 거듭되는 이런 연례행사와도 같은 봄소식에 나는 식상할 대로 식상해 있다. 봄이 어디 반드시 꽃이나 옷차림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우리가 지니고 있는 봄의 추억 가운데는 실로 정감 넘치는 수많은 봄들이 있다. 한데 왜 이리도 획일적이고 비정서적인 봄소식으로 우리들의 정서를 옭아매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계절이 바뀌는 것이 대단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하지만 봄은 해가 바뀌어서 처음 맞는 ‘시작의 계절’이다. 우리의 의식이나 생활양식 속에는 이 시작의 의미가 곳곳에 스며있기도 하다. 오랜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호흡해 보는 대기의 신선함처럼 새봄은 언제나 인고(忍苦)와 용기, 기쁨과 희망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따라서 나는 올해의 봄맞이가 단순한 ‘꽃소식’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또 내 자신의 마음과 눈이 꽃에만 머물지 않고 더 넓은 봄의 세계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봄은 진정 내 마음으로부터 움솟아나야 한다. 그래서 우리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봄소식이 있다면 우리는 참다운 새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기분 좋은 봄소식 하나를 접했다. 그것은 어느 기업체가 해마다 하고 있는 신년 광고 중의 하나를 보고서 얻은 감동이었다.
신년 광고라는 건 으레 그 기업의 비전이나 공익성 캠페인을 내세워 새해 인사를 하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이 기업의 광고는 그 틀을 깨고 이 봄에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만한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큰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광고는 백범 김구 선생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런 광고 기법이 전혀 새로운 건 아니다. 여러 기업이 이런 기법을 쓴 적도 있고, 문화부가 매달 역사의 인물을 선정해서 ’이달의 문화인물‘이라는 국민적 문화행사를 벌여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광고는 그런 류와는 크게 차별 된다. 우선 이 광고는 종래의 역사적 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근엄한 표정과는 거리가 멀다. 인자한 아버지처럼, 또는 다정스런 할아버지처럼 백범 선생이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인 것이다. 우리가 화석화(化石化)시켜 버린 역사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친숙한 인물로 그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서 “우리나라가 ‘문화의 힘’을 키워나가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는 백범 선생의 소담하고도 간절한 염원이 실려 있다.
나는 백범 선생의 이 말씀을 ‘봄의 언어’로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내 주의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 뜻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봄이 되면 팔을 걷어붙이고 말끔히 집안청소를 하듯이 새봄에는 이러한 문화적 공감대를 담은 ‘봄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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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래 님은 동국대 국문과를 나와 현재 편집대행사 너른터 대표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