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무변서원도!
2000-11-14 관리자
[중생무변서원도]
우리가 늘 외우는 사홍서원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무리 중생이 끝이 없어도 맹세코 일체
중생을 다 건지리라! 그런 연후에 번뇌를 끊고 법문을 배우며 불도를 이루겠다는 서원이 이
어집니다. 흔히 이 사홍서원을 총원이라 하여 일체 불보살이 모두 가지는 원이라고 하는데,
그 총원의 시작이 다른 것도 아닌 중생을 제도하겠다, 는 데 대해 우리는 조금 의문을 갖게
됩니다. 보통 우리가 어떤 일의 순서를 말할 때는 중요한 것을 맨 처음 갖다 놓은데, 그렇다
면 다함없는 번뇌를 끊고, 위없는 불도를 이루는 것보다 중생 제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불법을 배우고 공부하는 목적은 다름 아닌 중생구제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법을 배우고 아무리 위없는 불도를 이룩하더라도 그것이 중생 구제와 무관하다
면, 또는 그것이 중생을 이롭게 하고 중생을 구하는데 쓰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두터운 번뇌를 끊고 높은 법문을 배워 기어코 성불하는 것은 다
른 이유가 아닙니다. 오직 중생구제, 이 한 가지 이유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부처님
은 오로지 일대사 인연으로 나오셨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법은 이 세상 진리를 그 자리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 주는 가르침이라, 우리는 부처님
법을 만나게 되면서 말할수 없는 환희를 얻게 됩니다. 또 이런 환희는 그동안 나약하던 우
리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여 유전연기(流轉緣起)에서 환멸연기(還滅緣起)의 삶으로 이끌게
합니다. 그런데 불법을 정말 열심히 공부하시다 보면 조금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
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공부가 익어갈수록 중생 구제에 대한 원이 비례
해서 더 간절해 지는데, 그 반대로 공부는 말할수없이 높아 가는데 이상하게도 중생구제의
원은 점점 희미해지는 분들도 간혹 계십니다.
옆에서 보기에 그 분들의 공부는 너무나 훌륭해, 일반인들은 비교도 되지 않으며 깊이는 하늘을 찌르고 땅을 덮고도 남는데, 이상하게도 그 분들의 말씀을 듣고 나면 마음이 그다지 썩 편해지지가 않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아시는 것은 굉장히 많은데 말입니다.
느끼시겠지만, 이런 분들의 공부는 바른 공부가 아닙니다. 나를 위한 공부, 나의 지적인 만족을 안겨 주는 도구로써의 공부로 전락해 버린 것이 이런 공부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이 힘이 없고 공허하게 끝나는 수가 많은데, 불법은 워낙 명백하고 재미가 있으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재미에만 빠져 버린 것입니다.
이런 공부는 그야말로 마른 지혜(乾慧)라, 평상 시 멋부리고 내 자랑하기에는 딱, 알맞을지 모르나 중생의 번뇌를 없애 주고 업장을 막아주기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부설거사님의 사부시(四浮詩)에도 나오듯,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돌사람이 그 분의 법문에 끄덕인다 해도 그 자체만 가지고는 다생에 내 자랑만 더할 뿐 아무런 공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법문을 배우기 전에,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중생구제의 큰
뜻을 세워야 합니다. 번뇌를 끊고 불법을 공부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마는, 그것은
나처럼 번뇌 못 끊고 나처럼 불법 못 배우는 이들에 대한 크나큰 연민의 마음을 내가 발할
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번뇌를 다 끊어 기어코 저 중생의 번뇌도 끊게 하고, 이 법문을 다 배워 저 중생에게 반드시 들려 드려 영겁의 윤회를 벗어나게 하겠다는 거룩한 의지가 없다면 그런 법문, 불도는 내 자랑거리만 될 뿐 더 이상의 가치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무변서원도!
일체 중생을 기어코 모두 구하겠다는 이 대명제는 시방의 모든불보살님 부처님을 이 땅에 오게 한 '원 중의 원'입니다.
공부에 대한 원이 간절하면 간절해 질수록 우리 모두 중생 구제의 큰 서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아미타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