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현황(現況)
연초(年初)에 들어가면서 불교계(佛敎界)는 종단적(宗團的)으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합심(合心)하여 공휴일제정운동(公休日制定運動)을 벌린 것이 이 운동(運動)자체에만 끝인 것이 아니라 불교도(佛敎徒) 단체간(團體間)의 유대 강화 및 재조직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이 포교의 성공이었다. 메스콤에서도 음, 사(四), 팔공휴일(八公休日) 제정의 정당성을 측면에서 지원했다는 것은 그 문제에 끝이는 것이 아니었고 포교(布敎)에 일익을 담당하는 사회적(社會的) 외각운동이었다. 이는 불교사상(佛敎思想)이 그만큼 토착화(土着化)되어 있고 민중화(民衆化)되어 누구의 사족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요, 자연발생적(自然發生的)이었다는데서 불교(佛敎)전통의 저력을 알 수 있고 포교방향(布敎方向)을 설정(設定)하는데 많은 참고가 된다 하겠다.
첫 사․팔고휴일(四․八公休日)을 맞이하여 일반의 유흥적 탈선행위를 염려했는데 이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아니했고 너무도 조용히 그리고 경건하게 신도 또는 일반시민(一般市民)이 사원(寺院) 혹은 산(山)으로 가서 하루를 보내는 것을 보고 앞으로 뜻있게 보내는 계몽운동만 일으키면 이날만은 자기(自己)를 돌아보는 뜻있는 날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또 장옹(張翁)의 희사(喜捨), 지도자(指導者)의 구속, 종정(宗正)의 부조리제거(不條理除去) 담화(談話),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날 때마다 불교계(佛敎界)의 움직임에 대해서마는 국민은 언제나 좋은 일에는 극찬(極讚)을 보내고 나쁜일에는 혹독하게 비판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것만큼 정신계(精神界)의 주축(主軸)인 불교(佛敎)에 기대를 걸고 있는 징표라 생각한다. 그래서 금년(今年)은 전국민(全國民)에게 불교(佛敎)를 너무도 인식시키는 기회가 많았음으로 외부(外部) 자극에 의하여 불교내부(佛敎內部)의 자각운동(自覺運動)이 일어남과 동시에 포교에 새활로가 터였다고 본다.
그러면 약분(略分)하여 각단체별활동(各團體別活動)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一. 청소년교화(靑少年敎化)
청소년교화는 평년작(平年作)을 상회하는 활동이었다. 어려운 여건하에서 청소년교화연합회(靑少年敎化聯合會)가 주축(主軸)이 되어 二백二十여개의 청소년 모임을 범불교적(凡佛敎的)으로 벌리고 있고 각 단체(各 團體)간의 유대강화, 그리고 결속을 위하여 십팔개종단(十八個宗團) 지도자(指導者)세미나를 개최하여 이곳에서 사단법인체를 이룰 것을 합의하였다니 청소년 교화에 크나큰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 생각한다. 또 이외에도 각 중고등학교(中高等學校)에서 불교(佛敎)에 뜻을 둔 교사(敎師)들이 교내(敎內)에다 불교학생회(佛敎學生會)를 조직하여 특수활동을 벌이고 있는데가 많은데 부산(釜山)의 경우는 십팔개교(十八個校)가 된다니 그들의 노력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종립학교(宗立學校)가 아닌 학교(學校)에서 교내불교(校內佛敎) 활동(活動)을 가장 잘하는 대표적(代表的)인 학교(學校)는 동덕여고(同德女高)를 들 수 있고 이제는 교내(校內)봉사활동 그리고 교외음악발표(校外音樂發表), 포교예술제(布敎藝術祭)까지 하고 있으니 모범적이라 할 수 있다.
二. 대학생교화(大學生敎化)
전년도(前年度)까지 활발했던 대학생활동(大學生活動)은 전학생(全學生)들의 지나친 사회참여(社會參與) 때문에 전학생운동(全學生運動)이 유보당하면서 불교학생 활동(佛敎學生 活動)도 정지되어 있다가 학도호국단이 창단되고 그곳에 종교부(宗敎部)가 생김으로 이학기(二學期)부터 각불교학생회(各佛敎學生會)가 종교부(宗敎部)에 등록되면서 활동을 개시하게 되고 매년(每年) 대불연(大佛聯)이 주동이 되는 청련제(靑蓮祭)를 전후하여 그간 쉬었던 공백을 메우는 활동이 나올 것으로 기대해 본다.
三. 신도교화(信徒敎化)
타종단(他宗團)은 제외(除外)하더라도 대표적(代表的)인 조계종단내(曹溪宗團內)에 신도단체(信徒團體)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단체(團體)가 사․오년(四․五年) 전후(前後)하여 왜 사양길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가? 그 답변(答辯)을 이곳에 밝힘으로서 앞으로 신도교화운동(信徒敎化運動)에 참고를 삼고저한다.
우리나라 불교신도단체(佛敎信徒團體)는 대부분 한사람의 재원(財源) 혹은 특정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재원(財源)을 충당하는 사람들이 이유(理由)없이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할 때는 문제가 아닌데 그렇지 못할 때는 전단체(全團體)가 그사람의 구미에 맛게 움직여 주어야하는 폐단을 안고 있다. 지나친 아집(我執)을 부린다든지 명예욕(名譽慾)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든지 혹은 선거(選擧)때마다 전단체(全團體)가 선거(選擧) 분위기에 휘발려 들어가야 하는 비운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고질적(固質的) 저해요인이 사유물화(私有物化) 아니면 한사람의 구미(口味)에 맞는 조미과(調味科) 불교(佛敎)가 되어 주어야하는 안타까움을 본다. 그래서 삼․사년(三․四年) 전후(全後)하여 활발(活潑)치 못한 원인(原因)이 바로 한계점(限界點)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이 신도단체(信徒團體)들의 취약성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신도단체(信徒團體)는 진정 신앙으로 뭉쳐 몇사람의 재원(財源)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전신도(前信徒)가 회비(會費)를 내어 운영하고 상호간(相互間) 사업체(事業體)를 꾸며서 생산적(生産的)인 면에 시야(視野)를 돌렸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四. 군교화(軍敎化)
육해공군(陸海空軍)이 六九年부터 전군신도화(全軍信者化) 운동(運動)이 시작(始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공산당(共産黨)을 이기는데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무장이 되어야 하고 이 정신적 무장은 누구나 신앙(信仰)을 가져야 한다는 운동(運動)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군법사(軍法師)와 군목(軍牧)과의 비율이 一~十의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어 근본(根本)적인 면에서는 찬동하나 一천만 불교도(佛敎徒)의 자제(子弟)가 입대(入隊) 군대내(軍隊內)에 이에 상응하는 포교(布敎)의 공평성(公評性)을 부여하여 주어야 할 진데 군교사(軍敎師)의 비율이 이렇게 되어있다는 것은 완전히 균형을 잃은 처사가 아닐 수 없고 불교(佛敎)는 너무도 큰 손해를 당하고 있다. 이 비율에 따르면 기독교 목사는 사단․연대, 심지어는 대대까지도 목사(牧師)가 상주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불교(佛敎)는 겨우 군단 그리고 사단 몇곳에 군법사가 파견 근무하는 실정이니 말이 안된다. 더욱 몇사람 아니되는 군법사(軍法師)들은 몇몇사람을 제외(除外)하고는 귀족형(貴族形)이요 법회(法會)기피증에 걸려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오히려 자연인(自然人)으로서 사병인데도 사회(社會)에서의 불교(佛敎)인연 때문에 군종실(軍宗室)에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五. 문서포교
불교신문(佛敎新聞), 불광(佛光), 법륜(法輪), 법시(法施), 불교사상(佛敎思想), 범성(梵聲) 그리고 전단용 자비의 소리 기타 불교(佛敎)간행물이 수종(數種)있는데 전부 편집자들의 출혈에서 인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현상유지에 자신이 있다고들 하나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서도 계속 발간하는 포교정신이 너무도 고맙다.
六. 메스콤 활동(活動)
메스콤을 이용한 포교활동(布敎活動)은 전무(全無)상태라 해도 좋겠다. 그러나 현대사회(現代社會)의 보도(報道)의 주요성은 이를 잘 이용하느냐 못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한다. 격변하는 사회(社會)에 불교인(佛敎人)의 발언(發言)이 작용 못한다면 나약함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효과있는 메스콤활용에 힘을 기우려야 하겠다.
七. 종단포교(宗團布敎)
조계종단내(曹溪宗團內)에 一백三십五명의 포교사 발령자가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 二十여명이요, 이들도 종단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소극적이다. 전사찰을 통하고 있는 교화활동은 변화없는 전통방식이며 유일하게 상임포교사(常任布敎師) 五명이 있는데 총무원의 사정 때문에 각자는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사명감(使命感)에서 쉴사이 없이 전국(全國)을 누비고 다녀도 부족(不足)한 인원(人員), 부족(不足)한 재원(財源)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상(以上) 열거한 이외에도 사업, 연예등 부분(部分)이 있으나 활동이 없기 때문에 생략하고 이제 우리는 불교(佛敎)에 대한 새로운 각오가 없이는 아니될 때가 온 것 같다.
二. 전망(展望)
본인(本人)은 이글을 쓰면서 포교(布敎)의 선결(先決)문제가 종단(宗團)의 주체(主體)인 총무원(總務院), 행정기구(行政機構)가 흔들림이 없는 체제(體制)가 완비되어 승려(僧侶)는 수해본연(修行本然)의 자세가 확립되고 신도(信徒)는 이들을 옹호하며 승단(僧團)을 지키는 마음 가짐이 뭉쳐야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먼저 정신계 지도체계가 뭉치는데 이상 큰 포교(布敎)는 없을 것으로 안다.
우리는 지금(只今) 진통을 넘어서는 조계종단(曹溪宗團)에 큰 기대를 가지면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혼연 일체가 되어 종정(宗正)스님의 뜻대로 자비화합문중(慈悲和合門中)이 될것이라 확신한다. 하루 속히 이러한 바탕위에 상술(上述)한 청소년교화, 대학생포교(大學生布敎), 신도교화(信徒敎化), 군포교(軍布敎), 무서포교(文書布敎), 메스콤, 종다포교(宗團布敎) 기타(其他) 아직도 미치지 못하는 각 분야(各 分野)의 포교활동(布敎活動)을 기획하고 연구하면서 통일성(統一性)있고 조직적(組織的)으로 정비되어야할 때가 온것같다. 그러기 위해 이를 통괄하고 연구 지도(指導)하며 감독 지원하는 중앙포교원(中央布敎院)이 이룩되어야 하는 데 다행이도 十月 二十三日 총무원 종무회의(宗務會議)에서 종정명(宗正命)에 의하여 중앙포교원설티종명안(中央布敎院設置宗令案)이 심의 되었다고 하니, 불교사(佛敎史)에 일대 전환점이 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중앙포교원(中央布敎院)은 불교(佛敎)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다 희구했던 사실이요, 종교(宗敎)의 생명(生命)은 전교(傳敎)인데 조계종(曹溪宗)에도 이제 새로운 생(生)의 활로(活路), 역사(歷史)의 장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내외적(內外的)으로 불신(不信)이라는 현대사조(現代思潮)속에 고갈되어 있는 정신을 구제하는 길은 불교(佛敎)에서만 찾을 수 있는 현대조류(現代潮流)앞에 창창한 푸른 대해(大海)를 바라보는 밝은 전망(展望)이 펼쳐가고 있음을 예시해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