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친 강아지 이야기
2000-12-19 관리자
[깨친 강아지 이야기]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맨 날 주인이 주는 밥이나 먹고 때로는 쓰레기통도 뒤집어 횡재도 하며 오줌 마려우면 아무 데나 누고 잠오면 잠이나 자던 이 강아지는 어느 날, 식사로 던져진 뼉다귀와 씨름하다 문득 한 소식 깨치게 됩니다.
깨치고 나니 뼉다귀 주는 사람이나 뼉다귀 먹는 자기같은 강아지나 차별이 없는지라, 그래서 이 강아지는 드디어 가엾은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러 나서게 됩니다.
깨친 강아지가 법을 설하러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제일 먼저 만나 중생은 여태껏 자기에게 밥을 주던 개 주인이시라! 아, 우리 깨친 강아지, 그동안 애써 벌은 재물로 자기에게 밥을 열심히 주던 저 인간이 너무 가엾고 안돼 보여 은혜를 갚아야 되겠다, 는 생각에 드디어 첫 법문을 굴리기 시작합니다.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라... 깨친 강아지는 자비심 가득한 얼굴로 법을 설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저 중생이 가여워 기껏 법을 설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깨깨깽깽! 개짖는 소리라!
평소에 만나면 꼬리를 흔들고 애교 떨던 강아지가 난데없이 짖기 시작하자 주인은 깜짝 놀랍니다. 그러다 주인은 드디어 화가 나서 깨친 강아지를 때리기를 시작합니다. 이 놈의 강아지가 미쳤나? 밥 잘 먹이고 목욕도 씻겨준 주인에게 대들어? 주인은 사정없이 몽둥이로 우리의 깨친 강아지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강아지는 기가 막혔습니다. 내가 깨쳤는데! 내가 법문을 설하는데!!! 아무리 강아지가 억울함을 호소해봤자 나오는 것은 개짖는 소리뿐, 법을 설하면 설할수록 매는 곱배기가 되어 더더욱 강아지에게 날아 옵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깨친 강아지,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한 소식 이룬 제법무아의 도리를 설하시면서...
강아지도 깨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아지가 깨쳤다고 사람한테 법문하려 들면 이와같이 깽깽 소리 밖에 안 나올 것입니다. 깨친 강아지가 설법하려면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부처님처럼 깨친 강아지라도 강아지의 몸을 갖고 있는 한은 무엇보다 먼저 강아지로서의 삶을 훌륭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 뜰 앞의 잣나무가 아무 말없이 백 년 세월을 보내는 것도 잣나무라 못 깨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잣나무의 삶을 훌륭히 살고 다시 오기 위해서입니다. 흘러가는 시냇물, 바닷가의 맑은 물고기들도 다 그러 합니다. 못나서 뭘 몰라서 저렇게 어부의 손에 잡혀 죽고 말없이 바다로 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와 같아 어린 나이에 비록 깨칠 수는 있지만, 현재와 같은 윤리와 도덕률 앞에서 어린 사람이 아는 소리를 하면 그것은 다른 분한테 결례입니다. 따라서 나이가 좀더 들 때까지 자신을 탁마하는 삶을 살아야지 섣불리 문자를 설하려 하면 상대방을 깨우쳐 드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분의 진심(嗔心,성내는 마음)만 일으켜 그 분의 업만 짓고 마는 것입니다. 도와 드리는 것이 조금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는 분은 언제나 모시는 마음으로 부처님 말씀을 들려 드려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을 모시듯 언제나 공경과 모시는 마음이 가득 해야 합니다. 잘 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서로에게 업장만 더할 뿐, 아무 이득이 없습니다.
반대로 들으시는 분은, 법사가 아무리 나이가 적고 초라해 보일지언정 그 분의 가르침을 부처님 법을 듣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듣는 분도 모시는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 녀석이 나보다 어린데, 저 친구는 나보다 배운 게 덜한데, 하는 마음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진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리 깨쳤더라도, 진리는 누구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사람이거나 아니거나 한 순간에 깨칠 수 있는 것이지만, 진리를 설하기 위해서는 인연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갈고 닦읍시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절 인연 도래하는 그 날, 고해의 중생들을 위해 우리 모두 큰 법문 공양 올립시다!!!...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