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중촌감(車中寸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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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차중촌감(車中寸感)
  • 이영무
  • 승인 1975.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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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隨筆)

얼마 전이 일이었다.

어느 지방의 불교강연초청을 받아 스님 한분과 동행으로 야간 열차를 탔을 때였다.
三등차간은 승객도 많아서 조으는 사람, 떠드는 사람, 화투 치기를 하는 사람, 그 수많은 승객들의 틈바구니로 물건을 팔러 다니는 매점원들, 그야말로 세사인정(世事人情)의 천태만상이 마치 요지경 속이나 전시장을 구경하는 것 같아서 우리 일행은 익숙지 못한 열요(熱鬧)속에서도 그런대로 사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팔면서 지루하거나 따분한 기분을 가시었다.
마침 그때 우리 일행이 앉은 편 좌석에 청년 三, 四명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거침없는 고성 만담이 폭발하다가 화제가 종교 문제에까지 이르자 한 청년이 말하기를,
「들으니 불교(佛敎)의 석가모니하고 기독교(基督敎)의 예수하고 손까락 퉁김 맞기의 나이로뽕 내기를 하였는데 석가모니가 여러번 져서 이마에 손까락 퉁김을 얼마나 맞었는지 그만 눈섭사이에 흰 혹이 불으텄다」하니 그 좌중(座中)에서 폭소가 터졌다. 이는 아마 불교(佛敎)의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나는 이 낭만적인 이야기를 듣고서 마음 가운데 납덩이를 삼킨 것 같아서 남들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이는 불교(佛敎)의 석가모니가 기독교(基督敎)의 예수한테 졌다는 종교적 감정 즉 불교창독감(佛敎昌瀆感)에서만은 아니다.
그 청년의 말은 물론 한 순간을 웃고 지내려는 담화(漫談)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보면 그 말속에는 현대 청년들의 인생관, 종교관, 가치관 등이 내포되어 있지는 않을까, 즉 인생(人生)을 하나의 도박으로 보려는 경향이기에 기독교나 불교(佛敎)같은 큰 종교의 교조(敎祖)를 말할 적에 그 종교가 제시하는 차원 높은 내면적 문제는 조금도 들추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나 석가모니를 나이롱뽕 쟁이로 보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더 주의해 볼 것은 그 나이롱뽕에서 불교(佛敎)의 석가모니가 기독교(基督敎)의 예수한테 졌다는 발상은 곧 모든 것을 서양우위(西洋優位)로 생각하려는 시대적 현실감각의 발로로서 무의식적인 자아(自我)의 망각 또는 상실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순수해야할 청년들! 전진해야할 청년들! 자아의식이 투철해야할 청년들! 이들이 높은 이상을 세우고 꾸준히 매진(邁進)해야할 청년기 특유의 열(熱)과 성(誠)과 빛을 성립하지 못한다면 그는 벌써 청년이 아니다.
인생(人生)을 도박으로만 보는 눈에서는 인생(人生)의 존엄성이나 진지성이 있을 수 없다. 자아의식이 흐리어서 남의 것, 서양의 것만이 우수하게 느껴진다면 자아의 발전과 아울러 향토(鄕土)의 발전이나 민족의 발전이나 국가의 발전은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이러한 점을 생각하니 나는 공연히 마음이 무거워지고 불안과 조바심이 겹쳐 등에 땀이 흐른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교육자(敎育者)로 더구나 불교를 신봉하여 남에게 강연차 가는 도중이니 불자(佛子)의 심오한 교리를 저들에게 설명해야 겠다. 하여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이나 기신론(起身論)등 대승경전(大乘經典)의 좋은 구절(句節)을 아는대로 되뇌어 보았지만 이제 저 청년들에게 오늘을 사는 지혜 즉 참다운 인생관, 사회관, 국가관, 진리관 등을 일깨워 줄만한 적절한 전개(展開)가 되지 않는다. 내 자신의 불교신봉이 결국 수박 겉핥기 격(格)으로 문구적(文句的) 이론적(理論的)으로 불교(佛敎)가 어떠니 하였지 그 교리를 가지고 진정한 자기진로를 개척하지 못했음을 반성할 적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저 청년들에게 일러주겠는가, 그래서 옆에 있는 스님에게 부탁하려고 돌아다 보니 스님은 일을 느끼는지 느끼지 않는지 눈을 반쯤 감고 부동의 참선(參禪)자세이다.
스님의 수양이 높은 경지! 어디서나 참선을 하는 모습, 그 열료(熱鬧)스러운 삼등차중(三等車中)에서도 부동을 익히는데는 참으로 존경하여마지 않을 수도인의 행동이다. 그러나 바로 면전의 청년들이 인생행로에서 십자가두(十字街頭)를 방황(彷徨)하고 미율(迷律)에 해매는 것을 보고도 못본체하여 정로를 지시하지 않고 혼자서만 안연(安然)해서 수도할 것인가.
마침 매점원(賣店員)이 술상자를 들고 앞을 지내가기에 나는 얼른 소주 한병을 사들고 그 청년들의 좌석으로 갔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인생을 더듬어 보자. 세속을 말해도 좋고 시사를 말해도 좋고 불경을 말해도 좋고 참선을 말해도 좋다. 여하튼 진지한 문답을 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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