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을 부처로 모시자

권두수상

2009-05-15     관리자

세태가 너무도 뒤숭숭하다. 지난해는 범람하는 강 · 절도사건과 폭력의 난무로 「범죄와의 전쟁」까지 선포 되더니 올해는 새해 벽두부터 국회의원의 뇌물외유 · 수서(水西)택지분양 비리사건 등이 터져 중생들의 살맛을 떨어뜨렸다.

나라 밖에서는 세계 최첨단 무기가 경연하는 걸프전쟁이 일어나 먼 나라 일이지만 우리나라도 군 의료진과 수송단을 파견, 전쟁에 개입했고 전쟁 여파가 심리적인 위축을 느끼게 해 일상생활에 신명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새해를 맞을 때 마다 비록 뜻한 바대로 성취하진 못하더라도 ‘올해는 좀 나아지려니’ 하는 희망을 갖고 밝은 삶의 발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불행히도 올해엔 이런 희망조차 갖기가 어려운 스산한 기분이었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상서롭지 못한 새해벽두였지만 그래도 봄이 오는 저 깊은 계곡 산사(山寺) 옆의 여울물 소리가 귀에 가까이 다가온다.
이제 산사 스님들의 방한용 누비 염의(染衣)도 가벼운 봄옷으로 바뀌고 한겨울 동안 정진하던 동안거(冬安居) 참선수행도 정월 보름날 해제됐다. 겨울 석달 동안 닦은 수행의 열매들이 속속 세속 중생들에게 보시돼 불은(佛恩)을 맛볼 수 있는 계절을 맞았다.

하안거(夏安居) · 동안거로 나누어 일 년에 두 철씩 닦는 스님들의 수행기간은 아주 과학적인 타임 스케쥴이다. 활동하기 불편한 혹한기와 한여름 더위 중에는 자신을 제도(濟度)하는 참선수련을 하고 중생구제 활동을 벌이기에 알맞은 봄 · 가을철은 교화활동을 하도록 짜여진 게 안거수행이다. 그래서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비롯한 불교의 중요 명절들은 대체로 안거기간을 피한 계절에 들어 있다.

우울한 세태인지라 올봄 불문(佛門)의 중생제도활동이 어느 때 보다도 기다려지고 뚝 떨어진 살맛을 돋구어줄 참신한 ‘한소식’이 더욱 소망스럽다. 어느 종교든 세상을, 시대를 외면하고는 존재할 수 없다. 흔히 종교들이 시대의 흐름을 오불관하거나 역류했을 때 교세가 쇠퇴해지고 심지어는 사멸(死滅)해 버리고마는 예를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보아 왔다.

종교가 아무리 생사해탈과 내세의 극락 · 천당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성직자와 교당 · 신도가 세속 현실을 무대로 존재하는 한 중생이나 역사를 외면하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인류역사에 불변의 진리로 환한 불빛을 비쳐온 훌륭한 종교들은 항상 ‘시대정신’을 이끄는 향도의 역할을 해 왔고 ‘인류구원’의 원력(願力)을 한시도 저버린 적이 없다.

시쳇말로 종교도 투철한 시민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올봄 불문에 기대한 ‘한소식’도 이러한 원력을 담은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불교도 인류역사에 많은 긍정적 공헌을 해온 이른 바 고등종교의 하나임에 틀임없다. 불교의 시민의식과 역사의식은 교조인 부처님 당시부터 아주 선명했다. 부처님은 교당을 창립할 때 4성 계급제도를 따라 엄격히 규제돼 온 바라문교의 ‘천민성직자’ 불허의 율법을 깨고 모든 사람을 승려로 받아들였다.

당시 인도 고대사회의 상황으로써는 이 같은 계급 타파의 정신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부처님의 결단은 혁명적인 변혁이었고 시대를 이끌고자 하는 일대의 향도적 줄탁(줄啄)이었다. 또 부처님의 구원의지 역시 단순한 개인 성불(成佛)을 지향하는 개인제도가 아니었다. 중생의 구원, 즉 사회제도(社會濟度)를 통한 원융무애한 세상을 이 땅 위에 구현하고자 하는 인류구원의 원력이었다.

물론 부처님은 드러내 놓고 정치투쟁 · 계급투쟁 · 사회운동을 하거나 경제정의를 부르짖지를 않았다. 그리고 부처님이 전 생애를 통해 이러한 활동에 참여한 시간도 거의 없다. 차라리 전무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부처님이 탐 · 진 · 치(貪 · 嗔 · 痴)를 버리고 인간 심성을 모자람 없이 활용함으로써 본래의 무한한 인간 자유를 누리자고 역설한 이른바 ‘열반’의 경지라는 것도 한 개인의 ‘해방’에 머무는 것으로 끝내자는 개인 구원의 차원만은 아니었다. 이는 인류사회를 제도하기 위한 극히 기초적인 단계일 뿐이고 세상구원의 입문에 불과한 것일 따름이다.

부처가 종국적으로 지향한 ‘중생제도’는 온 인류가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한 현실세계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구원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극락세계는 ‘지금, 여기’에 실존하는 인간다운 삶이 충만한 현실사회의 건설을 뜻하는 것이지 죽어서나 갈 수 있는 피안의 세계가 결코 아니다. 현실 속의 극락세계 실현은 후일 수많은 대승경전에서 누누이 강조됐고 중국 선불교는 이를 아주 구체화시켜 수많은 조사들이 이 세상 속에서의 삶을 통해 실천해 보였다.

「유마경」은 ‘번뇌가 곧 보리 (煩惱卽菩提)’라고 설파하면서 ‘내가 다 깨치지 못했더라도 남을 먼저 제도하는 일에 힘쓸 것 (我未得道 先度他)’을 역설했다. 번뇌가 곧 보리라함은 이 현실세계가 곧 극락이고, 괴롭고 슬프고 고난스러운 오늘의 삶이 바로 인생살이이며 이러한 고난을 통해 인간은 성숙한다는 뜻이라고 봐야 한다.

흔히 이 현실 세계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지옥이고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현세의 삶’이라는 식으로 절망을 내뿜는 ‘염세불교’는 본래의 불교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공수래 공수거 (空手來 空手去)’가 뜻하는 바가 결코 허무주의일 수 없으며 자기만이 도인(道人)이 되는 것이 불교의 완성일 수 없다.
땅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 속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게 바로 도의 완성이며 성불의 길인 것이다. ‘공수래 공수거’는 인간 존재의 심연에 내재하는 탐욕이나 명예욕, 권력욕 등을 억제하려는 존재론적 가치 기준일 뿐인 것이다.

어느 종교에서건 가장 돈돈한 신앙은 교조(敎祖)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행적에 가장 가깝게 사는 사람이 성불한 사람이고, 보살이고, 처사인 것이다. 석가모니의 삶에서 우리가 반드시 유의해야 할 대목의 하나는 불의한 현실이 있을 때 이를 고치고 변혁시키려는 외침과 정의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불의한 현실일지라도 그대로 수용하면서 맹종하며 사는 삶이 번뇌를 꼬리로 삼아 사는 불자의 길인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불의와 부정, 부패같은 사회비리를 바로 잡으려는 투철한 개혁의지와 투쟁은 바로 성도(成道)의 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이 같은 그릇된 현실세계를 바로 잡고자 하는 변혁의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역사적 전범(典範)은 미륵사상이다. 미륵사상은 요사이 용어로 대치한다면 ‘혁명사상’에 다름 아니다. 내세적인 이상세계로만 염원하던 미륵불의 세계를 오늘의 현실속에 구현코자 한 미륵불교는 현실변혁의 열망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래서 백성이 수탈을 당하고, 억압 속에서 신음할 때 이를 구원하고자 한 많은 혁명가들이 미륵불의 현현을 앞세워 변혁을 향한 정열의 불꽃을 점화시켰던 것이다.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던 신라와 백제의 경우 신라는 황룡사를 중심한 화엄불교였고, 백제는 미륵사를 중심한 미륵불교였다. 불교사적으로 볼 때는 보다 진취적이고, 현실적이고, 개혁지향적이고, 진보적이던 백제불교가 역사의 순화과정에서 신라에 멸망하고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 불교사에는 이러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원력을 담은 미륵불사상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음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올 봄에는 깊숙한 산사 참선수행을 마친 스님들이 세속 도시로 줄지어 내려와 중생들의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참신한 법음(法音)의 메아리를 울려주었으면 싶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