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불교] 칸드로 린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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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불교] 칸드로 린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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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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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불교

필자가 티벳불교의 젊은 신세대 비구니 칸드로 린포체에 대해 처음 알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페마 최된 스님의 책을 번역하면서 이런 일화를 들었을 때이다.

언젠가 꿈속에서 페마 스님은 칸드로 린포체를 맞을 준비를 하느라 하루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청소와 요리를 했다. 마침내 린포체가 제자들과 함께 도착했고 페마 스님은 달려나가 인사를 했다.

그런데 린포체가 묻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해뜨는 거 보셨나요?” 바빠서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는 페마 스님께 린포체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나 바쁘셔서 삶을 살아갈 새도 없으시군요.”

카규파-닝마파의 전통을 이어받고 티벳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요기니 예세 쵸걀의 화신이라고 알려진 현재 37세의 칸드로 린포체는 인도에 있는 성요셉 수녀원 부속학교, 성모마리아 수녀원 부속학교 등을 다니며 서구식 교육을 받아 유창한 영어를 말할 수 있는데다가 티벳어 힌두어까지 하여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법을 가르치는 데 더할나위없는 법사로 활약하고 있다.

칸드로 린포체가 현세에 활불로 태어나기 전 바로 이전 생에서의 모습은 쭈루푸의 위대한 다키니 칸드로 위르겐 쪼모였다. 중병을 앓고 있던 티벳불교 카규파의 종정 제15대 칼마파는(현재는 17대 칼마파가 주석하고 있음) 어느 날 꿈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려면 티벳의 저명한 요기니였던 예세 쵸걀의 화신으로 태어난 여존을 맞아들여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 꿈에서 계시를 받은 그녀는 쭈루푸 근처에 사는 위르겐 쪼모였다.

불과 16세 소녀였지만 이미 깨달은 사람이었던 그녀는 칼마파의 사원으로 온 후부터 매일 한 번씩 칼마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도르제 남도마’ 청정의식을 거행했다. 덕분에 칼마파는 9년을 더 살았다. 칼마파가 입적한 이후 칸드로 위르겐 쪼모는 쭈루푸의 수련원에 주석하면서 많은 수행자를 지도하여 ‘쭈루푸의 위대한 칸드로’라고 불리었다.
위르겐 쪼모가 입적할 때가 다가오자 주변의 비구니들은 다시 몸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실 것을 간청하였고 쪼모는 장차 장독 빨리 지방에 태어날 것이니 거기서 만나자고 말하였다. 그렇게 해서 예세 쵸걀의 법맥을 이어받은 칸드로 쩨링 팔돈은 닝마파의 수장인 민돌링 트리첸 린포체의 딸로 1967년 칼림퐁의 장독 팔리 승원에서 태어났다. 민돌링 법맥에는 역사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여성 수행자 요기니들이 많았다. 이미 1살에 많은 상서로운 기운과 흔적을 보여 16대 칼마파는 그녀를 쭈루푸의 위대한 칸드로의 화신으로 인정하였다.

칸드로 린포체는 인도에 삼텐체 수련원을 설립하여 비구니들 및 서양인 수행자들이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스님은 삼텐체 수련원장으로서 비구니와 재가수행자들이 함께, 그리고 동양인과 서양인들이 함께 살며 스님과 재가자가 공조하는 수행마을을 이룬다는 비전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스님은 또 ‘다르마시리 저널’의 발행인도 겸하고 있다.

삼텐체 수련원의 비구니들과 재가수행자들은 나병에 걸린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돕고 있고 옷과 생필품을 전달하며 마을의 홍수방지턱을 건설하는 등의 일도 돕고 있다. 이들은 또 지역학교에 책상과 걸상을 보급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구니스님들은 틈틈이 수련원 곳곳에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어 수련원에 조화로운 환경을 가꾸고 있다.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미디어와 빠른 통신수단에 대해 칸드로 린포체는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현대문명이 많은 해악과 병폐로 신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미디어의 발달 덕분에 서양으로의 불교의 전파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티벳으로 전해지는 데는 수백년이 걸렸어요. 오늘날 불교의 서구화에서 보면 같은 정도의 변화가 단 40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대단히 감사하는 마음, 고무되는 마음 그리고 자신감이 드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빠른 전파에 따른 부작용도 칸드로 린포체는 놓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처럼 심오한 철학과 가르침은 내면의 성장을 위한 수행으로서 완전히 이해해야만 하는 것, 그 본뜻을 진정 이해하기 위해 개인이 수행을 할 책임이 있는 것인데 모든 것이 재빠른 유행의 기류를 타고 나면 피상적인 이해로 인한 해악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 개인이 수행을 시작하면 당연히 어떤 잘못이나 어려움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을 극복하며 수행을 계속해야 깊은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데 잠시 동안의 위안이나 혜택을 위해 수행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게 되는데 그런 수행은 단지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를 수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불교를 어렵게 말하고 내면과 외면의 공함, 모든 것의 공함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신은 그리 되지 못하는 경향이 심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는 칸드로 린포체는 인간이 모든 생명 중 가장 지성이 발달했다면 그 증거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실은 수행이란 지극히 단순한 것이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말하는 요체는 열린 마음과 깨어있는 마음을 닦고 또 유지하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불자들은 대체로 그리스도교에 비해 신을 믿지 않는 종교, 창조주나 천국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명상을 할 때는 그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 칸드로 린포체의 생각이다.

명상의 자리에 앉아서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 대단한 일들이 우리 밖 외부에서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공의 본질에 대해 명상한다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며 린포체는 웃음을 터트렸다. 공의 성품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어떤 외형과 형식을 찾으며, 사물을 찾고 사물을 희망하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공의 본성 안에서 마음을 쉬라고 한다. 이 공에 관해서는 84,000개의 가르침이 존재한다. 그런데 지난 2,600년 동안 이 84,000개의 가르침에 대해 더욱 설명을 붙이고 논한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이제 공에 관해 수십만 개의 가르침이 존재하게 되었다. 역사상의 어떤 문화권에서도 공이 무엇인지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복잡한 방법을 쓴 예는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이 얼마나 무언가 거기 있기를 원하고 형식을 원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스님은 말한다.

우리는 모두 깨달음이 마음 안에 있으며 환상과 착각이 완전히 깨져버렸을 때 본래 있던 지혜가 드러난다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만은 선택된 자로서 예외일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적멸의 장엄함을 실제로 즐기고 돌아서서는 여전히 무지를 벗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가 당신들을 구원하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구도의 길에서도 이분법이 생겨난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오래 명상을 한다 할지라도 첫 번째 고귀한 진리인 고제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불교철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보다도 우선 인간이 되는 책임을 깨닫는 것에 있다고 칸드로 린포체는 말한다. 그런 다음엔 모든 생명과 무생명이 상의상존하는 것을 깨달아 삶에 있어서의 바른 정신, 상식을 기르는 것이다. 우리의 지성과 상식을 사용하여 이해심을 닦아 나간다면 조금은 다른 삶, 분별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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