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가치 외면은 절반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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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가치 외면은 절반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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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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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 불교적 대안

다시 환경을 거론하는 것이 식상할 정도이다.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료와 통계치를 들먹이며 환경의 위기를 얘기하면 고개를 돌린다. 마치 텔레비전 리모콘의 단추를 눌러 채널을 돌리는 것과 같이 외면당하는 주제가 된 것 같다.
고개를 돌려서 외면한다고 해서 환경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위기가 해소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면하는 만큼 상처는 깊어질 뿐이며, 언젠가는 고단위의 처방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을 불러들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이 그 때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시 환경을 얘기해야 한다.

다시 환경을 얘기해야 한다
왜 환경인가. 인간 삶의 근본의 문제이며, 윤리의 문제이며,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에 환경을 얘기해야 한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불교를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제대로 잘 살기 위한 필연의 문제이다.
환경은 인간의 삶의 보존과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정서적·미적 요소이다. 지금까지는 생물학적인 요소, 즉 물, 대기, 소음 등 신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환경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래서 환경이라 하면 산이나 강, 바다, 하늘을 떠올렸다. 이런 이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제는 정서적·미적 요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환경의 훼손이 단지 신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서적·미적 왜곡도 동시에 가져온다.
빌딩과 아스팔트 깔린 도로, 자동차와 매연, 소음에 시달리면서 살다보면 한적한 전원을 향하는 욕구가 발생한다. 정서적 안정과 치유를 희구하는 자연스런 욕구이다. 그런데 도심을 벗어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빌딩 같은 교각을 세워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려야 한다. 산을 뚫어 만든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로봇처럼 생긴 송전탑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깊은 산중의 오지가 아니고서는 모두 큰 도시의 축소판이다.
어디를 가도 개발 때문에 파헤쳐진 산과 강을 보아야 하며, 중장비의 굉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토건 공화국’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두 눈과 귀로 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미 우리 산하와 교감하며 형성한 정서적·미적 감성의 혼돈 상태에 놓여 있다. 최근 30년 사이의 일이다. 수천년 이어온 감성이 변화의 강요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의 방향이 속도와 효율이라는 괴물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개발은 자연을 철저히 대상물로 간주한다. 자연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가치관을 바른 길인 양 받아들인다. 개발주의에 편승하지 않고서는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감에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자연을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자연은 자연 나름의 질서를 반복하면서 보존, 유지한다. 자연의 논리는 생태적이다. 즉, 관계의 조화로움에 의해 움직인다. 넓게 보면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또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맺어져 있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연기적 관계이다. 또한 자연은 인간을 지탱해주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먹고 마실 것, 숨쉴 것, 탈 것, 입을 것, 놀이할 것, 쉬고 잠잘 곳, 볼 것, 이 모두가 자연의 생산물이다. 따라서 자연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은혜롭게 여겨야 할 섬김의 존재이다. 그래서 환경의 문제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근본의 문제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의 뒷면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말이 있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UN환경회의에서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지향해야 할 모토로서 채택됐다. 개발을 하되 후세의 사람들도 자연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한도 내에서 개발을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얼핏 들으면 매우 현명한 해답처럼 들린다.
그러나 지금 지속 가능한 개발은 가속화하는 개발을 비판으로부터 빗겨가게 하는 보호막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이 지닌 생태적 질서와 가치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예를 살펴보면 왜 보호막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 불교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였던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 정부는 개발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타당성 조사를 한다. 해당 개발사업을 해도 괜찮은지 따져보는 과정이다.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도 타당성 조사를 했다. 그런데 주로 경제적 측면을 측정하는 항목으로 이뤄진 이 조사 자체에 문제가 있다. 도로를 놓음으로써 발생하는 물류비용의 절감, 교통체증 해소 효과, 공사비 지출에 따른 GNP 증가 등이 투입예산에 비해 많게 나타나면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이를 근거로 사업이 확정된다. 그런데 도로를 놓음으로써 발생하는 마이너스 효과, 즉 국립공원의 생태계 훼손(산림, 지하수 등), 자동차 배출가스에 의한 대기오염과 인근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경관의 훼손에 의한 정서적·미적 불쾌감, 수행환경 훼손에 따른 불교 및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 등은 타당성 조사 항목에 들어가 있지 않다. 물론 저감대책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이며, 현행 법률상 지극히 형식적인 조치 이상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므로 지속 가능한 개발은 개발의 면죄부일 수밖에 없다.

개발은 여전히 좋은 것인가
개발은 지난 30여 년 동안 좋은 것으로 인식돼 왔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듯 개발은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다. 개발을 했으면 그만큼 삶의 질이 높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생태적·정서적·미적·종교적 요소가 빠진 타당성 조사가 계속되고, 사후약방문격인 형식적인 저감대책을 만능으로 치부하는 법과 제도가 고쳐지지 않고서는 개발은 삶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나쁜 것’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의식주의 해결이 곧 삶의 질을 결정하는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은 윤리, 즉 선한 행동인가 악한 행동인가의 문제이다. 생태주의적 윤리라는 말이 이제 낯설지 않을 정도로 환경윤리는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매우 중요한 변화인데, 지금까지의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인간 외의 자연물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고려하는 윤리적 지평의 확대이다. 윤리적 고려의 대상에 ‘나’, ‘인간’만이 아닌 자연물도 포함한다는 것은 분명 인간의식의 발전이다.
인간에게는 유리하지만, 어떤 자연의 생태적 조건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나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생태주의적 세계관은 일찍이 불교와 동양사상에 있었으며, 이런 윤리관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자연물은 나와 우리 밖에 존재하는 다른 모습의 나와 우리’라는 표현까지 가능했다.
불교는 이것을 연기의 관계로 가르치고 있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다섯 비구에게 한 최초의 설법 내용이 중도였는데, 중도는 연기의 관계에서 연유한다. 연기적으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할 때 중도의 삶은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환경을 지키기 위한 행동은 연기와 중도의 가르침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나서 피어나는 가지와 꽃과 같은 것이다.

환경 지키기는 연기와 중도의 실천
최근 몇 년 사이 ‘불교와 환경’은 종종 한 묶음으로 불리고 있다. 이는 10년 사이 100곳이 넘는 사찰에서 수행환경이 훼손되는 경험을 했고, 북한산, 천성산, 새만금, 지리산 댐에 불자들이 앞장서 왔던 결과이다. 또한 ‘불교와 환경’이라는 말 속에는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 불교에 크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불교와 환경’은 우리 불교의 부끄러움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개발지상주의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실종된 연기와 중도의 가르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환경의 문제를 우리 불교가 근본의 문제, 윤리의 문제,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한 불교의 역할은 미미함을 넘어설 수 없다. 역할의 문제 이전에 환경을 외면하고 생태주의적 세계관을 지향하지 않는 불교는 절반의 불교에 머문다. 우리 스스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꼴인데, 그런 신앙은 반(半)신앙 또는 반(反)신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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