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지면서 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 전단향나무처럼

내 마음의 법구

2008-03-06     관리자


장작을 패려고 생전 처음 도끼 한 자루를 샀다. 번쩍거리는 도끼날이 대담해 보였다. 그래서 ‘눈썹이 잘 생긴 놈’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놈을 마루 밑에 밀어 넣어 두었더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도끼를 가졌다는 것, 장작을 쩍쩍 소리 나게 두 조각으로 가르는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장작을 패기로 했다. 도끼를 꺼내 자루에다 침을 한 번 뱉고, 적당하게 양다리를 벌리고,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고 장작을 향해 내리쳤다. 내가 내리치기만 하면 이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도끼는 나무의 중심을 정확하게 가르지 못하였다. 중심을 가르기는커녕 번번이 빗나가고 말아,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었다. 내 눈썹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그렇게 눈썹이 잘 생긴 도끼도 나를 만나 독기(毒氣)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도끼와 장작을 모두 원망하였다. 도끼는 도끼대로 장작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고, 장작은 장작대로 도끼날을 받아들여 나무로서의 한 생을 마칠 준비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심어두었던 글귀가 하나 떠올랐다.
“갈라지면서/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 /전단향나무처럼.”
고대 인도의 잠언시 ‘수바시따’에 들어 있는 구절이다. ‘수바시따’는 엄밀한 의미에서 법구는 아니다. 수천 년 전부터 인도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노래, 혹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잠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구전되어 온 시가이기 때문에 물론 구체적인 창작자도 알 수가 없다. 인도에는 ‘자타카’라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가 수백 가지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수바시따’는 ‘자타카’를 서정적으로 압축한 것일까?
전단향나무가 갈라지면서 도끼날을 향기롭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이분법적으로 본다면 도끼는 가해자고, 향나무는 피해자다. 향나무의 입장에서 도끼는 원수일 뿐이다. 그 둘 사이에는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럼에도 향나무는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원수의 몸에 자신의 향을 묻힌다. 그때부터 피아의 구별은 사라진다. 원망도 사라진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사람에게 나의 향기를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게 결국은 부처님의 품에 드는 일일 것이다. 일찍이 『법구경』의 한 말씀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옮겨 적는다.

불가원이원(不可怨以怨) _ 원망으로써 원망을 갚으면
종이득휴식(終以得休息) _ 끝내 원망은 없어지지 않는다.
행인득식원(行忍得息怨) _ 오직 참음으로써만 원망은 사라지나니
차명여래법(此名如來法) _ 이 진리는 영원히 변치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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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_ 시인. 1981년 대구매일신문,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저서로는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로 『연어』 『관계』 『나비』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