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합작품 카파도키아
오아시스 실크로드를 가다 4 - 터키 카파도키아
2008-05-30 관리자
카파도키아에는 많은 지하도시가 산재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카이막클르’와 ‘데린쿠유’가 규모가 크다. 지하 도시로 들어서자,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깊이 55미터, 지하 20층의 규모이지만, 공개하고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다. 화살표 표시가 있고 길목마다 전등불을 밝히고 있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었다. 단단하지 않은 암석이었기에 사람들은 일일이 손으로 쪼아가며 동굴을 만들었고, 그 형태는 개미집의 형태와 흡사하여 미로로 연결되어 있다. 함께 예배를 보았던 홀과 빵을 구웠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와인을 만들기 위한 물통도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서 우리의 것과 흡사한 절구도 보았다. 적이 침략했을 때 두꺼운 원반형의 회전문으로 통로를 막았는데, 안에서는 열 수 있지만 밖에서는 절대로 열 수 없다고 한다.
어두컴컴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지하도시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종교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나간 그들의 신앙심은 정녕 고귀한 것임에 틀림없다. 지하도시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리처드 도킨스는 ‘신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이라고 하면서 신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의 능력에 의지하라고 하였다. 붓다는 이미 2,600년 전에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일깨워 주었고, 어디에도 종속되지 말라고 가르쳤다.
위츠히사르는 커다란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견고한 요새를 연상케 한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도 주민들이 살았던 주거지역이었다. 위츠히사르는 ‘뾰족한 성채’라는 말인데 멀리서 보아도 위풍당당하다.
위츠히사르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파샤바는 수도사들이 은둔하면서 수행한 곳이었고, 바위마다 그들이 직접 파서 만든 동굴이 있다. 파샤바에서는 요정의 굴뚝이라 불리는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볼 만하다. 내 눈에는 갓을 쓴 바위로 보였다. 수도사들은 키 작은 포도나무와 비둘기를 키웠다. 수도사들은 비둘기의 알로 프레스코화(석회를 벽에 바르고, 마르기 전에 안료를 칠해서 그리는 그림)를 그리는 데 사용하였고, 비둘기 알 껍질은 포도나무 밭에 뿌렸다고 한다. 수도사들의 검박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이곳에는 성시몬의 교회가 있는데, 성화(聖畵)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두 눈이 크게 훼손되었다.
카파도키아의 동굴 교회에 있는 성화들은 대부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훼손되었는데, 훼손된 부분은 주로 눈이다. 오스만 투르크족은 이슬람교를 신봉하였지만 그들의 고향은 중앙아시아였기에 약간은 샤먼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악마의 눈을 숭배하고 그것을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녔는데, 악마의 눈을 가지고 있으면 악마가 무서워서 해치지 못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란다. 터키인들은 현재도 악마의 눈을 자동차와 집안에 장식처럼 걸어둔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바람은 점점 차가워진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서 걸었다. 카파도키아의 척박한 자연 환경이 오히려 은둔과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푸른 지중해의 일상 _____ 안틸랴를 비롯한 터키의 동부지중해는 비잔티움 제국에 이어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제국이 장악함으로써 동방의 물자와 사상이 베네치아, 제노바 등을 통해 유럽 내부로 전해지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또한 이곳은 신라와 중국을 출발한 육상 실크로드가 끝나고 다시 해로를 통해 유럽과 아프리카로 교역이 연결되는 중간적 문화 용광로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터키 타월과 파자마를 비롯하여 커피, 설탕, 올리브, 알코올 같은 일상용품도 이슬람권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것이다.
안틸랴의 새벽하늘은 지중해와 같이 검푸른 빛이었다. 지중해라고 해서 다른 바다와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그래도 카뮈의 ‘이방인’을 낳았고, 세기의 화가 피카소를 낳지 않았는가? 검푸른 빛을 띠고 끊임없이 생명의 노래를 불러대고 있을 지중해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렀다. 항구로 가는 길목에는 칼레이치의 오래된 성벽과 성문이 있다. 타투 가게를 지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양탄자를 진열하고 있던 두 남자가 나에게 차이를 권하였다. 터키에서는 어디서나 차이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하기에 낯선 사람에게도 곧잘 권한다.
어선들은 출항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고, 몇몇 관광객들만이 눈에 띄었다. 여름 시즌 같으면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을 텐데, 겨울이라 그런지 항구는 조용하기만 하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그들처럼 나도 바게트 빵에 치즈와 올리브를 얹어서 먹었다. 터키에 머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올리브 장아찌를 좋아하게 되었다.
안틸랴의 고고학 박물관은 터키에서 손꼽히는 중요한 박물관 중 하나이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대리석으로 조각한 신상들이 도열해 있다. 여신들의 옷자락은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사방으로 퍼질 것처럼 풍성하다. 가장 볼 만한 것은 사코파쿠스(석관)이다. 마블로 만든 관의 외벽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신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신들을 조각한 석관이 있는가 하면 악귀들이 범접할 수 없게 무서운 얼굴을 조각한 석관도 있었다. 두려움과 슬픔이 묻어있는 관에 아름다움을 가미하여 하나의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그리스 로마인들의 심미안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유적지나 박물관을 돌아본다는 것은 과거로의 여행이며 또한 수많은 죽음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생과 사가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아있다는 그 단 하나의 힘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