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교는 다 삶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틱낫한 스님은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라는 용어를 창조하고 세계 곳곳에 그 뿌리가 내리도록 하였다. 참여불교 하면 흔히 극단적인 사회운동을 연상하게 되고 특히 베트남전 때 몸을 불태워 소신공양을 올린 스님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행동은 수많은 목숨이 매일 희생되는 전장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언론마저 외면하자 마지막으로 택한 수단이었다.
현재 참여불교는 서구에서 대중화되고 있는 재가자 중심의 생활불교로 자리를 잡았다. 다시 말해서 절에 가면 좋은 마음을 닦는 것이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생활인의 자세로 돌아오는 종교 따로 생활 따로의 삶에 종언을 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가 처음 진리를 설할 때의 목적이 민중의 삶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함이었고 그래서 붓다의 설법에서는 늘 삶 속에서 마주하는 고통을 어떻게 하면 덜어내고 없앨 수 있는지가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의 진리와 수행법을 밥먹고 잠자고 일하는 데 늘 적용시키자는 것이 참여불교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양불교에서 틱낫한의 업적을 든다면 우선 불교를 어려운 용어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불교가 고통을 덜어주고자 나왔다면 고통은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도 다 느끼는 것이기에 불교의 진리와 수행법을 설명할 때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불교의 수행 중에서도 모든 이가 가장 접근하기 쉽고 또 수행을 계속하면 궁극적인 깨달음까지 갈 수 있는 것으로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불교의 팔정도 중 정념(正念)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념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용어는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마인풀니스(mind-fulness)였다. 그것은 바로 마음을 지금 현재에 두는 것, 지금 이순간에 성성히 깨어있어 내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수행을 말한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삶은 오직 현재에만 존재하는 것, 한 숨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붓다는 말했다. 하루 24시간을 그렇게 깨어있는 마음과 함께 할 때 우리는 붓다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라고 틱낫한은 말한다.
붓다는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고 말했다. 화엄경에 나오는 제석천의 그물망처럼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틱낫한은 인터빙(interbeing, 연결된 존재)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영어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단어이다.
그리고 재가자 중심의 생활불교 수행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가 설립한 종단의 이름도 연결된 존재 종단(Order of Interb-eing)이라 명명했다.
한자로 접현종(接現宗)이라 부르는 이 종단은 민중에게로 가는 불교의 일환으로서 어디에서나 두세사람만 모여도 함께 수행그룹을 이루어 정기적으로 깨어있는 마음을 비롯한 불교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치 예수가 어디에서든 두 사람 세 사람이 모여 내게 예배를 올리면 그 곳이 교회라 한 것과 마찬가지 경우이다.
틱낫한은 또 불교를 지식인의 전유물에서 대중의 것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깨달음을 승가의 수행자에게서 대중에게로 돌려놓았다. 불교가 오랜 역사를 통해 전통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분석대상으로서의 종교, 철학으로서의 종교가 발달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어려운 용어가 많이 창출되었고 이제 불교는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듯한 종교가 되어버렸다.
일부 지식인들이 자기들끼리만 아는 말로 통하는 불교는 붓다의 초기의도와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가. 그런데 틱낫한은 그 모든 것을 아주 단순하고 쉬운 말로 풀어놓았다. 쉬운 말로 설명하면 불교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그는 확 깨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단순화로 인한 격조의 하강이나 의미의 왜곡은 그의 글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는 40대에 깨달음을 이루었고 이후 생활 속에 그 깨달음을 녹여내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치열하게 수행을 해왔기 때문이다. 무려 80여 권이나 되는 그의 저서 중에서 그래도 좀 어려운 편에 속하는 경전해설 10권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쓰여진 것이다.
그 책들은 언제고 다시 읽어도 좋은 청정한 물과도 같다. 그는 시인이어서 아름다운 글을 쓸 줄 알지만 그의 책들은 단순한 미문이 아니다. 그 책들에는 인간의 고통도 들어 있고 그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는 약수도 들어 있다.
그의 글과 말이 일회용이 아님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은 그의 많은 책들이 스테디셀러가 되어 플럼빌리지의 제1수입원이 그의 책에서 나오는 인세가 되었다는 데 있다. 후원자들의 기부금과 대중들이 내는 수련회비에 재정을 의존하는 다른 불교센터와는 그 처지가 매우 다른 것이다.
그는 또 깨달음은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마치 붓다의 시절에 붓다가 그리 말했고 또 붓다가 설법을 하러 가는 곳마다 즉석에서 깨달음을 이룬 사람들이 많이 나왔던 것과도 같다.
정념, 즉 깨어 있는 마음을 살아가면서 꾸준히 수행하면 깊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선불교에서는 치열한 참선을 수년에서 수십년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참선은 다만 선 수행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 생활 속에서의 선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틱낫한은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16세에 행자가 되어 임제종의 법맥에서 계를 받은 그는 그가 사미계를 받던 날 스승이 그에게 기워서 입혀준 가사장삼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때는 프랑스가 베트남의 식민지권을 놓지 않으려고 전쟁을 벌이던 중이라 물자가 아주 귀했었다. 행자시절엔 회색옷을 입었지만 사미계를 받으면 갈색옷을 입어야 했다. 그런데 새옷이 없었다. 스승은 떨어진 옷을 모아놓은 상자를 한참동안이나 뒤져 그 중 가장 덜 해진 옷을 골랐다. 그리고는 바늘에 실을 꿰어 밤늦도록 그 옷을 기웠다.
공양주보살이 있었으니 일을 시켜도 되련만 스승은 손수 옷을 기워주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입을 수도 없을 정도로 해진 옷이지만 틱낫한이 가장 소중한 옷이라고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틱낫한은 현재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전원에 플럼빌리지라는 수행센터를 세우고 승가와 재가를 함께 교육하고 있다. 플럼빌리지에는 비구와 비구니가 고루 모여 수행을 하고 있는데 그 위상에 차이가 없다. 플럼빌리지에는 매년 수천 명의 방문객이 찾아드는데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과 일반인에게 이 곳을 완전 오픈하는 여름 1달 동안 찾는 사람만 1,000여 명이라고 한다.
1982년 설립된 플럼 빌리지는 성장을 거듭해 98년에는 5개의 건물을 가지고 상주인구가 100여 명인 수행단체로 컸다. 98년까지 접현종의 법사와 스님은 75명이고 전 세계의 수행 승가는 300여 개가 되었다. 미국에는 동부에 2개, 서부에 1개의 수행센터가 있다.