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그늘] 강
보리수 그늘/마음이 있는 곳
성장기의 대부분을 나는 강과 함께 지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금강은 불과 백여 미터도 안됐는데, 제방에 올라서면 기자(己字)로 완만하게 흘러내려가고 있는 강의 황토빛 맨살이 한눈에 들어왔다.
봄부터 가을까지 강은 시시때때 변하면서 십대의 나를 품에 안았다. 강의 품은 때론 부드럽고, 때론 따뜻하고 때론 격렬하고 때론 힘차고 횡포하였다.
여름이면 한 번씩 홍수가 져서 뒤집히고, 그 뒤집힌 물줄기엔 온갖 것들이 떠내려 왔다. 노란 뿔나팔을 그 강에서 건져 한여름이 다 지날 때까지 불고 또 불던 생각이 난다. 뚜뚜, 한던 맑고 여린 그 나팔 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서러운 데가 있었다. 나팔을 불고 있으면 강으로하여 빚어진 수 많은 애환ㅡ떠내려간 집, 허우적거리던 돼지며 소, 물건들을 건지기 위하여 바지랑대를 들고 하얗게 강변에 몰리던 사람들의 아우성, 그리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던 누구누구의 용기 등등ㅡ이 낡은 사진들처럼 하나씩하나씩 떠 오르곤 하였다.
고등학교는 기차 타고 오십여 분 걸리던 L시로 갔는데, 기차 통학을 했으므로 강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저녁 무렵이었다.
통학차를 내리면 나는 늘 강변을 돌아 집으로 갔다. 강변은 내 키보다 큰 갈대들이 우거져 있고, 노을빛을 역광(逆光)으로 받고 있는 강의 수면은 한여름, 광포하게 뒤집혔던 그때하곤 전혀 다른 얼굴로 잔잔하였다. 아니, 단순히 잔잔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비단처럼 부드럽고 새댁처럼 다소곳하면서도 무언가 이 편을 압도하는 듯한, 이 편의 오만과 치부까지도 있는대로 다 감싸고 마침내 이 편의 손 끝까지 순화시키는 듯한 그 무엇을 갖고 있었다.
나는 번번이 알 수 없는 감동에 휩싸여 오래오래 그 갈대밭에 쭈구려 앉아 있는 게 보통이었다.
멀고 가깝고, 하나씩 둘씩 저녁불이 켜지면 어쩌다 덩시렇게 달이 떠오르는 것이었는데, 달빛을 받고 조용히 가라앉은 강의 모습은 더욱 신비하였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이 보이면서도 그 강변의 모든 것들을 지혜롭게 흔들어 깨우고, 그것은 또한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듯 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잠재우는 참으로 크고 불가해한 무슨 소리인가를 냈다.
이제, 그 때에 비하면 나이도 들고 고향도 등져서, 어쩌다가 보아야 시멘트 교각들에게 상처받고, 파헤쳐지고, 물빛까지 검붉은 한강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내가슴 속의 강은 항상 중학교 시절 보았던 그 금강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강이야말로 가장 불심(佛心)이 많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닐런지. 내가 성장기에 보았던 그 강의 신비한 모습이야말로 바로 부처님의 참모습이 아닐런지.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