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사찰, 에너지전환으로 거듭나야 한다
특별기고
2008-12-29 관리자
수메르에 이어 우르, 라가시 등등의 도시국가들도 차례로 숲에서 태어나 숲을 파괴하고 이윽고는 붕괴되는 흥망성쇠를 되풀이했습니다. 아메리카의 마야문명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문명도 마찬가지로 숲의 파괴와 문명 붕괴 역사의 사례입니다. 라파누이 섬 사람들도 울창한 숲을 에너지로 거대한 모아이 석상문명을 일으켰지만 마지막 남은 나무를 베고는 석상을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좁은 섬 안에 갇혀 드디어는 전쟁과 아사(餓死)와 끔찍한 카니발리즘(식인풍습)으로 치닫고야만 황무지의 생지옥도를 스스로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속불가능한 석유 중심의 자본주의 산업체제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에너지는 석유입니다. 자동차, 비행기, 배를 비롯한 수송에너지와 의식주 모든 부분에 걸쳐 있는 석유화학 제품을 생각하면 단연 석유의 세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석유가 지금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대략 전체 석유매장량의 절반 정도를 태워버린 것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석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이른바 석유정점(Peak Oil) 시기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2010년에서 2020년 사이에 석유정점이 닥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석유정점이 되면 석유 위에 세워진 산업문명 자체가 붕괴됩니다. 석유가 없는 세상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칫솔도 치약도 휴대폰도 옷도 신발도 장판도 가전제품들도 모두 석유화학 제품이거나 일부 들어가 있습니다.
석유가 없다면 컬러텔레비전은 불가능하고 패션도 불가능하고 대중미술도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식량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우리가 먹는 한 끼의 식사에는 석유가 90%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석유를 먹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삶은 인류 역사상 지극히 짧은 시간만 가능한, 전혀 지속불가능한 생활방식입니다. 지금의 자본주의 산업체제는 급속하게 녹아내리고 있는 북극 빙하처럼 급속하게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붕괴는 끔찍한 전쟁과 집단 학살, 참혹한 아사로 귀결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붕괴를 피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의 에너지 소비를 혁명의 수준으로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재생가능 에너지 체제로, 분산형의 지역자립 에너지 체제로 빠르게 전환해야 합니다.
에너지전환과 에너지자립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찰
한국의 사찰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지간한 규모의 사찰에는 대부분 고압선이 들어와 있고, 겨울철 난방비를 비롯해 늘어나는 에너지 비용은 새로운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사찰은 지금 전기에너지를 너무나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수백 수천 명의 수퍼맨을 일꾼으로 부리는 전혀 지속불가능한 수행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기소비량이 수백, 수천kWh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1kWh의 전기에너지란 320미터 높이의 파리 에펠탑에서 땅에 있는 소형 승용차를 맨손으로 꼭대기까지 들어 올리는 힘과 같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전기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 3배의 에너지를 불태워야 합니다. 나머지 3분의 2는 그냥 대기 중에 연기로 사라지고, 이것이 또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됩니다.
물론 지금 이 시각에도 전국의 사찰에서 불법승 삼보를 지키기 위한 스님과 대중들의 수행과 정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청정사찰을 지키기 위해 탐진치 삼독에 기인하는 생태계 파괴와 개발에 맞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케이블카니, 골프장이니, 송전탑이니 각종의 개발과 환경파괴 사업이 왜 그리도 많은지, 스님들과 지역 대중들의 사찰환경을 지키기 위한 힘든 싸움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한국의 사찰들은 개발과 자연생태계 파괴에 맞서 정부 당국과 개발업자를 상대로 사자후를 토해냈습니다. 가야산 해인사 골프장 반대투쟁은 10년에 걸쳐 결국 골프장을 백지화시켜냈습니다. 고속철 경주 통과 반대운동도 결국 경주 도심 통과를 철회시키고 우회노선을 관철시켰습니다. 2000년 지리산 댐 건설 계획도 불교계와 지역주민, 시민사회단체의 결집된 힘으로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천성산과 사패산, 새만금에서도 자연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의 맨 선두에는 스님들과 대중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같은 반대와 보존의 수행 투쟁을 넘어서서 사찰이 생태사찰의 이름에 걸맞게 생태계의 지킴이로서 에너지전환과 에너지자립의 모범을 만들어 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 첫 번째 과제가 에너지 소비 혁명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찰 건축에 단열 개념을 도입해야 합니다. 이른바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 두꺼운 단열재 및 다중창 사용으로 자연상태의 태양 에너지 외에는 따로 난방이 필요 없도록 지은 주택)를 지향하는 가람이 되어야 합니다. 원래 나무는 가장 우수한 단열재입니다. 문제는 나무와 벽체 사이에 틈이 너무나 많아 에너지가 그냥 솔솔 샌다는 데 있습니다. 이 틈을 단열테이프 등으로 막아주어야 합니다. 이미 독일은 패시브하우스를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 연후에 해, 바람, 물, 바이오가스를 이용한 재생가능에너지를 가능한 설치해서 깨끗한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절집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수세식 화장실입니다. 에너지를 낭비하고 골짜기를 오염시키는 주범이 수세식 화장실입니다.
똥은 에너지입니다. 우리 몸은 먹은 음식의 30%만 소화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배설합니다. 때문에 우리의 조상들은 똥에 짚과 음식찌꺼기와 재를 넣어 발효시켜 질 좋은 거름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서양에는 이 거름이 없어서 휴경을 통한 지력 회복 방식을 사용했고, 심지어는 농부들이 전쟁터를 누비면서 인골을 수집해 비료로 쓰기도 했습니다. 미국 농무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냈던 프랭클린 히람 킹 박사는 20세기 초 동양 3국을 방문하고 나서는 4천 년 동안 생태순환의 농업을 이어온 동양의 농법이야말로 미국과 서구 농업의 대안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생태순환의 농사법을 포기하고 거꾸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대량 살포하는 서구의 석유농업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거름은 산소를 좋아하는 미생물들이 일꾼으로 일하는 호기성 발효입니다. 그런데 똥을 다른 음식물 쓰레기나 각종의 식물성 찌꺼기들과 함께 밀폐된 공간에 넣으면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발효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메탄가스가 발생합니다. 이 메탄가스를 모아 사찰에서 취사와 난방용 연료로 쓰면 됩니다. 물론 혐기성 발효 이후에 생기는 양질의 액비와 고형 비료는 사찰의 논과 밭에 질좋은 유기농 비료로 쓰일 것입니다.
이미 많은 사찰에서 해우소 문화를 바꾸기 위한 실천을 해왔습니다. 석남사 해우소는 과감하게 수세식 화장실을 걷어내고 똥을 액비화하는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송광사 해우소도 거름 만드는 공장입니다. 그러나 좀 더 나아가 똥을 에너지로 사용하고 거름도 만드는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설치해야 합니다. 흔히 사찰에서 설치한 복잡하고도 비용이 많이 드는 미생물 똥 분해 처리방식은 대안이 아닙니다.
일찍이 부처님이야말로 생태주의를 실천한 선각자였습니다. 부처님은 나무와 숲을 우리와 같은 생명체라고 설파하셨고, 생태순환의 삶을 직접 실천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은 문명 붕괴의 삶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문명의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생태근본주의야말로 불교의 중도에 부합하는 생각과 실천들입니다.
이제 한국 사찰은 수행 환경을 지키기 위한 반대와 보존을 뛰어넘어 대안의 에너지전환 실천에 앞장서야 하는 전환점에 와 있습니다. 단순 소박하기만 했던 부처님의 삶 그대로 에너지-기후변화 시대에 우리 사회를 생태 순환의 사회로 바꾸는 운동의 맨 앞에 한국 사찰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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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옥 _ 재생가능에너지 시민기업인 ‘시민발전’ 대표로서, 농업 및 에너지의 자립·자치와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풀뿌리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돌베개 출판사 편집장, 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 대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